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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Jul 23. 2021

글자를 모르는 시절에 누릴 수 있는 특혜

눈으로 그림을, 귀로 글자를, 이 둘을 합쳐내며 상상력을!

첫째 아이가 한국 나이 세 살이 채 안되던 때였다.

아이가 정말 좋아하던 "달님안녕"이라는 그림책이 있었는데, 당시 한 살 더 많은 다른 아이가 글자를 벌써 읽는다며, 책을 읽는 동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영상 속 아이는 아주 또박또박 그림책에 있는 한글을 아주 잘 읽어냈다. 그리고, 사람들은 댓글로 아이가 어떻게 그렇게 글자를 잘 읽냐며 감탄하였다.

그런데, 당시. 그 영상을 보다가 개인적으로 크게 놀라웠던 점은, 우리 집 첫째 녀석의 경우, 달님안녕의 스토리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페이지를 볼 때, 달님이 주인공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고양이 두 마리'를 주인공으로 바꾸어, 고양이의 입장에서 본 달님안녕 스토리를 새로이 만들어 혼자 읽어내고 있었는데, 그 고양이들의 섬세한 움직임을 기반으로 달님을 관찰하는 모습이 굉장히 특이하고 신선하여, 아이들의 시선이 부럽다 느낀 적이 있었다.

나라면, 그런 고양이의 섬세한 몸동작에 따라 바뀌는 스토리와 그걸 바라보는 달님의 시각이라는 어마한 시각의 차이를.. 감히 생각하지 못했으리니.

이 고양이였다.지붕위에도 고양이가 잠들어있었다.

영상 속 아이의 경우는, 글자를 읽는 점은 정말 탁월하였으나, 글자가 주는 것 외에 다른 것은 보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써져있는 글자를 소리 내어 읽는 것에 훨씬 더 많은 에너지가 집중되어 글자가 끝나는 즉시 페이지가 바로 넘어가고 있음을 보게 되었다. 물론, 그 이후에 다시 되돌아와 그림을 유심히 관찰하여 보았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아이들도 낭독할 당시엔 글자 집중해도 같이 그림이 보인 다고 하기도 한다.

아마 그때였던 것 같다.

막연하게나마, 아이가 글자를 빨리 깨우치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글자를 알 때 알게 되는 어마어마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아, 글자로 인해 볼 수 있는 것들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하고 막연하게나마 깨닫게 된 것이.

영어수업에서도 영어실력과 별도로 문장을 이해하는 능력은 문장을 독해할 수 있는 실력과는 달랐었다. 멋지게 영어로 쓰인 문장을 읽어낼 수 있고, 심지어 완벽히 해석을 하긴 했으나, 그 문장이 뜻하는 바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여, 실제 한없이 부연설명을 해줘야 해서 이게 영어수업인지 과학수업인지 모르겠다고 성토했던 게 떠올랐다.

(물의 기화현상으로 인한 질량의 변화 등에 관한 문장이었는데, 어린아이임에도 기화(vaporize, evaporation, mass 등의 단어까지 다 알고 있어 해석은 놀랄 정도로 정확한데, 그것이 문장 내에서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한 이해는 또 다른 이슈였다.)


"달님 안녕"이라는 짧은 문장이지만, 그 문장을 그냥 글자를 읽어내는 것과. 달님 안녕이라는 문장을 읽었을 때, 읽은 자의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영감, 이미지, 스토리, 그리고 내가 직접 본 달님, 직접 한 경험, 누군가에게서 들은 이야기 등이 다 얽혀서, 연결고리가 되어, 그 달님안녕이라는 문장이 가슴에 어떤 여운으로 남는지는 사람마다 모두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

글자를 모를 시절에만 누릴 수 있는 특혜 중에 하나인지도 모르겠다고 그때 생각이 들었었다. 눈으로 읽는 언어랑 귀로 듣는 언어가 다르듯, 아 엄마가 귀로 읽어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는 눈으로 언어를 읽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그림을 읽고, 귀로는 엄마가 들려주는 글자를 들으며, 그 둘을 합쳐내어 이야기의 상상력을 더하는구나. 그때 불현듯 깨달았었다.

어느 것이 더 좋은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여전히 전문가끼리도 의견이 분분히 다. 글자를 일찍 알아서 얻는 장점들도 많으니까.

그러나, 확실한 건, 첫째를 키울 때 보다 둘째를 키울 때 더 주변에서는 한글을 더 빨리 가르치는 추세이고 (실제로 둘째 친구들을 보니 이미 한글을 시작하고 많이 깨우친 친구들도 많다.) 접하는 분위기 속에서 현재 접한 이 어린이와 그림책에 나오는 말들이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되돌아보았을 때, 아 정말 그렇구나 하고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들이 많다.

그리고, 좋은 그림책이란 무엇일까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고찰하게 된다. 아이가 책을 워낙에 좋아하고 잘 읽으니까, 나도 모르게 자꾸만 그 책이라는 감투를 쓰고 무언의 목적을 자꾸만 심으려 한 건 아닌지 되돌아본다. 요즘 들어 나도 모르게 자꾸만 아이에게 리딩 컴프리헨션 같이 질문을 하고 있진 않은지, 아이가 그냥 즐겁게 보고 있는 그림책 위로 살짝 과학이나 역사나 일종의 지식이 덮인 책을 한두권 더 보길 바라는 마음에 올려놓지는 않고 있는지.

살아가는 것에 대해, 삶도 그러하고, 교육도 그러하고, 육아도 그러하고, 그 본질이 무엇이고 잃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좋은 그림책을 볼 수 있는 안목과 그 짜릿함을 잘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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