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매실 Jun 30. 2019

고생을 사서 했습니다. 라오스 한 달 살기(3)

[이해하는지도] 라오스 한 달 살기 여행 에세이

[휴식이 필요해서 떠났어요] 1편 다시 읽기

[오늘을 잘 보내고 있어요] 2편 다시 읽기


우린 시내로 와서 각자의 길을 갔다. 친구는 좋은 기억이 있는 루앙프라방으로, 난 새로운 지역을 보기 위해 북쪽으로. 각자의 여행을 배려해주기로 했다. 그렇게 혼자, 여행을 떠났다. 농키아우로. 사실 볼거리는 많지 않다. 자전거 타고 마을을 돌아보거나 전망대에 가거나 역사가 담긴 동굴을 보는 정도. 첫날에 전망대에 올랐다. 후기를 읽어보니 한 시간이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고 했다. 며칠 전에 6시간도 걸었는데 한 시간을 못 걸을까. 산에 올랐다. 생각보다 가파른 길에 몇 번이나 고민했지만. 수많은 갈등을 이겨내고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한눈에 본 농키아우.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 미니로 보이는 차와 사람이 귀여웠다. 바람까지 솔솔 불어 땀이 다 말라갔다. 해먹에 누워 하늘을 봤다. 지금 이 순간은 좋은데 뭐랄까 고생을 사서 하는 것 같다고 할까? 그나저나 언제 내려가냐.


농키아우의 장점이 있다면 사우나가 있다는 것! 스팀 사우나로 10분 스팀 하고 밖으로 나와 차를 마시고 다시 스팀 하는 그런 사우나다. 좁은 사우나 안에는 이미 여러 사람이 있었다. 스팀 때문에 안에 있는 사람이 보이지 않아 문을 열었는데 남자분이 있었다. 죄송하다고 말하고 다시 닫았다. 사장님께 여탕이 어디에 있는지 묻자 자꾸 남자분이 계신 곳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여기 남자분 있어요" "알아, 들어가. 투게더 투게더" 이곳 사우나는 함께 스팀 하는 사우나다. 괜히 놀랐네. 사우나를 마치고 숙소까지 걸어갔다. 밤이 되자 하늘에는 별이 많았고 스팀으로 내 몸에서 향기로운 향이 남아있었다. 이제 해먹에 누워 맥주 마실 일만 남았다. 기분 좋은 밤이다.

다음날 마을 근처에 있는 동굴에 갔다. 역사가 기록된 곳. 전쟁 날 때 마을 사람들이 동굴에 숨었지만 결국 다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표지판 보고 동굴이 있는 곳까지 자전거 타고 갔다. 매표소가 어딘지 확인해보니 허름해 보이는 과수원 하나가 보였다. 입장권을 구매해서 올라가자 한 아이가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동굴을 안내해주겠다며 나를 가이드했다. 동굴 안은 플래시 없으면 아무것도 볼 수 없을 정도로 깜깜했다. 관광지가 되면 전등 정도 설치돼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곳은 있는 그대로를 간직했다. 


혼자여서 무서웠는데 가이드가 있어서 조금 안심됐다. 내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대신 어린 가이드는 한 곳을 가리키며 입으로 우두두두라고 말했다. 이 안에서 총살당했다는 걸 말하려는 듯하다. 3분이면 다 볼 정도로 좁았다. 이제 내려가려고 하니 가이드는 내게 돈을 요구했다."머니 머니" 밖에는 이 어린 가이드 친구들이 있었다. 자꾸만 이상한 생각이 들고 무서워서 돈 주고 얼른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 그 친구들은 돈이 그것밖에 없냐고 큰 소리로 웃고 떠들었다. 빠른 걸음으로 벗어나려 할 때 한 사람이 나를 붙잡았다. "저 사람은 단지 돈이 없을 뿐이지,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그래도 나한테 만큼은 나빠.

