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여행 Aug 12. 2021

윗집 아이

윗집 아이에게도, 우리 아이에게도, 사십춘기를 지나는 나에게도

처음에는 윗집이 그리도 싫었다.



신축 아파트는 원래 층간소음이 이토록이나 취약한 것인가? 놀라울 정도로 엄청난 층간소음을 들으며 하루하루 윗집이 싸우지 않기를 기도하며 떨리는 가슴을 안고 지냈다. 겨우 잠이 들었다가도, 이내, "쿵" 하고 무언가 떨어지고 깨지는 소리에 잠을 깬다.



제발.. 아이들이 깨지 않기를.... 오로지 그 하나의 생각으로 당시 18개월 막내를 안고 재우며, 첫째가 뒤치락 엎치락할 때마다 불안했다.

결국은 첫째가 다섯 살이던 어느 날 쉬를 한다고 깨서 화장실에 가더니 "엄마, 씨발이 뭐야?"라고 물었다. 화장실에서는 정말 온갖 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잘 들렸다.

"제발 살려줘!"라는 소리가 들릴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손이 덜덜 떨렸다. 보통은 새벽 2시 이후. 이런 소리에도 곤하게 잠을 자는 신랑을 깨우며, 윗집이 심각한 것 같은데, 가만히 있어도 되냐고 물으면, 신랑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뭐. 또 싸우나 보지." 하고 다시 잔다.

"너무 심한 거 같아. 누가 맞는 거 같아. 어떡하지?"

"때리고 맞고 뭐 하나 보지. 싸우나 봐." 신랑은 여전히 그런가 보다 한다.



대수롭지 않은 게 아닌 거 같은데, 나는 두려움에 매일 밤 덜덜 떨었다. 제발... 아무도 다치지 않게 해 주세요. 제발... 그만하게 해 주세요. 제발... 뭐 던지지 말아 주세요. 제발... 그만 욕해주세요. 그러다 한계치에 다다를 때 즈음, 카톡이 온다.

" 지금 그 소리 그 집 윗집이야?"

오른쪽 옆집 언니다.

조금 후에는

"자기 지금 싸우는 거 아니지? 이게 어디서 나는 소리야?"

왼쪽 옆집 언니다.

조금 후에는

"경비실 연락해야 할까요? 그냥 둬도 되는 걸까요? 어떡하지? 혹시 자기가 먼저 얘기했어? 얘기해야 할 거 같아."

위에 옆집 언니다.

결국, 경비실에 층간소음 문제로 연락했다, 가정 싸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한번 가서 민원이 들어왔다고 이야기하며 봐달라고 인터폰을 한다. 망할 인터폰은 스피커폰이고,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서 새벽 3-4시에는 정말 인터폰이 오는 소리도 층간소음으로 다 들린다. 이 소리를 윗집이 듣고 나중에 해코지하지는 않을지 두려웠다.

쿵쿵. 벽의 진동을 타고, 천장 전등이 흔들리고, 안방에서 거실로, 작은 방에서 작은 방으로 거대한 발걸음이 다급하게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물건들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 비명소리, "제발 그만해!"라 울부짖는 그 집 딸내미의 소리가 모두 적나라하게 들리다 늘 "삐리리 삐리리" 인터폰 소리가 들리고 잠시 고요해진다. 잠시 고요해진 이후, 경비아저씨는 다시 우리 집에 인터폰을 하신다. "이제 조용해졌나요?"라고.

그 소리를 윗집에서 들을까 봐 조마조마하고, 아이들이 그 소리에 깰까 봐 조마조마하고, 어떻게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같이 이럴 수가 있는지에 대해 울분이 났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을 잘 잘 수 있는 신랑을 두고는 정말이지 대단하다 싶었다. 그런 잠귀가 부러웠다.

이사를 와서 2년간 한 번도 제대로 자 본 적이 없다. 망할 층간소음이 주는 무시무시한 싸움의 소리는, 비주얼이 없어서 나의 상상이 가해져 더욱 무시무시한 괴물로 변했고,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제발..... 제발 그만해주세요"라고 엉엉 울었다.


경찰에 신고를 하고 싶은 순간이 정말 많았지만, 이 또한 이웃의 입장일 거, 그 집에서 보았을 때는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러다 너무 심각해진다 싶으면 그저 보안실에 연락하여 한번 가봐달라고 부탁드릴 뿐.

그런 마음이 풀린 것은 어느 날, 싸움의 끝, 당시 중3들이 외친 한마디 때문이었다.

"엄마,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어? 말 좀 해봐. 엄마, 네가 사람이냐고!!!!"

그날도 역시 나는 이사를 잘못 왔다, 윗집이 제발 좀 이사 갔으면 좋겠다, 여기 더 살다가 나는 신경쇠약으로 정신병을 얻겠다며 제발 잠 좀 자고 싶다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는데...

