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한다, 단단해진다.
동해의 끝에서 끝으로 가는 여정이었다. 2018년,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날 즈음부터 1주일에 한 번, 독서모임 '독서생활자'에 초대받았다. 어린 아이를 키우는 중이라고, 폐를 끼칠꺼라고 한사코 사양했다. 하지만 모임 지기님은 더 어린 아이를 데리고 오시는 분도 있다며, 용기를 주셨다.
세 번 거절했다가는 이 기회를 놓칠 것 같았다. 택시비 왕복 15000원 거리도 마다할 수 없었다. 둘째 육아 6개월 째. 몹시 지쳐 목에서 쉰 내가 날 지경이었기 때문이었다.
난 더 넓은 세상을 원했다. 산부인과 회복실에서도, 산후조리원에서도, 그리고 산후 도우미 이모님을 모시고 계실 때도, 책 한 문장에 허덕였다. 조금 더, 하나라도 더, 현관 밖 세계가 궁금했다. 책을 읽지 않으면 아이 몸뚱아리만큼의 세계가 딱 내 시야의 한계였다.
독서 모임을 시작한지 어느덧 만 1년하고도 반년이 지났다. 독서생활자 언니들과의 시간이 없었다면, 난 좀 더 고집스럽고, 관대하지 못 하고, 나와 다른 사람들을 미워했을지도 모른다. 책 한 권을 두고 떠는 수다 덕분에 인식의 지평을 조금씩 넓히는 중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낮은 임금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보통 일을 마치면 책 한 장 펼칠 틈이 없다. 고된 일과 후 마시는 맥주 한 캔이나 가볍게 즐기는 TV 프로그램이 인식의 지평의 끝이다. 그러다보니 투표를 할 때도, 정작 자신을 도와 줄 수 있는 정치인보다, 언론전(戰)을 잘 이끄는 정치인에게 표를 던져버린다. 가난은 반복된다. 무지와 편견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
그런데 세상은 가난한 노동자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가면, 관심을 보인다. 누구나 노력하면, 열심히 산다면, 교육은 공정하게 열린 기회라고 말한다.
윤구병 선생님은 '과연 지식 산업이 노동보다 낫다고 할 수 있나?'며 질문한다. 가난한 노동자들의 편에 섰다. 노동은 신성하며 고귀한 것이라며.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질문했다.
"평범한 사람 살이가 보장되지 않으니까요."
우리는 윤구병 선생님의 이런 말씀이 조금 답답했다.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쏙 빼놓았기 때문이다. 어째서 농민들이 소 팔고, 밭 팔아 자식들을 대학에 보냈는지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다. 무조건 노동이 귀하다는 주장보다는, 귀한 노동을 대접할 수 있는 제도가 더 절실하다고 말했다.
"비례대표제요.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사람만 당선되는게 아니라, 표의 비율대로 당선되는거죠. 그러면 여러 계층의 의견이 비율대로 정치로 반영될 수 있어요."
"직접 참여도 중요하죠. 공공기관에 건의를 하는건 심리적 장벽이 있지만 해볼만 해요. 종종 열리는 시장과의 면담 시간에도 참여해봄직해요."
그렇다면 우리는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노동하며 사는 것도, 공부하며 사는 것도 좋다. 둘 다 하는 것도 좋다. 사교육을 얼마나 많이 받을 것인지, 과연 사교육이 나쁜 것인지.
"교육에서는 고민이 좀 되요. 내가 해주고 싶은 것만 생각하고, 아이가 하고 싶어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았어요. 노동이 귀한지, 지적 산업이 귀한지에 대한 고려보다, 내 아이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결론은 없고, 사유만 있다. 고민하고 토론만 한다. 남들처럼 살면 편한데, 생각이 많아지니, 남들 사는 모습이 다 좋아보이지도 않는다. 사교육에 지나치게 의존하다보면 아이의 시야가 좁아질 것 같고, 그렇다고 타인과 다른 선택을 하자니 겁이 나고. 결단을 못 내리기도 한다.
"차라리 모르는게 약일 수도 있겠네요."
"그래도 우리 고민하고 사유해요. 생각하지 못 하는건 식물인간 같아요. 책 읽고 토론해요 우리. 그건 흔들리는게 아니라 더 단단해지는거에요."
나만 너무 심각하게 사는 것 같아, 요즘 편하게 살아보려 했건만. 연화 언니의 말이 마음에 닿았다. 생각 없이 이리저리 떠다니는거야 말로 뿌리 내리지 못 해 흔들릴 수 있다. 책 읽고, 생각하고, 토론하는 이 과정이 남은 삶을 더욱 단단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해주리라.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독서와 토론. 우리 삶을 단단하게 해주는 뿌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