밥 먹고 숙소에 오니 벌써 밤이었다. 해먹에 누워 맥주를 마시려고 베란다 문을 열었는데 수백 마리의 벌레들이 내 방으로 들어왔다. 까먹고 베란다 불을 켜놓고 갔고, 불을 좋아하는 벌레들이 내 베란다에 몰려 있는 것도 모르고 방 문을 열었던 거다. 망할. 진짜 그 순간 너무 놀래서 우선 방 문을 닫았지만 이미 방에서 수백 마리의 벌레들이 날아다녔다. 이걸 다행이라고 말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곧 벌레들이 하나둘 바닥에 떨어졌다. 내 침대 위에도. 떨어지는 벌레를 보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오로지 망했다 라는 생각뿐. 사장님께 도움을 청하러 마당으로 갔다. 하필 오늘 단체 손님이 모여서 직원 모두가 정신없이 요리를 하고 서빙하고 있었다. 진짜 망했네. 결국 눈에 보이는 빗자루를 들고 방으로 갔고. 바닥과 침대에 떨어진 벌레들을 정리했다.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야. 어제까지 분명 이곳이 좋았는데 오늘 동굴과 벌레로 인해 갑자기 이곳을 빨리 떠나고 싶어 졌다.



다음날 므앙응오이로 갔다. 므앙응오이는 15분이면 마을 한 바퀴를 돌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마을이다. 이곳까지 오게 될 줄 몰랐다. 시멘트가 아닌 온통 흙이 있는 거리였다. 이 마을에도 새벽이면 탁발을 한다. 지역마다 탁발하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다. 므앙응오이 탁발은 밥과 간식을 나눠주면 스님이 옆에서 라오어로 기도를 해주셨다. 그때 주민들은 미리 담아뒀던 물을 바닥에 흘러 보냈다. 이는 내 안에 있는 나쁜 기운을 내보내는 것과 같다고 한다. 탁발이 끝날 때 서로 웃는 모습이 너무 예쁘다. 아직 탁발이 끝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다시 반찬을 챙겨서 사원으로 향했다. 다 같이 식사를 즐기는 듯하다. 정겨운 동네에 기분 좋다. 오길 잘했어.


작은 마을이라 식당도 몇 개 없다. 그중 한 곳에서 한국 사람을 만났다. 이렇게 작은 마을에도 한국 사람이 찾아온다는 것이 반가웠다. 반가움에 가던 길을 멈추고 다 같이 밥을 먹으며 인사를 나눴다. 몇 시간이 그냥 흘렀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서로 인사하며 어디가 제일 좋았는지 이야기 나눴다. 이런 인연은 늘 신기하다. 이곳까지 온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사람들 같다. 하필 왜 여행까지 와서 만나냐며 기분 나쁜 경우가 있는 반면, 좋은 인연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매일 같이 밥 먹었고 일정을 함께 했다. 그중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


어제 만난 선생님은 므앙응오이를 좋아하셔서 매년 3~4번씩 온다고 한다. 그러다 알게 된 작은 학교가 있는데 그곳에서 아이들과 놀아주고 기부를 하신다고 하셨다. 우린 마트에서 여러 간식을 샀고 다음날 같이 그 학교에 갔다. 아이들은 수줍어서인지 멀리서 우리를 지켜봤다. 그러다 종이 접기에 흥미를 보인 아이들이 몰려왔고, 줄넘기에 관심 있는 사람은 줄넘기를 함께 했다. 이 마을 선생님은 감사하다며 우리에게 식사를 대접했다. 이곳도 손으로 음식을 먹는다. 맛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맛있었다. 한 그릇 더 먹을 정도로. 식사를 마치고 차 마시며 쉬고 있는데 마을 선생님이 우리를 불렀다.


아이들이 감사 인사로 전통춤을 보여준다는 것. 너무 귀여워서 어쩔 줄 몰랐다. 자꾸만 실수하는 한 아이. 이 귀여움은 직접 보지 않는 이상 뭐라 말하기 어렵다. 보는 내내 "꺄, 어뜩해, 아 귀여워"만 말했던 것 같다. 아이들과 함께 하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아쉬움을 뒤로 한채 다시 우리가 있던 동네로 넘어왔다. 다시 마을로 넘어와도 아이들 이야기는 계속됐다. 너무 귀여워. 이번엔 일주일 내내 식사했던  단골집 사장님이 우리를 불렀다.


영문도 모른 채 사장님을 따라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마을 어르신이 들어오셨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셨다. 기도해주시는 덕에 감사하기도 했지만 얼떨떨했다. 정신없이 기도받고 정리하는 시간에 테이블에 앉아서 팔에 묶인 끈을 봤다. 휴식이 필요해서 이곳까지 왔다. 왜 라오스인지 모르겠지만 그 이유는 라오스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곧 있으면 한국으로 돌아가는데 평범하기만 했던 내 여행에 의미를 찾기란 어려웠다. 그냥 잘 쉬고 가는구나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바로 오늘 알았다.


