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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티혀니 May 10. 2020

Ep16. 일상과 일상 사이

[텝스 240점, 혼자 떠난 여행에서 만난 외국인과 한달살기]


“혀니, 너 이제 흑인 같아”, 한껏 정오의 태양을 맞이하는 중 2층 테라스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놓곤 마크가 얘기한다.



사실 내 피부는 하얀 편이 아니었음에도, 만나는 사람마다 다 장기 여행자인지라 태국인 같은 피부색을 가지고 있었다. 여행 한 달 반이 되어가는 나 또한, 피할 수 없었다. 매일 온몸에 선크림을 바르기보단 난 선택과 집중을 하였다. 



얼굴만 살려보자


근데 그게 또 살린다고 살려지지 않더라. 매일 바다에 나가 물놀이에, 공놀이에, 그렇게 나도 점점 장기 여행자의 몸이 되어가나 보다. 그래서 난 다시 선택했다. 이왕 탄 거 조금 더 이쁘게 태워보자고. 그래서 매일 풀장에서 30분 정도 썬 베드에 앉아 태양을 맞으니 여기 있는 친구들은 점점 내가 흑인이 되어간다고 생각한다.  


Ep13. 많이 탔다 이정도면 브라운을 넘어 초코로 넘어가는 중이지 않을까


절대 인종차별로서 블랙, 옐로우라고 놀리는 게 아니지만, 근데 하나 신기한 게 있다면, 백인에게도 화이트라고 놀리면 싫어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노래도 있단다.



백인도 백인이라고 하지 마. 





풀장에 있으니 스르륵 누군가가 따라 들어온다. 발 사이즈만 봐도 공룡 같은 게 마크가 확실하다. 



참 얘네들은 군대에 가지 않으니 생각보다 많이 궁금해한다. 군대에서 이발병을 한 것도, 운동한 것도, 그리고 북한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제스퍼도 한참이나 군대에 가고 싶다고, 나보고 한국 가면 군대에 가는 거 어떻냐고 하길래 정말 요리하던 파스타 팬으로 후려칠뻔한 걸 간신히 참은 적도 있다. 


김정은과 트럼프. 우리의 주제였다. 짧은 영어로 어떻게든 이리저리 설명하고, 끝까지 들어준 덕에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트럼프는 대통령이 아니라 비즈니스맨이라는 것, 그리고 두 명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 우리의 공통점이었다. 



나한테 김정은이 왜 싫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딱 한마디 했다. “걔 때문에 내 2년을 날렸어, 오케이?” 




군대 얘기를 하다 하도 할 게 없어 하루에 2-3시간씩 운동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런데 웃긴 건 여기서도 군대와 비슷한 마음가짐으로 운동을 하고 있다. 가끔은 마크와 뛰기도 하고, 근력운동을 하기도 하고 말이다.


마크는 체계적인 사나이다. 어젠가 종이에 대여섯 가지를 적어와 내밀었다. “우리 서킷운동하자”


근데 딱히 기구도 없고 애매할 거 같다고 하니 한마디 던진다. “체육관이 없으면 어떻게 해? 만들면 되지. 왜냐면 우리는 엔지니어잖아” 


그랬다. 마크는 기계공학, 난 산업공학. 공대생이 1층에서 모여 운동기구를 만들었다. 20L 큰 물통은 스커트 할 때,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박스 점프대, 밴드로 등 운동을 하려니 묶어둘 곳이 없어, 서로를 나무처럼 세워두고 말이다. 



마지막으론 언덕 전력 질주. 군대에서 하던걸 여기 와서 하고 있다. 혼자라면 하지 못할, 둘이어서 가능한 것. 내일은 앤서니, 제스퍼도 데리고 하려고 한다. 아마도 제스퍼는 안될 것 같다. 그 시간에 무언갈 더 먹으려 할게 뻔하니까.


운동하고 먹는 과일주스는 최고다. 과일이 달아서 얼음과 수박몇조각 그거면 됬다.





우린 저번의 바베큐의 충격을 잊지 못하고, 다시 불판을 꺼내들었다. 치킨 닭 다리살 10개. 양파와 새송이, 그리고 간장소스. 막내였던 나는 재료 손질부터 준비까지 모든 걸 마쳤다.


재료손질과 소스를 만들었다.


한국에서 막내가 대부분 이런 걸 준비하곤 한다니깐 너무 고마워하면서도 궁금증을 놓친 못했나 보다. 불판에 구우면서도, 구워진 음식을 잘라 그릇에 옮겨주면서도 계속된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우리집 테라스에선 바베큐를 할 수 있다.


가장 큰 어른 앤서니부터 고기를 나눠주니, 마크가 질문한다. “근데, 나이를 모르면 어떻게 해?


“음, 웬만하면 처음에 다 이야기하는데 모르면 대충 어른인 사람부터 나눠줘야지. 아마도 액면가는 제스퍼부터 되지 않을까?” 제스퍼가 머리를 밀어버린지라, 우린 엉클 제스퍼라고 놀리곤 한다. 근데 진짜 철없는 삼촌이 딱이다.



그래서인지 마크는 한국에 90살 먹으면 온다고 한다. 아무래도 대접을 받고싶어하는 모양이다. 


엔서니가 마신 양주병에 담아놓은 손 세정제


알코올이 담겨있는 양주병을 보곤 술이냐고 물어보곤, 따라서 마시려고도 했다. 진짜 마시면 말리려 했는데, 냄새를 맡더니 너무 세서 주스에 섞어마셔야겠단다. 



'제스퍼, 그거 100프로 알코올이잖아.. 마시면 뻑갈거야..진짜 뻑' 



손질부터 굽기, 그리고 분배까지 완벽했다.


“혀니, 우리 너 돌아가도 코리안바베큐 해먹으려고, 이건 너무 매력적이야. 그리고 김치도 담아보고 싶어” 푸짐하게 한상 가득 먹은 셋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한국과 나에 대한 칭찬이 줄지어 흘러나왔다. 풀장에 들어가서도 으쓱해진 어깨는 내려올줄 몰랐다.



항상 마무리는 풀장 맥주이다. 그냥 들어가기엔 아쉬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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