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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Nov 02. 2022

공간의 주인

공간을 다스리며 찾는 자유와 가치

'공간을 다스리는 자'가 되고 싶었다. 철마다 가구의 배치를 요리조리 바꾸고 아름다운 소품을 사서 계절을 알게 하는 집에서 살고 싶었다. 왜냐하면 우리 집은 늘 같은 위치에 같은 것들이 이십여 년간 그대로였고, 나는 그 사실에 진절머리가 났기 때문이다. 고장 나서 기능을 더 이상하지 못할 경우에만 집안의 물건이 바뀌었다. 그 외의 모든 물건은 바뀌지 않았고 물건들의 배치조차 바뀌지 않았다. 켜켜이 쌓여 살림은 불어났지만 공간은 그대로였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를  파악하기 어려운 구조처럼 보이나, 카오스 속의 코스모스라고 엄마는 그 어마 무시한 살림 더미 안에서 필요한 무엇을 정확히 찾아내곤 하셨다. 혹여나 정리를 하여 누가 그 무질서를 흐트러 놓으면 도리어 찾고자 하는 물건을 찾을 수 없게 되곤 했다.


나만의 공간이 생기면, 잡지 속에서 보이는 집처럼 단정하고 포근하게 꾸며놓고 철마다 개성을 입혀 포인트를 주고 싶었다. 그러나 신혼집은 너무 좁아 가구 자체를 둘 수 없는 구조였다.  아이가 둘 태어난 후에는 실평수 15평 집에서 네 식구가 살았다. 아장아장 걷고 싶은 아이가 걸음마 보조기를 밀고 두 발자국만 가면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곤 했다. 재건축 직전의 아파트는 곰팡이로 가득했고 수도를 사용하기 위해 족히 5분 이상 녹물을 흘려보내야 했다. 이런 구조의 집에서 개성 있는 인테리어 따위는 사치 중에 사치였다. 사실상 그동안 나의 집들은 공간을 다스리는 법을 배울 수 없는 구조이기도 했다.


5년 전, 이사 온 지금의 집은 드디어 생각했던 집의 모양새를 갖추었다. 나는 이 집에서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처음으로 공간을 마음껏 부릴 수 있음에 마음이 설레었다. 인터넷에 보이는 멋들어진 인테리어는 못해도 적어도 지난 집처럼 살지 않으리라는 야무진 포부를 갖고 공간을 채웠다. 아이들 물건을 제외하고는 기존에 가져온 물건들과 무조건 싼 값의 물건들로 채워진 집은 조화롭지는 못했지만 무려 30평짜리의 아파트 집이었다. 마음이 콩당였다.



시간이 5년이 흘렀고 나는 식탁에 앉아 생각한다. 그렇다. 나는 정리란 것을 더럽게도 못한다. 정말 정리 꽝 영역에서 나는 좀 최고다. 서랍이 닫히지 않을 지경까지 옷을 꾸역꾸역 집어 쳐 넣고, 계절 옷 갈이는 너무 귀찮아서 곧 날씨가 또 변덕을 부릴 것이라며 미룬다. 서랍 안에는 첫째 옷과 둘째 옷이 뒤엉켜 있고, 여름옷과 가을 옷, 겨울옷이 섞여 있으며, 런닝부터 내복까지 신나게 나뒹군다.


이는 비단, 서랍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글은 300개가 넘어가는데, 어느 글은 A 플랫폼에, 어느 글은 B 플랫폼에, 어느 글은 하나에만 있고, 어느 글은 C플랫폼에 있다. 분명 그 글이 어디 있는데... 하며 찾는데 오만 년이 걸려 결국 엑셀로 하나하나 제목 작업을 하고 있다. 카테고라이징 작업을 하며, "와. 씨. 이거 장난 아니네."를 칠십 번 정도 연발하고, 왜 나는 그동안 열심히 써놓은 거 정리를 안 해놨나 후회해보지만 돌아보면 늘 시간이 없었다.

매번 글을 놀이터 앞 벤치에서, 길가면서 음성인식으로 날것의 사유를 받아 적고, 그것들을 글의 형태로 구성을 갖춰 컴퓨터에 넣기 바빴으니, 이미 다 쓴 글은 겨우겨우 퇴고하기 바쁠 뿐, 그 글을 단정히 정리할 생각을 못했다.

튀어나와 문이 닫히지 않는 서람장처럼, 빌어먹을 나의 글 서랍장이 그러했다.


