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텝스 240점, 혼자 떠난 여행에서 만난 외국인과 한달살기]
"선생님, 요즘 하루가 똑같아서 재미없어요”
중학생 2학년 꼬마 아이는 학원 선생님께 고민 상담을 했다. 그러자 돌아오는 이야기, “야 이놈아, 그럴 시간에 영어 단어 공부나 더 해서 통과해봐”
가끔 일상이 익숙해질 무렵 찾아오는 각설이 같은 존재였다. 고3 때에도, 군대에 있을 때에도 항상 같은 고민을 겪었고 그렇다고 점점 나아지지는 않았다. 여행에서도 비껴갈 수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어김없이 프렌치토스트와 커피 한 잔을 먹고 글을 쓰며 시작하는 하루, 그리곤 테라스에서 하루 종일을 보낸다.
아마도 여행권 태기인듯하다. 세상 평화롭기도 하고, 여유가 이토록 넘쳐도 될까 싶으며, 괜찮으려고 노력하지만 흘러가는 시간이 걱정되기도 한다. 여러 번 겪어본 탓에 이 또한 흘러가리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밀려오는 일상의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고 오늘은 호숫가로 출발했다.
막상 밖으로 나서니 오토바이 뒤로 흘러가는 바람이 거셀 뿐이었다. 걱정 따윈 흘러들어올 여유가 없었다. 호수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닫아버린 체육관 덕에 공원에서 무에타이를 연습하는 선수들, 선을 그어놓고 풋살을 하고 있는 동네 친구들, 그리고 호숫가의 여유를 만끽하는 여러 사람들까지. 걱정 없이 각자의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약간은 숨통이 트이는 것만 같았다.
한 모퉁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에어팟을 두 귀 구덩이에 꽂았다. 적당히 밖의 소음이 들릴 정도의 크기로. 이럴 땐 또 마음을 울리는 노래를 들어줘야만 한다.
‘김필-다시 사랑한다면’
눈을 감고 소리에 집중한다. 부지런히 살아가는 저 밖의 소리들과 마음속으로 파고드는 노래의 울림을 말이다. 노래 두어 곡을 듣고 나니 차분함을 되찾은 듯했다. 괜찮아지기보단 오늘의 지루함이 흘러갈 수 있도록 마음속에 길을 만들어 두었다. 자연스럽게 몸속으로 흘러들어가 이러 저리 뒹굴다 나갈 수 있도록 말이다.
피한다고 피해지는 게 아니더라. 이겨낸다고 이겨낼 수 있는 게 아니더라.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 그리고 하루를 조금 더 세심하게 들여다보는 것. 프렌치토스트를 조금 더 깊이 음미하고, 커피 한 모금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순간을 기억하고 느껴볼 것.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하나 있다. ‘어바웃 타임’ 이 영화 결말 즈음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주인공은 똑같은 하루를 두 번씩 살아본다. 처음엔 정신없던 하루지만, 두 번째 같은 하루를 살 적엔 바쁜 일상 속에서 잠깐의 여유를 즐기곤 한다. 커피 한 모금에 웃음 짓고, 바쁘게 지나다니기만 했던 곳들을 조금씩 둘러볼 여유를 갖는다.
익숙해져 버린 코사무이의 일상. 길거리 정이 넘치는 상인과 눈이 마주치면 웃음 지어주는 동네 사람들, 그리곤 시간이 멈춰버릴 것만 같은 해 질 녘까지, 이제 절반이 남은 코사무이의 여행에서 이전의 15일을 다시 살아보려 한다. 하루하루 곱씹으며 뼛속 깊이 새겨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