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티혀니 May 15. 2020

Ep17. 영국과 한국 두 공대생의 이야기

[텝스 240점, 혼자 떠난 여행에서 만난 외국인과 한달살기]


아침 8시 빼꼼히 눈을 떠본다. 후드드드득 밤새 내린 비는 아직도 그치지 않아 아침까지 이어졌다. 아무래도 오늘 태양을 쉽게 내어주지 않으려나 보다. 마음속으론 비가 조금 더 내려 우리의 약속이 미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아직 남은 30분의 약속시간에 다시 스르륵 잠에 들었다. 



풀장 위로 조금씩 퍼지는 물결


8시 반, 추적추적 여전히 내리는 비 집 앞에 있는 풀장에 나가보니 심심치 않게 풀장에 물결이 피워지는 걸 볼 수 있었다. 앤서니는 이미 포기한지 오래, 마크와 난 조금 눈치를 보다 결국 가기로 했다. 우리 집 뒤에 있는 산에 오르기로 말이다. 



딱 모기가 좋아할 만한 습기와 온도였다. 다만, 그늘이 진 덕분에 선선한 날씨가 계속되었다. 반듯한 포장도로를 지나 어느덧 풀숲으로 이어졌다. 주위의 풀들은 아침의 습기를 흠뻑 머금은 듯 우리를 반겨주었다. 풀숲을 스칠 때마다 조금씩 종아리로 튀어 오르는 물방울들,  아무래도 처음 지나온 사람들을 위한 환영인사처럼 느껴졌다. 


이윽고, 풀숲 뒤로 빌라가 조금씩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비는 조금씩 사그라들었지만, 비인지 땀인지 모르게 온몸이 젖어버렸다. 살짝씩 차오르는 온몸의 습기 때문에 찝찝해지려 할 때 앞서 있던 마크가 웃통을 벗어던진다. 



그래, 뭐 사실 아무도 볼 사람 없잖아


그리고 보면 좀 어때. 민소매티를 벗자 한결 기분이 나아진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살결에 닿아 찝찝함을 씻겨주었다. 그리곤 주위로 조금씩 자라나는 열대과일을 보며 우린 함박웃음을 지어보냈다. 내 주먹보다도 작은 파인애플, 그리고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바나나, 냄새 가득한 두리안까지.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아이들이었다. 



곳곳에 파인애플이 자라나고 있었다.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열대과일, 바나나와 두리안


조금 오르자 탁 트여진 풍경이 눈앞을 가득 채웠다. 저 멀리 보이는 차웽비치와 호숫가, 높이 올라온 탓에 우리 빌라는 보이지 않았다. 땀을 한가득 흘린 우린 잠시나마 숨을 돌리며 한가득 아침의 여유를 만끽했다. 숲 냄새와 저 멀리 은은하게 불어오는 바다 향기까지 말이다. 


사진을 찍기 위해 후다닥 옷을 다시 걸쳤다.


그렇게 오르길 40분쯤 되던 순간, 큰 도로가 나아있었다. 아마도 저번에 오토바이를 타고 산에 오르던 길이었던 것 같았다. 조금은 아쉬운 듯 마크와 나는 도로를 따라 걸으며 잠시 쉬어갈 곳을 찾고 있었다. 


어느덧 가장 높은 곳에 다다른 우리는 반쪽짜리 코사무이를 내려다볼 수 있게 되었다. 아쉽게도 정상은 아닌지라 다음번을 기약하기로 했다. 


옷을 다시 입자 마크가 핀잔을 주기 시작한다.


조그맣게 변해버린 집들과 나무, 호수를 찬찬히 들여다본 후에 마크가 센스 넘치게 사진을 먼저 찍어주겠다고 했다. 아무래도 나의 마음을 조금씩 읽어가는 것 같다. 주섬주섬 옷을 입으니 뭐 하러 옷을 입느냐고 핀잔을 준다. 


“마크, 벗은 몸을 올리면 친구들이 싫어할 거야”, 하고는 축축해진 민소매티를 다시 몸에 걸쳤다. 마크는 신경 쓰지도 않곤 사진 한 장을 부탁했다. 너무 키가 큰 나머지 저 멀리 바다보다도 우뚝 서있다. 


