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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티혀니 May 15. 2020

Ep21. 바다가 좋은 게 아냐,
그 여유가 좋은 거지

[텝스 240점, 혼자 떠난 여행에서 만난 외국인과 한달살기]


꿉꿉해진 날씨를 벗어던지고 쨍한 날씨가 시작되었다. 며칠 새 비만 온 탓에 축 늘어진 몸뚱아린 기운을 잃은 듯 시름시름 댔지만, 오늘에서야 허물을 벗듯 당차게 집 밖을 나서게 되었다.



파란 하늘에 적당히 구름이 띄워져 있으니 참으로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아래에는 길게 뻗은 야자수 나무가 ‘여긴 동남아에요’라고 소리치듯 나뭇잎을 이리저리 흔들고 있었다.



코사무이에 와서 하루도 빠짐없이 바다를 보는 것 같은데 어찌 이 풍경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눈앞에 가득 찬 파란과 하늘색의 조화로움은 편안함과 동시에 두근거림을 가져다준다. 파도 소리와 뒤섞인 해변 가득한 바람 소리가 나에겐 평화로움이고, 하루에도 몇 번이나 맘먹으면 바다에 올 수 있다는 사실이 두근거림이다. 그런 곳에 내가 살고 있으니깐 말이다.


마크도 연신 셔터를 누르고 있다.


그래서인지, 바다에 오면 쉬었던 셔터를 자주 누르게 된다. 이 풍경을 보고 오래 간직하고 싶은 마음은 나뿐이랴. 마음 편히 사진을 찍으려 삼각대를 가져온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어디 갔는지, 오토바이 트렁크에 보이지가 않는다. 이 땐 큰일인지도 모르고 맘 편히 집에 있겠거니 하고 말았다. 어쩌면 몰랐던 게 나았을 거야. 괜히 불안에 떨었을 거니까.


삼각대가 없음에도 굴하지 않았다. 나에겐 마크와 앤서니가 있었고, 그리고 물통 두 개라는 기막힌 삼각대가 있었다. 아무래도 혼자 찍어야 자연스럽고 다양하게 찍을 수 있어서 앤서니가 찍어준 뒤에도 잠시 해변에 혼자 남아 몇 장을 더 기록했다.



꽤나 깊은 바닷가에서 유유히 수영을 할 무렵 현지인들이 무언가를 캐듯 내 앞을 지나갔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사내는 결국 그 통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흐어어억, 대박”


통 안엔 소라와 커다란 게가 가득했다. 놀란 얼굴에 큰 따봉을 날려주는 피부 꺼무접접한 사내, 그리곤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 가득 찬 통에 소라 몇 개를 추가한다. 사실 신기하기보단, 저걸 잡으면 어떤 저녁을 해먹을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아마, 여행보단 생존에 좀 더 가까운 생활인 걸 몸으로 느끼고 있나 보다.


현지인들은 바닷가에 나와 이것저것 잡아간다


펄럭거리는 비치타월을 겨우 부여잡곤 해변가 그늘진 곳에 자리 잡았다. 그리곤 벗어놓은 옷가지를 대충 뭉쳐 베개 삼고는 눈을 감기도, 떠서 멍하니 바라보길 반복했다. 파란 하늘과 반쯤 걸친 나뭇가지들. 바닷물에 살짝 젖은 몸 구석구석으로 스며드는 바람, 조금은 잔잔한 소리에 몇 가지 음색을 곁들여 소리를 가득 채워준 새들의 지저귐까지


멍하니 하늘을 바라봄.


익숙함에 지겨움을 느꼈던 사실을 까마득히 잊곤, 또 미소 짓고야 말았다.



여전히 해변가의 삶은 익숙해지지 않는단 말이지


바닷가보단 바닷가에서 느긋하게 쉴 수 있는 여유가 좋다. 태닝보단 태닝할 수 있는 여유가 좋다. 집 앞에 풀장에서 수영하기보단 수영할 수 있는 여유가 좋다.



가끔은 여유로움이 나에게 지루함을 가져다주고, 걱정거리를 한가득 던져주기도 하지만, 그 지독한 여유로움이 지나고 나면 비로소 느낄 수 있는 산뜻한 바람과 공기가 난 좋다.





괜히 좋다는게 아니다. 이걸보고 좋지않을 자신있으면 사과할게요.





