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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Apr 13. 2022

고마웠어. 사랑해.

한번도 살아보지 못한 나를 살다

울진에서 삼척으로 이동하는 중에 찍은 사진. 2021년 여름

한적한 도로.

눈앞에 펼쳐진 도로의 끝이 바다인지 하늘인지 모를 신기루 같이 느껴졌다.

신랑과 단 둘이 드라이브를 한다.

우리 둘만 이렇게 있어본지도 참으로 오랜만이다.

차 안에서는 이십 대 때 우리가 즐겨 듣던 오래된 노래들이 나온다.

우리는 말이 없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그런 상황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우리는 아이들이 없으니 할 말이 없어지는구나.

노래의 볼륨을 키우고 그렇게 끝없이 길을 달린다.

신기루 같이 저 멀리 보이는 하늘이 파아랗다.

이 도로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차는 빙판을 미끄러질 듯 조용히 도로를 미끄러진다.

어느덧 신기루의 끝에 왔을까?

갑자기 네비에 도로가 사라지고 파란색만 보인다.

어?

바다다.

도로가 끝이 났다.

방금까지 있던 도로가 갑자기 끝나고 바다에 차가 빠진다.

조금씩 물이 차오른다.

조금 전까지 들리던 노래가 멈춘다.

안전벨트를 풀어보려 하지만 불가능하다.

나는 신랑의 손을 잡는다.

신랑도 나의 손을 꼭 잡는다.

어느새 물이 가슴까지 올라온다.

"고마웠어. 사랑해."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서로의 얼굴을 본다.

눈물이 가득한 눈, 무섭지만 서로를 향해 힘껏 웃어 보인다.

"고마웠어.사랑해"

신랑도 내게 같은 말을 해준다.

물이 가득 찼다.

신랑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빌어먹을 안전벨트 때문에 꼼짝을 할 수가 없다.

숨을 쉴 수가 없다.

필사적으로 창문을 두드린다.

있는 힘껏 심장을 두드린다.

숨을 쉬고 싶다.

머리를 쥐어뜯고,

살고 싶다는 처절한 몸부림을 한다.

고통이 점점 짓눌러올 때, 차라리 빨리 죽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모든 몸부림을 멈춘다.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니, 우리 아이들이 보인다.

"엄마, 사랑해. 아빠, 사랑해."

아들이 환히 웃으며 말한다.

"엄마, 아빠, 우리를 있는 힘껏 사랑해줘서 고마워.

우리는 잘 살게. 걱정하지 말고 가도 돼."

딸이 힘주어 말한다.

목소리는 어린 지금 아이들인데, 눈을 감고 본 아이들은 이내 다 큰 성인이다.

지금 신랑과 나의 나이 정도 되어 보인다.

힘겹게 몸부림치며 마지막으로

"고마워. 엄마 아빠에게 태어나줘서."라고 말하려는 데 숨이 끊어졌다.

안돼! 더 말해줘야 해.

너희가 있어서 엄마 아빠는 좋았다고.

너희로 인해 엄마 아빠는 매 순간이 선물이었다고.

말하지 못했는데 숨이 끊어지면 안 된다며,

발악을 하는 순간 눈물 땀범벅이 된 채 잠에서 깼다.


이 세상의 끝날에, 신랑에 대한 나의 마지막 인사는 "고마웠어. 사랑해"였구나.

내가 이 세상에 없어도, 우리 아이들은 그동안의 사랑을 받아 씩씩하고 힘차게 웃으며 나를 기억하며 잘 살아가겠구나.

그 사실이 감사하고 이토록이나 안도가 되는데, 왜 이리도 눈물이 나지.


나는 꿈을 잘 꾸지 않는다. 피곤해 죽겠을 때, 누군가에게 두들겨 맞거나 크게 다치는 꿈을 꾸는 거 말고는 이토록이나 생생한 꿈은 정말 오랜만이다. 꿈에서 색이 이토록 선명히 보였던 것도 오랜만이다. 그러나 꿈은 꿈인지라, 논리 전개도 개판이지. 잘 가던 도로가 왜 갑자기 끊어져 바다가 되고, 지금 나이의 우리였는데 왜 갑자기 아이들이 우리 나이만큼 늙은 건지.

나의 꿈은 내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이었을까? 왜 그 순간을 보여준 것일까? 정신이 번쩍 들어 자다 말고 엉엉 울다 말고 노트북 앞에 앉게 한 것일까?


꿈속에서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나 자신이 되어 나는 새로운 경험을 한다.

꿈속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

"고마웠어. 사랑해."

꿈속에서조차 내가 끝끝내 내뱉지 못했지만 하고 싶었던 말.

"아가, 너희들이 있어 모든 순간이 선물이었어."


꿈이 내게 펼쳐준 영상 앞에서 나는 그저 엉엉 울 수밖에 없었다.

깨어나서 다행이라고, 이런 꿈을 꾸어서 다행이라고, 꿈속에서라도 "고마워,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 다행이라고. 그 모든 것들이 다행이라며 펑펑 눈물을 쏟는다.


꿈으로 살아보는 한번도 살아보지 못한 나, 꿈이 알려준 것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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