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사각 나무 깎는 소리와 정겨움을 담은 공방

사각소리 나무깎기인센스 체험

by 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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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반복됐다. 겨우 일어나서 출근하고, 반쯤 감긴 눈으로 일하고, 거의 감긴 눈으로 퇴근하기를. 반복되는 생활에 안정감을 느낄 때도 있지만, 가끔 재미없거나 무료해질 때도 있다. 분명 잘살고 있는데도 의심하고,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불안하기도 하다. 잘 살고 못 살고의 기준은 없는 건데. 아마 난 어느 정도 안정감을 느끼면 새로운 환경으로 바꿔줘야 하나 보다. 그래서 한 달의 하나씩 새로운 취미를 갖기로 했다. 하고 싶었던 취미를 적었다. 나무 깎기, 라탄 공예, 꽃꽂이 등. 생각나는 것만 적다 보니 왠지 거기서 거기 같았다. 해보지 않아서 새로운 건데, 어딘가 모르게 익숙하다고 해야 할까. 뭔가 내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걸 찾고 싶은 걸까? 그래도 우선 생각나는 게 많지 않으니 하나씩 해보기로 했다. 집 근처 공방을 찾다가 나무 깎기 원데이 클래스를 발견했다. 숟가락 만들기, 인센스 등 여러 소품이 있었는데, 그중 주말반 인센스 원데이 클래스를 등록했다. 등록 전에는 온갖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등록하고 보니 뭔가 설레었다. 필름 카메라 외 다른 취미생활은 오랜만이다. 익숙해 보여도 늘 새로운 건 즐거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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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올 듯 흐리고 맑아지기를 반복하는 변덕스러운 날씨였다. 주소 따라 찾아갔는데, 다른 공방이 나왔다. 길을 못 찾는 나를 보고 사장님은 “여기예요. 여기”라고 말하며 멀리서 나를 반겨주셨다. 사각사각. 나무 깎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평화롭고도 한적한 공방이었다. 공방 안은 나무로 만든 소품부터 이제 깎아야 할 나무, 나무 깎기에 필요한 도구들이 있었다. 집과 회사에서 보던 풍경과 전혀 다른 환경이었다. 오자마자 앞치마를 입고 바로 인센스 모양부터 그렸다. 조금 늦게 도착하여 마음이 급했는지 숨이 아직 찼다. 조급함에 나도 모르게 삐뚤빼뚤 그림을 그렸다. 자꾸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내 모습을 보시고, 사장님은 밑작업이 제일 어렵다며 나를 다독여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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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깎기는 나무 결을 이해하고 힘을 줄 땐 주고 뺄 땐 뺄 줄도 알아야 했다. 시간이 걸리고 연습이 필요한 일이다. 그래도 방법을 알면 깎기만 하면 된다. 반복되는 작업에 딴생각이 들기도 하고, 나뭇결을 자세히 보기도 하며, 허리가 아파서 조금 쉬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때 검정치마부터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나빌레라 ost 음악이 들렸다. 음악에 집중하다 보니 내가 하고 있는 이 시간이 낭만스러워 보였다. 원래 난 쿵후를 배우고 있다. 이것도 재미있는 운동을 하고 싶어서 시작했다. 몇 달 다니다가 친구가 한 달만 쉬었으면 좋겠다고 하여 학원비가 남았고 난 그 돈으로 이 수업을 신청했다.


같은 돈으로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다는 신선함과 다른 곳에 돈을 쓰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일에 쓰는 게 괜히 뿌듯했다. 이런 취미를 하다 보면 잘하는 일, 못하는 일을 조금 알 수 있다. 나는 글 쓸 때와 키보드 칠 때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가는 편이다. 그래서 늘 어깨가 아프다. 나무 깎기 역시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갔다. 사장님은 손에 힘을 빼려면 나무칼과 내 몸이 하나가 되어야 된다고 하셨다. 나는 몸의 힘을 이용해서 나무를 깎았다. 손에 힘이 덜 들어갔다. 사각사각. 나무를 깎을 때마다 겉모습과 다른 진한 색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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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뿌듯함에 갑자기 궁금해졌다. 사장님은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됐을까, 이런 재미에 매력을 느끼신 걸까. 사장님은 디자인 일을 하다가 갑자기 삶이 무료해서 취미를 찾게 됐고, 우연히 나무 깎기를 하다가 여기까지 왔다고 하셨다. 나누는 대화에서 "맞아요"가 끊이지 않았다. 마치 내가 겪고 있는 일처럼 공감됐고 주문에 걸린 듯 내 고민까지 털어놓게 됐다. 분명 처음 온 곳인데, 자주 왔던 곳처럼 마음이 편했다. 그때 비가 왔다. 사장님은 내리는 비를 보면서 좀 전에 나눴던 대화 중 내가 비를 좋아한다는 말을 떠올리시고 내게 말했다. "비 오는데요? 오늘 마음껏 즐기다 가셔요" 내가 이곳에서 정말 잘 쉬고, 잘 놀 수 있게 배려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잘 못하더라도 "오 잘하시는데요?"라고 칭찬도 끊이지 않았다. 나는 처음 하는 일이기에 내가 잘하는지 못하는지 알 수 없다. 오로지 사장님 말을 믿고 하나씩 해나갈 뿐이다. 그래서 그 말에 더 힘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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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수강생 분이 오셨다. 오시자마자 꾸밈없이 나눠주는 분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시장에서 맛있어 보이는 핫도그를 사 오시는 모습을 보고. 좋은 건 함께 나누려는 사람 같다고 할까. 나를 보며 나무 깎기 한다는 생각에 설레지 않았냐 등의 말을 이어가셨다. 지친 하루가 반복되더라도 이렇게 나를 위한 취미가 든든한 기분을 전해준다는 걸 온몸으로 표현하셨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인천을 좋아하고, 한적한 곳을 좋아하며 음악 취향까지 비슷했다. 원래 알던 사람처럼 아니, 원래 여기서 만나기로 했던 사람들처럼 이야기를 나눴다. 어떻게 보면 별 얘기 아닌데, 오가는 대화가 너무 따뜻해서 오랜만에 건강한 사람들을 만난 듯했다. 취향이 비슷한 사람이 모여 웃고 떠들고 간식을 나눠먹었다. 반가웠다. 난 이 순간을 그리워했던 것 같다. 매일 회사에 치여 살다 보니 이런 기분을 느낀 지 오래됐으니. 심지어 인센스도 잘 만들었다.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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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서 느낀 따뜻함과 갑자기 쏟아지는 빗소리, 사각사각 나무 깎는 소리가 들리던 이곳. 느린 삶을 공감하는 사각소리에 오길 잘했다. 돈이 많지 않아 매번 다른 취미를 갖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이렇게 나를 위해 투자하는 기분이 좋다. 집에서 인센스에 향을 피워놓고 책을 읽는 이 시간이 너무 좋다. 내가 좋아하는 공간이 만들어지고, 내가 좋아하는 순간을 더 건강하게 만드는 기분이랄까. 이 기분을 오래 유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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