<어떤, 시집> 리뷰
알게 되는 것도
알아가는 것도
나이가 하는 일
맞습니다.
<어떤, 시집> 나이 2 중에서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20대가 지나 30대가 되었는데, 부질없구나" 30살이 되어도 어느 하나 안정적이지 않는 내 삶이 안타까웠다. 안타까움에 생각이 잠길 때쯤 내가 나이라는 숫자 안에 갇혀 살았다는 걸 알았다. 숫자는 숫자일 뿐인데. 아마 우리나라에서 정해놓은 나이 때 별 매뉴얼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닌가 싶다. 지금쯤이면 회사의 직함을 달고, 가정을 꾸려야 할 때인데, 나이 들면 움츠려 드는 일이 많아진다. 현명해지기보다 오히려 초라함을 감추는 방법을 배우면서.
나의 모든 것을 말하려고 했던 어릴 적과 달리 속앓이 하는 날이 많아지고 있다. 그렇게 표현하는 방법을 잃어가고, 슬픔을 슬픈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회피하는 일만 넘쳐난다. 하지만 이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잘하고 있어, 괜찮아"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작가님 말처럼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음이 아닐까 싶다. 완벽한 이해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나를 다독여줄 따뜻한 말을 아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으니까. 다들 저마다 다른 사연을 가지고 살아가기에 모든 걸 다 설명할 수 없다. 때문에 구구절절 이야기하지 않아도 그냥 너라서, 괜찮다 라는 말의 중요함을 알 수밖에 없다. 그건 우리가 위로가 필요한 시대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내게 있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것이었다
엄마, 아빠에게서
걷는 법, 먹는 법, 말하는 법을 배웠고
동생들에게서
내 것을 나눠주는 법을 배웠고
친구들에게서 마음속 고민을 털어놓는 법을 배웠으며
남자 친구에게서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직장동료, 상사에게서
일하는 법과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법을 배웠다
내가 누구와 함께 있고
누구에게서 어떤 것을 얻는 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걸
그리고
좋은 사람이 되어서
나의 것을 많은 이들에게 득이 되게
나눠주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악이 되는 이들은
인생에서 되도록 적게 만나기를
어쩌다 만나게 되더라도 나에게 해가 되지 말고
그로 인해 다른 무언가를 얻는 득이 되기를...
<어떤, 시집> 누군가의 것 중에서
류시화 작가는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인연에는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나는 이 말을 되새기며 잠깐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어떤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어떤 사람과 지내는지에 따라 평소에 다른 내 모습을 보게 되거나, 안 먹던 음식을 먹게 되고, 함께 보내는 의미를 알게 된다. 반면 사람 때문에 사람을 조심하는 법을 배우기도 한다. 득이든 악이든 만나는 사람마다 매 순간 해결해야 할 일들이 눈 앞에 닥쳤고, 나는 그 매듭을 풀기 위해 늘 고민하고, 행동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무서워 사랑을 겁내고, 직장 상사에게 받은 상처가 커서 회사를 무서워하게 됐다. 반면 혼자서 먹고사는 방법을 배우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았으며 좋아하는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의 중요함을 알았다.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내가 했던 선택들로 인해 나는 점점 내가 되고 있었다. 혼자서 살 수 없고, 내 주변에 좋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더 단단한 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누군가의 것'의 시가 가장 좋았다.
밤 10시쯤 퇴근길 신호등
학원 끝난 아이들이 쏟아져 나온다
나도 하루 종일 일하느라 피곤한데
저 아이들도 나와 같이 피곤하겠다
그러다 문득,
저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대부분 회사원이 되겠지
힘겹게 많은 경쟁을 하며 회사원이 돼서는
나처럼 늦은 퇴근에 피곤한 삶을 살겠지
직장생활의 수명은 내게 언제까지일까
조금의 노력들로 수명을 연장하면서
계속 회사를 다니는 게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인가
그럼 이 모든 걸 내려놓고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건 무엇인가
이 고민들을 끝낼 수 있는 단 하나의 이유가 있으면 좋겠다
그저 다나 하나의 이유
그것이면 될 텐데...
<어떤, 시집> 단 하나의 이유 중에서
한참 평범과 특별함 사이에서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걸까. 아니면 남들 눈에 튀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걸까. 평범하기에는 삶이 재미없을 것 같았고, 특별하기에는 나는 너무 지루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평범과 특별함의 무게를 재지 않는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확 김에 일을 때려치우고 여행을 떠날 때도 있었고, 어느 때와 다름없이 친구들과 밥을 먹으면서 편안함과 안락한 행복을 느끼기도 하면서 말이다.
교복 입고 세상 크게 웃는 학생을 볼 때면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라며 추억했고, 사원증을 목에 걸고 커피 마시는 직장인들을 보며 (스트레스받겠지만) 안정감이 있던 과거를 생각했다. 그 안정감의 유혹에 넘어가 회사에 들어가면 내 시간이 사라졌고, 그 속에서 우울함이 생겼다. 반면 퇴사하고 자유롭게 살다 보면 불안정한 생활에서 불면증이 생겼다. 도대체 나보고 어쩌라는 건가 싶을 때가 있다. 그때부터였다. 납득할 이유를 나에게서 찾은 게. "지금 뭐하고 싶지?" 그 질문에 따라 글 쓰고 싶으면 글을 썼고, 일하고 싶으면 일을 찾아다녔다. 매 순간 나의 감정이 하나의 이유가 되어 현명하거나 때론 철없는 선택을 할 수 있게 도왔다.
<어떤, 시집>은 이렇듯 각각의 시마다 내 감정을 떠오르게 한다. 읽을수록 놓쳤던 부분을 되새기게 되고, 잠시 애틋했던 추억에 잠기거나 때론 무기력함으로 내 삶 자체가 암울했던 때를 떠오르게 했다. 불안전한 사회 속에서 불행한 삶을 사는 듯한 하며 결혼과 안정들을 수없이 고민하게 한다. 그렇다고 결코 불행만을 이야기하는 책은 아니다. 지나가는 모든 감정들이 모두 한때였음을 말하며 현재 행복한지 묻는다. 모르는 사람에게서 안부편지를 받은 기분이랄까. 적지 않으면 잊혀지는 감정을 다시 한번 정리하고 싶을 때 <어떤, 시집>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