내려가는 길, 다시 탁 트였던 풍경에 나무들이 하나 둘 드리우기 시작한다.


그렇게 다시 돌아온 길을 내려가며, 아침에 용기 내어 나오길 잘했다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루의 시작이 오늘과 같이 활기찼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항상 이부자리에서 뒤척이며, 5분만 10분만을 외치곤 했는데 오늘은 유달리 힘이 넘친다. 온몸은 물론, 신발까지 다 젖어 축축해진 상태로 돌아왔지만 곧장 들어가지 않곤 풀장에서 남은 여유를 즐긴다. 아침 10시, 아마도 지금쯤 침대 위에서 눈을 뜨며 비몽사몽할 시간이지만, 마크가 내려준 원두커피와 빵 쪼가리를 먹으며 하루를 열었다. 


왠지 오늘은 더 맛있게 느껴진다.


설탕 한 스푼도 넣지 않은 커피의 여유가 이렇게나 달달할 줄이야. 커피를 즐길 줄 아는 마크와 한 잔씩 나눠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Chartered Engineer’ 영국 기술 사이다. 아마 우리나라 기술사 자격증과 비슷한 것 같다. 자격증을 따게 된 이유, 그리고 자격증이 가져다주는 커리어의 이점. 듣자 하니 아마도 우리 공대생들과 비슷한 이유와 맥락을 가지고 있었다. 여러 회사의 높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곳에 있는 영 엔지니어들은 기회와 경험을 가져갈 수 있는 그룹 내지는 모임. 


한국에서 시시콜콜 떠는 것보단 절반도 이해 못 하는 영어를 듣는 편이 훨씬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회사의 문화, 그리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대하고 있는지 말이다. 비도 다시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고 커피 한 잔이 다 비워지고 남은 향이 모조리 날아가기까지 우린 일어나지 않았다. 사실 언젠간 결정해야 하는 나의 진로 문제였기도 했으며, 모든 이야기가 새로운지라 흥미가 끊길새가 없었다. 세계 최고의 롤스로이스 회사에서 말도 안 되는 사내 문화, 그리곤 잠시 머물렀던 현대자동차에 대한 이야기. 서로 궁금해하며 웃을 뿐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회사일수록 고인 회사가 돼버리기 쉽다는 것. 변화를 위해 회사와 개인이 서로 노력하는 곳만이 계속 성장하고 판을 깨나갈 것이라는 것. 우리의 결론이었다. 그래서인지 마크도 전략팀으로의 직무변경을 원하고 있었다. 많이 배우고 많이 보았기 때문에 본인이 원하는 것과 잘하는 걸 잘 파악하고 있다는 생각이 행동으로 잘 나타났다. 


나도 곧 머지않아 사회로 입문하게 되겠지만, 아직은 걱정되지 않아



왜냐면 오늘도 차분히 오늘의 인생을 잘 즐기고 있단 말이야. 


많이 듣고, 보고, 경험하는 것. 그게 내 인생의 준비가 되어줄 것이니까.





한참을 물을 뿌리고 놀더니 병을 하나씩 세우기 시작했다.


진지한 마크는 잠시뿐. 앤서니가 오자마자 웬걸 빈 병맥주를 세우기 시작했다. 


아마도 자랑 겸 장난 겸, 저 중에서 내 건 딱 12병이다. 100개 정도 된다고 했으니 하루에 대충 얼마나 마시는지 감이 올 거다. (몰아서 마시는 편)


갑자기 프라이머리가 등장했다. 자꾸만 마크가 물을 뿌리니 박스를 쓰고 숨어버렸다. 앤서니도 제정신은 아닌 것 같아..


















앤서니의 저녁과 나의 저녁



앤서니는 샌드위치 성애자이다. 매일 샌드위치만 먹어대는데 오늘은 집안에 기름기 가득한 냄새가 나 가보니 소고기를 굽고 있다.... 이런 잠시 한눈판 사이에 입에 홀랑 넣어버리고 싶었다. 원래는 저녁을 안 먹을 예정이었는데 냄새를 맡으니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남아있던 수프를 비워버렸다.



근데, 더 배 고파진 건.... 안돼애 애




이전 16화 Ep16. 일상과 일상 사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