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처음 봤을 때, 평론가들과 똑같은 생각을 했다.
의도적으로 삽입해놓은 여럿 신파스러운 장면들 때문에 제대로 몰입하기가 힘들었다.
최근 채널을 돌리다 영화 채널에서 방영하고 있기에 '시간이나 때울 겸 잠시 볼까' 하는 생각으로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그러다 어느 씬에서 불쑥,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아 억지로 참아보려 했는데 차마 막을 수 없었다. 황정민 대신 엄홍길을, 정우 대신 박무택을, 김인권 대신 박정복을 대입하는 순간, 신파는 더 이상 방해 요소가 되지 못했다.
진실로 인간의 도전과 희생은 그 얼마나 고결한 것이던가. 그 감정을 완벽하게 이해할 순 없지만 왠지 그러했을 것 같다. 더 이상 마를 것이 없을 정도의 그토록 많은 눈물을 쏟아냈을 것 같고, 눈사태에 쓰러져 사경을 헤매는 순간 싸늘한 주검으로 누워있을 대원들을 생각했을 것 같고, 이후의 모든 산행 도중에 그들의 영혼과 정신이 두 다리가 되어 주리라 생각했을 것 같다.
그래서 눈물이 났다. 타인을 위해 목숨을 내놓다는 말은 관용구처럼 빈번하게 통용되고 있지만, 정말로 그리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리고 마침내 산의 일부가 되어버리고 만 가족 같은 그들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다니던 직장, 화목한 가정과 마지막 자존심을 뒤로한 채 구조팀에 합류한 이들의 그 숭고한 마음을 과연 헤아릴 수 있을까.
이기심과 개인의 물질적 성공만이 우선시 되는 현 사회의 우리들에게 필요한 기본적 소양이 바로 이런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나이가 들수록 자연이 좋아지는 이유도, 그곳의 장엄함 속에 있다 보면 우리가 얼마나 작고 미약한 존재인지를 인지하여 마침내 ‘겸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더불어 누군가와 함께 할 때 느낄 수 있는 정과 이타심의 깊이가 더해져 어느새 타인에 대한 ‘희생과 헌신’으로까지 확장되는 것이다.
먼저 베푼 것들은 후에 반드시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우리도 함께 걸어갔으면 한다. 살면서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바위 덩이같이 큰 눈사태와 빙벽이 가로막는 순간을 마주하였을 때, 목숨과 바꾸어서라도 절대 내 손을 놓지 않을 사람이 옆에 있다고 굳게 믿을 수 있다면,
그것만큼 든든하고 감사한 경우가 또 어디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