그 말 한마디에 눈물이 쏟아졌다. 코, 잠자고 있는 막내아들을 보며, 갑자기 우리 아들이 중3이 되어, 나에게 "엄마,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야?"라고 말한다면, 나는... 나를 견딜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이렇게 작고 예쁘고 사랑하는 나의 아들이, 내가 그런 말을 할 날이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만약 온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날 이후, 우리 윗집에 대한 모든 원망과 분노, 물론 한마디도 표현하지 못하고 나 혼자 삭히고 삭혔던 원망과 분노가 누그러졌다. 윗집 아주머니를 만날 때면, 가슴이 아팠다. 아주머니가 쑥스럽게 웃으며 인사를 해올 때면, 우리 집에 이렇게도 많은 층간소음이 들른다는 사실을 영영 몰랐으면 했다. 아주머니의 마음은 어떨까.

어느 날, 쇠파이프를 두들기는 소리가 들리며, 괴성이 들려, 이건 정말 누구 하나 죽는 것이 아닐까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결국, 나보다 한 발 앞선 위에 옆집 언니가 신고를 해 주었다.

아들이 화가 나서 집을 나서서 계단의 쇠파이프를 모두 뽑아 기억자로 휘여놓았다. 그리고 그 쇠파이프가 그대로 계단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 집 아버지는 죄송하다고 이웃에 사과하고, 계단을 원상복귀시켜 놓으셨다.

마음이 아팠다. 아주머니는 말씀하셨다. "죄송해요. 애들이 참 착했는데... 사춘기가 아주 지랄 맞게 왔어요. 왜 이러나 모르겠어요. 참. 마음처럼 안되네요. 죄송해요."

그 앞에서 나는 감히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코로나로 우리 위 아랫집은 매일같이 집에 갇힌 신세, 중학교, 고등학교인 그 집 아이들이 공부해야 하는데 유치원 초등학생인 우리 아이들이 매일같이 뛰며 소리 지르는 소리들에 미안하여, 예쁜 꽃다발 하나 사서, 편지 예쁘게 써서 살짝 현관에 갖다 놓는 게 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코로나라 아이들을 데리고 야외놀이를 많이 할 수 없어, 낮시간 소음이 클 텐데,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대충 이런 내용으로 손편지를 썼었던 것 같다.

아주머니는 본인의 가게에서 아이들 먹으라고 먹거리를 챙겨주셨다. 그리고, "죄송해요" 이 한마디만 하셨다. 아주머니의 뒷모습이 너무나 슬퍼서 선명하다. 잊히지가 않는다.

그 뒤로 싸움은 많이 잦아들었고, 그렇게 중2병이 지나가나 싶었다. 중 2만 지나가면 나아진다더니, 정말 신기하다, 속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아들은 지금 고2가 되었다.

오늘, 음식쓰레기를 버리러 밤 9시 넘어 쓰레기장에 가는 길, 공동현관에 시꺼먼 물체가 앉아있었다. 깜짝 놀라 쳐다보니, 윗집 아이가 거기 앉아 뻐끔뻐끔 담배를 피우며 전화를 하고 있다. "야, 누구누구 온대? 여자애들도 좀 부르지 그래?"

쓰레기를 버리고 다시 돌아오는 길에도, 나를 전혀 개의치 않는다. 뭐야? 너는? 하는 눈으로 빤히 쳐다본다. 일부러 모른 척 재빨리 집에 들어왔다. "꺼져!"하고 외치는 눈빛에, 나의 마음이 공기를 타고, 윗집 아이에게 닿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그러고 보니, 이름도 모르네. 윗집 아이야. 네가 겪는 이 시기가, 부디, 언젠가 네 삶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잘 흘러가길 아줌마가 바랄게.

그러고 보니, 나는 나이 마흔 하나에 괴물이 되어 부모님께 고래고래 소리치며, 짐승이 내는 포효를 하며 울부짖었다.


네가 가진 세계에서 네가 내고 싶었던 소리는 얼마나 많을까, 너는 그걸 내고 있는 걸 텐데, 그렇지만, 너무 멀리는 가지 않아 주었으면....

어머니의 뒷모습이 울고 있었는데....

어머니의 뒷모습이 너무나 슬펐는데...

그래도 어머니가 너무 힘드시지 않게, 조금만 더 방황하고, 실컷 너를 찾고 꽉 막힌 이 세상에서 네 목소리를 내었다가, 꼭 다시 성장해서 돌아왔으면... 그래 주라...

마음속으로 담배를 피우는 윗집 아이에게 외쳤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9살, 6살 아이들이 "엄마, 어디 갔다 왔어?"하고 현관문 앞에서 나를 맞는다.

사춘기.

언젠가.. 우리 아이들도 지나갈 시기. 어쩌면 우리 모두가 지나갈 시기. 이 시기가 없이 지나가도, 이 시기를 겪고 지나가도, 모두에게 혼란스럽고 힘들 시기이지만, 반드시 필요한 이 시기.

이 시기가 부디, 모두에게 자양분이 되는 결과로 돌아오길 간절히 바란다. 우리 윗집 아이에게도,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리고, 사춘기 한번 없이 사십춘기를 지나는 나에게도.

작가의 이전글 상처가 아닌 교훈이 되기 위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