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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티혀니 May 15. 2020

Ep19. 여행을 위해 살짝 놓은 정신

[텝스 240점, 혼자 떠난 여행에서 만난 외국인과 한달살기]


남은 돈 3000밧, 10만 원 즈음. 전기세를 빼고 나면 4만 원 정도 남는다. 아무래도 계산을 잘못한 탓에 돈이 모자라게 되었다.



뽑으면 되잖아! 

그래요 뽑으면 되는데 뽑는데 수수료가 만 원이에요…. 오만 원 뽑으려고 만원 더 내는 건 피눈물이 흐른다. 천원 이천 원 아끼려고 박박댔는데 뭐 열 번 아껴서 한 번에 나가니 참 마음이 아플 뿐이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장을 볼 때 카드로 결제해서 큰 지출을 막는 방법이 있다. 카드 수수료가 아무래도 더 적게 나갈 테니 말이다. 대충 계산하니 두 번 정도 카드를 긁으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사야 하는 재료를 리스트 업하곤 바로 마트로 향했다. 


'우유 버터 빵 양파 마늘 토마토 캔 닭'



뭐든지 다 싸다, 서쪽에서 온 치즈 같은 건 빼고


괜히 카드를 쓸 생각에 조금 욕심껏 담았다. 빵도 양파도 토마토도 한가득씩, 그래야 오래 버틸 수 있으니까. 억눌렸던 마음이 풀린 탓에 꽤나 많이 담았다. 물가가 비싼 편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저것 담아도 많이 나오지 않는 탓도 있다. 닭 가슴살 두덩이 천 원, 닭다리 4덩이 이천 원. 



계산대로 당당히 카트를 밀곤 카드를 들이밀었다. 아리송한 표정의 카운터 직원, 아니 자꾸만 태국어로 말하니 알 턱이 없었다. 다만,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은 느낌. 그러더니 ‘Only CityBank’란다. 


야 이놈들아, 왜 카드를 차별해. 카드 결제하려고 많이 담았단 말이야….



카드 차별한 마크로. 그렇지만 미워할 수 없다. 왜냐면 싸거든.


눈물이 찔끔 나올 뻔했다. 슬퍼서가 아니라 카드가 안되는 상황이 짜증 나서 말이다. 이놈 자식들, 속으로 씩씩거리며 1000밧 세장 중 한 장을 들이밀었다. 


‘다 부숴버릴 거야’라고 맘속으로 씩씩 거리며 마트에서 나와버렸다. 






요즈음 운동에 빠져 산다. 기구가 없는 턱에 엄청난 운동량을 할 수 있진 않지만 매일 놓지 않고 마크와 함께 서킷운동을 하고 있다. 종류는 5-6가지. 운동시간은 한 시간이 조금 안되는 듯하다. 



점점 진화하는 서킷


아마도 기름진 음식과 술을 많이 마시지 않다 보니 몸의 변화가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 아마도 요즘 들어 가장 기름기 쪽 빠진 나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국에 돌아가면 더욱 어려운 환경에서 운동해야 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노력 중이다. 이번 연도 버킷리스트로 정한 보디 프로필을 향해 한걸음 다가가고 있다는 말이다. 괜히 연말까지 미뤄두지 말고, 이참에 바로 해버릴 심산이다. 



재발 나의 의지가 꺾이지 않길 바란다. 오늘 하루도 운동할지 말지 고민하는 나 자신이지만 말이다. 





저녁에 배가 고파 부엌으로 슬금슬금 올라왔다. 웬걸 계단을 절반쯤 올라설 때부터 기름진 볶음 냄새가 내 머리를 휘감았다. 어질어질했다. 그대로 쓰러질뻔한 몸뚱어리를 붙잡곤, 질 수 없어 냉장고에서 닭 가슴살 500원짜리 한 덩이를 꺼냈다. 



항상 귀찮음으로 저녁을 스킵 해 왔지만, 오늘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좁아터진 부엌에 시장 바닥을 나서는 어머니와 같은 당당함으로 끼어들었다. 닭 가슴살과 양파, 그리고 토마토를 넣곤 괜히 하지 않아도 될 겉멋을 잡았다. 한 손으로 스냅을 이용해 재료 볶기. 여기서 포인트는 삐져나온 기름에 살짝 불이 붙어 화르르 하고 불이 올라오는 거다. 그러면 아마 마크와 앤서니가 놀라지 않을까?!



닭 가슴살이 이렇게 맛있을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나 혼자만의 망상이었다. 아무도 관심이 없는 틈을 타 조용히, 자리를 빠져나왔다. 뻑뻑한 닭 가슴살이 싫어 이리저리 방법을 찾아보던 탓에 육즙이 흐르는 닭 가슴살 스테이크가 완성되었다. 아마도 우유와 향신료로 마리네이드를 해뒀기 때문인 것 같다. 한 조각 큼지막하게 썰어 그대로 입안으로 직행했다. 가슴살 특유의 결이 느껴지면서도 결 사이사이에 흐르는 수분감이 대단했다. 



내 마음이 갈대 같은지, 아니면 좀 정신을 놓은 건지 오백 원이니까 한 일주일 닭 가슴살만 먹으면 인출 수수료 만 원은 금방 일 거라고 가뿐히 웃음 지었다. 딱히 체계적이지 않고, 살짝 멍청한 탓에 여행 다닐 때엔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된다. 무언가를 잃어버려도 하루만 지나면 벌써 out of 안중.



그러다 핸드폰 하나가 부서졌고, 카메라는 물에 빠져 고장 났고, 시계와 보조배터리는 사라진지 오래이다. 한국이었다면 아마도 어머니표 등짝 스매시로 내 등은 남아나지 않았을 거다. 



그럼 어때, 여행은 잘만 하고 있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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