여전히 이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라오스로 온 이유가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사람과 나와 닮은 사람을 만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팔에 묶여 있는 흰 실들을 보니 갑자기 울컥했다. 처음 본 사람들에게 응원받는 기분이었다. 가끔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서 응원받을 때가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나를 조건 없이 칭찬해줄 때. 어쩌면 그 말이 듣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냥 지금을 잘 보내고 있다고.


잠시 쉬고 싶어서 숙소로 돌아갔다. 그때 사장님이 내게 왔고, 오늘 예약이 있었는데 너에게 방을 줬다며 미안하다며 다시 나가라고 했다. 뭐야? 나 방금까지 기분 좋았어. 제발 그 기분을 망치지 말아 줘. 어쩔 수 없이 옆에 있는 숙소로 방을 옮겼다. 그 방도 나쁘지 않았다. 나무로 되어 있고 침대가 두 개여서 편히 쉴 수 있었다. 오늘 하루가 노곤하니 일찍 자려고 눕자 밖에서 걸어 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근처에 산책할 수 있는 곳이 있나 보다 라고 가볍게 생각했는데 너무 가까이 들려서 창문을 닫으려 불을 켰다. 그때! 쥐꼬리가 나무 사이로 들어가는 걸 봤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니야 내가 잘못 본 걸 거야. 그때 옆에서 또다시 걸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불이 켜진 덕에 방 틈으로 뛰어다니는 쥐들을 볼 수 있었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  



집주인에게 말했다. "빅 마우스 빅마우스!!" 집주인은 남은 방이 없다고 했다. 그럼 나 저 쥐들이랑 같이 자야 해? 울상을 짓자 집주인 아주머니는 딸과 같이 자라고 하셨다. 그래 같이 있으면 그나마 덜 무서울 거야. 딸에게 진짜 빅마우스라고 하니까 괜찮다며 나를 다독였다. 쥐 소리가 날 때마다 벽을 발로 쿵쿵 쳤는데 그 소리가 더 소름 돋았다. 아침에 맛있게 먹었던 밥이 갑자기 목에 턱 하고 걸릴 것 같다. 피곤해서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때.. 하늘에서 그 쥐가. 쥐가 떨어졌다. 아........ ㅅㅂ 나도 모르게 딸 침대로 뛰어넘어 소리 질렸다. 진짜 아까 분명 마을 어르신께서 내게 기도해주셨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 울먹이며 잠을 포기하고 밤새 밖에 있었다. 다음날 사장님은 내 숙박비를 환불해주셨고, 난 옆에 있는 숙소로 옮겼다. 속이 좋지 않아서 걸어 다닐 때마다 토할 것 같았다. 다행히 이번 숙소는 괜찮아 보였다. 우선 나무가 아니었고 쥐구멍도 없었다. 화장실도 넓었고. 다만 이번 숙소의 문제는 변기 물이 자꾸 내려가지 않는다는 것. 쉬운 일이 없다. 하루 종일 콜라만 마시며 속을 가라앉혔다.


혼자 여행하면서 자유로운 부분도 있었지만 이렇게 서러운 일을 몇 번 경험하니 친구가 그리워졌다. 결국 친구를 만나기 위해 루앙프라방으로 돌아갔다. 서로 어떤 여행을 했는지 물으며 우린 또다시 쇼핑을 시작했다. 이상하게 쇼핑하려고 하니까 속이 좀 풀렸다. 어쩌면 함께 있다는 것에 안심했을지도 모른다. 남은 일주일 동안 하루하루 충실하게 보냈고, 매 순간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좋았다. 물론 힘든 때도 있었지만 여유로웠고 재미있었다. 신발 벗고 맨발로 걸으며 현지인이 되어보기도 했고, 탁발하면서 나눔을 소중히 여기는 라오스 문화를 경험하기도 했다. 모든 여행이 순탄했으면 이렇게 하루하루가 생생하게 기억나지 않았을 거야. 짧다고 생각했던 한 달이 생각보다 짧지 않았다. 재미있었고 잘 쉬었다. 아, 라오스 또 가고 싶다.


*자세한 내용은 독립출판 [이해하는지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을 잘 보내고 있어요.  라오스 한 달 살기(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