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가 아닌 교훈이 되기 위해
오늘도 나는 대수롭지 않은 척을 한다.
잠이 들기 전, 누워있던 아들이 이야기한다.
"엄마, 나 사실 아까 공원에서 배가 아팠는데, 혼날까 봐 이야기 안 했어."
"아픈걸 왜 혼내. 아플 땐 이야기를 해야지~"
"네 살 때, 유치원에서 팔이 빠졌을 때, 옆반 선생님이 화를 냈어. 자꾸 아프다고 울면 주사 놓는다고 했어. 그래서, 혼날까 봐 아플 때마다 말하고 싶은데 참아."
아아! 이제야 2년 전 그때가 이해가 된다. 당시, 항상 살뜰하게 우는 아들을 챙겨주시던 담임선생님께로부터 하원 전에 연락을 받았다. 아들이 친구랑 놀다가 놀잇감에 팔꿈치 쪽이 부딪혔는데, 자꾸 아파해서,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해서 정형외과에 데려왔다고 하셨다. 그 결과, 팔꿈치가 빠졌고, 엑스레이를 찍는 과정에서 의사가 요리조리 돌리는 과정에서 팔이 잘 맞추어져 통증이 사라졌다. 일명, 팔이 빠졌다 팔을 끼운 것이다.
워낙에 아들이 엄마같이 잘 따르고, 아이들을 정말 엄마처럼 잘 보아주시던 담임선생님을 아들은 참 좋아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옆반 선생님이 무섭다는 이유로, 여러 번 원에 가기 싫어한 적이 있었는데, 워낙에 말투에 예민한 감정선을 가진 아이인지라 작은 것에 아이 스스로가 그리 느꼈겠거니, 하고 별수롭지 않게 넘겨왔었는데, 아파서 울었는데, 도리어 혼났다고 느꼈던 어린 네 살의 마음이 아직도 곪아, 아파도 이제는 혼날까 봐 아프다 말하지 못하고 참지 못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정황을 살펴보면, 옆반 선생님께서는 아이가 너무 계속 우니까, 그리고, 팔이 빠진 지 상상하지 못하셨을 테니까, 별거 아닌 것에 왜 이리 우냐며 자꾸 울면 주사 놓는다, 하고 그냥 이야기한 것인데, 정말 아팠던 아들로서는 서운함이 뼛속까지 남아버렸던 것이었다. 당시 놀잇감을 갖고 신나게 놀다 그리 된 건데, 옆반 선생님께서 영향이 있는 친구는 야단치지 않고, 아파 울던 아들만 혼났다고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니, 일종의 억울함이 가미되어, 계속 원에 가기 싫어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다섯 살이 되어, 층이 달라지자, 자기는 이제 그 선생님이 곁에 안 계셔서 좋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어, 와하하. 웃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 2년 전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렇게 웃을 일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여섯 살! 아직도 네 살 때 일이 마음에 남아, 정말 아플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참는 아이를 보며, 마음이 저리다. 그저 pain tolerance가 큰 아이인가 보다 생각한 내가 원망스럽다. 그러나, 이미 지난 일들. 들추어보았자, 서로에게 얼룩만 남는 일들. 아이를 키워보았기에 아는 일들. 때로는 별거 아닌 것 같은 것들이 별거가 되어 비수를 꽂아버리는 일들. 결국은, 내가 스스로, 그리고 아이가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일들!
비록, 시간을 돌릴 수 있어, 그때 그 선생님께서 나중에라도 아이가 실제 팔이 빠진 걸 알았을 때, " 호야, 그때 선생님이 네가 정말 아픈지 몰라서 그랬는데 섭섭했겠구나."라고 용기 있게 말해주셨으면 참 감사했겠지만, 그 선생님 스타일은 그렇지 않으셨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참 힘들다. 다른 기질의 네 살의 아이를 돌보는 일은 고되다. 감정선이 예민한 아이에게 더 보아달라고, 그것도 옆반 선생님께까지 바라는 것은 누가 보아도 무리수이다. 그나마, 담임선생님께서 유심히 보고 병원에 데려가 팔을 끼워주심에 다행이고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
" 아픈데, 아프다고 야단맞는 기분은 참 속상할 거 같아. 근데, 아프면, 아프다고 꼭 이야기해야 해! 그래야 도와줄 수 있어. 아프다고 지금처럼 참으면 안 돼!! 엄마랑 약속해! 엄마는 절대로 아프다고 혼내지 않을 거야. 아픈 걸 말해야 치료할 수 있어. 약속!"
애써 대수롭지 않은 척, 아이와 약속을 하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아이를 재웠다. 대수롭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내가 대수롭지 않은 척을 해야, 아이도 이 일이 상처가 아니라, 교훈이 될 것이라 믿는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아이들의 마음까지 살피는 일들은 실로 너무나 어렵다. 그리고, 지나버린 일들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어른으로 성장하고, 어른으로서 아이들을 대할 수 있었으면, 비록 어른이기에 어느 정도 아이들에 대한 선호도가 생기고 맞는 기질과 아닌 기질에 대한 편애도 생길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이기에 어린이라는 그 시절을 관통하여 온 시간들을 생각하며 관용을 베풀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남는다. 섭섭함은 잠시 잊고, 나부터가 더 겸손하게 잘 아이들을 대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많이 아픈 밤이다. 아이의 일은, 특히 아이의 마음 상처는, 늘 그러하다. 담임선생님께서 아들 안고 병원 가주시고 위로해주신 감사함만을 기억하며 이 또한 마음의 흉이 남지 않게 아이가 잘 이겨내리라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