냉장고 속 공간을 더욱 상태가 심각했다. 요리에 소질이 없었거니와 억지로 하던 차에 냉장고 속을 차근차근 살펴보며 파악하는 정성 따위는 없었다. 냉장고 속에 어떤 야채들이 있는지, 만들어 놓은 반찬들 중에 먹을 수 있는 것이 어떤 것들인지 매일 들여다보지 않았고 그 결과는 형체를 알 수 없는 고약하게 배어 나온 국물과 허연 곰팡이가 낀 재료들이었다. 냉장고 서랍을 빼고 버리고 씻어내면서 냉장고 파먹기를 무조건 일주일에 한 번은 해서 싹 비워낼 거라 다짐했지만, 당장 집안 꼬락서니도 이러한데 냉장고 속 공간을 온전히 내 것으로 다스리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만 같아 두려워졌다. 한 달에 한번 강제적으로 냉장고 속을 비운다. 소스에서부터 신선재료, 조리된 음식까지 버려지는 음식들을 보며 죄책감이 켜켜이 쌓인다. 마지막은 '나는 살림을 참 더럽게도 못해.' 마무리된다.


부엌이라는 공간을 조금씩 내 것으로 다스려야겠다고 느낀 것은, 갑작스레 아이가 아픈 이후부터였다. 부엌 서랍장마다 전부 꺼내 무슨 물건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쓰지 않는 물건들은 버리거나 나눔 하였다. 이런 물건을 갖고 있었는지 조차 모른 채 있던 수많은 조리기구들, 요리 따위에 치를 떨며 이 많은 것들이 왜 우리 집 부엌에 있는지 참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냉장고 속은 과간이었다. 온갖 양념장이 유효기간이 십 년 지난 것부터 수두룩하였다. 더 부지런히 는 자신이 없고 일주일에 한 번 냉장고 속을 살피고, 재료를 모두 소진하는 방향을 택하며 원하는 재료로, 필요한 조리도구를 이용해 간단하게나마 매일같이 밥을 해 먹었다. 조금씩 나 스스로가 부엌을 부릴 수 있을 즈음 나는 요리가 더 이상 괴롭지 않았다.


부엌을 온전히 내 것으로 다스리지 못할 때에는 이런 기쁨을 느끼지 못했다. 어느 순간, 요리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요리를 하는 시간이 아깝다거나 귀찮다고 느끼지 않고 그저, 나의 귀한 돌봄으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들의 배가 채워지고 그들이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요리를 하는 나의 손은 귀찮음과 짜증 대신 고귀함과 존중이 담겼다.


정리는 여전히 내게 어려운 분야이다. 나는 '안 쓰는 것은 버리고'부터가 되지 않았다. 언젠가는 필요할 것 같아서 어디엔가 넣어두고 어디에 넣었는지 몰라 결국 또다시 사게 되는 악순환을 겪으며 우리 집에 어떤 물건이 어디에 수납되어 있는지 본인조차 알 수 없어진다. 아이들이 어지러 놓은 방을 보고 '정리하라.' 말하기가 민망해진다.

 

공간이 오롯이 내 것이 되기 위해서는 공간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는다. 나의 부엌이 그러하였듯, 내가 다스릴 수 있는 공간 안에서 생겨나는 나만의 자유와 새로운 가치를 알아간다.

사람을 살리는 일, 귀찮고 티 나지 않는 일,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 할 일, 그리고 너무나도 중요한 일. 집안에서 나가 하는 일은 보통 이러하다. 그동안은 희생이라 여기어 내 스스로가 피했던 일, 그러나 알고 보니 결국 그 일은 나 자신의 자유를 가져다준 고귀한 일이었다. 크게는 가족을 위한 일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나를 위한 일이었음을.


나는 공간을 다스리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는다. 하루에 한 구역을 잡아 마스터한다. 이곳에 어떤 물건이 들어있는지, 내게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무엇인지, 이 공간을 더 빛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한다.

  아무도 없는 집안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해가 거실 가운데까지 늘어져 들어오는 이 시간, 커다란 베란다 창으로 보이는 나무가 단풍이 들었다. 늘어진 해 속에 녹아들어 늘어져 누워있노라면 창 밖의 나뭇잎이 주는 반짝이는 일렁임으로 황홀해진다.

 우리 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부엌 김치냉장고를 뺀 자리에 마련한 나의 작은 책상이다.  집안일을 하면서도 틈새로 무언가 할 수 있는 공간이 부엌에 존재한다는 것은 참으로 편리한 구조다. 아이들에게 밥을 차려주고 먹는 것을 바라보며 틈새 글쓰기를 할 수 있고, 급할 때마다 꺼내 읽을 수 있는 책더미가 있는 곳. 전자레인지에 음식을 데우며 한 페이지라도 읽을 수 있는 그곳이 내게는 그 어떤 서재방보다도 멋진 공간이며, 적어도 이 공간 안에서 나는 주인임을 느낀다. 공간의 주인이 될 때 누릴 수 있는 행복이 넓어지길 소망한다. 지금은 비록 부엌 한편이지만 언젠가는 우리 집 전체가 나의 손아귀에 들어오기를 바라며, 그런 날이 오면 적어도 내가 원하던 아름다운 빛으로 이 집을 채울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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