잠든 마크와 앤서니를 뒤로하곤, 해변가를 거닐었다. 아니 뛰었다. 뛰다 자갈밭 폭탄 길이 이어질 땐 살금살금 걷기도 그냥 내 맘대로 말이다. 해변가를 뛰는 건 생각보다 로맨틱하지 못했다. 신발 없이 뛰는 게 마치 중학생 때 선생님들에게 발바닥 맴매를 맞듯 얼얼함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엉거주춤 뛰어다니다 보니 어느새 내 뒤로 동네 강아지들이 쭈르륵 함께 달리고 있었다.


강아지 1호


어찌나 사람 손을 탔는지 사탕 사준다는 말도 안 했는데 이렇게 따라올 정도니 말이다. 아주 돌아가며 온몸을 비비고 쓰다듬어주니 좋아죽는다. 그러다 조금 흥미가 떨어지니 바로 어디론가 유유히 사라져버린다. 아마도 또 다른 사람을 찾아 나선 게 아닌가 싶다.




해산물을 캐고 있는 현지인들
코사무이의 바닷가





돌아오길 30분, 오도방구를 오래 타면 바람을 온몸으로 맞아서 그런지 침대에 드러눕고 싶단 생각이 절로 든다. 대충 씻고 누우려던 찰나, 삼각대가 생각나 옷장 주변을 뒤적뒤적 찾아보았는데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세한 느낌이 들어, 기억의 테이프를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분명 오토바이 뒤편에 넣어두었는데 언제 꺼낸 것인지… 그러다 뇌리에 스친 장면, 어제 해변가에 가서 사진을 찍으려 꺼내두었는데 그 뒤로의 기억이 끊어져있었다. 하… 망연자실이다.


다시 오토바이를 끌고 40분은 달려나가야 한다. 여유는 무슨, 그래도 가서 찾기라도 하면 다행이라고 맘을 다잡곤 다시 헬멧을 썼다.



돌아와서 허기진 배를 달래려, 저녁 해먹을 생각에 신이 났었는데 물 한 컵으로 난 다시 해변가로 달려나가게 되었다. 그렇게 달리길 30분, 해변에 가서 삼각대를 찾고 바다 보며 밥이나 먹어야겠단 생각이 스쳤다. 뭔 뚱딴지같은 소리겠지만, 찾으면 기분 좋은 밥이 될 테고 찾지 못한다면 위안의 밥이 되리라고.


이천 원 어치 팟타이, 종이로 감싸 주었다.


시장에서 천 원짜리 팟타이를 두 개 담았다. 오늘 같은 날엔 하나론 성이 안찰 것 같아서 말이다. 그렇게 꽤나 어둑해진 도로를 지나 해변가에 다다랐다. 조용히 시동을 끄곤 맘을 졸이며 한걸음 다가갔다. 싸했다. 아니 보고도 믿지 않았다.



‘없다’ 


‘아이……. 하’


위안의 밥은 커녕 한심한 자신을 돌아보며 마음속에 더 짙은 어둠이 몰려왔다. 아까워서라기보단 벌써 여행 와서 잃어버린 물건이 몇 개란 말인가. 내 물건 하나 소중히 다루지 못하는 놈이 되어버렸다.


그런다고 뭐 죽은 삼각대가 살아돌아오냐? 이놈의 미친 긍정 때문인지 슬픔보다 배고픔이 더 커져버렸다. 그 자리에 털썩 앉아 잊지 않고 라임을 뿌린 뒤 미친 듯이 흡입했다. 그러곤 너털웃음을 지으며, ‘맛있다’를 연신 외쳐댔다. 내가 웃은 이유는 맛있어서가 아니라 이 상황에서 밥이 잘 넘어가는 나 자신이 어이없으면서도 웃겼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 혼자 웃으며 먹은 팟타이 두 봉지


정말 오분도 안 되어 팟타이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치 내 머릿속에서 삼각대가 사라지듯이 말이다. 그리곤 삼각대를 떠올리며 마지막으로 되뇌었다. ‘자 더 이상은 안돼, 정신 차리자’



또다시 40분의 여정, 난 여행 처음으로 8시에 침대에 쓰러져 기억을 잃고야 말았다. 다행한 건지 아침엔 내 손에도, 내 머릿속에도 삼각대를 지워버렸다.



이번엔 가족 전부가 나와 다 같이 조개를 담아 간다.
어제의 태풍은 이 아직은 사라지지 않고 드문드문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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