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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Nov 01. 2022

그저 내가 아니었을 뿐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어젯밤 너무 많이 걸었는지 허리가 찌뿌둥하다. 고질적인 허리디스크가 되어버렸는지 자고 일어나도 엉거주춤 힘들다. 힘겹게 일어나 거실로 나가니 신랑이 깨어있다. 눈이 마주쳤다.

"큰 일 났어."


힘주어 말한 신랑의 목소리 그 네 글자에 갑자기 다리 힘이 풀린다. '무슨 일인데?'라고 묻기까지 단전에 힘을 단단히 주어야 했고, 예상 밖의 어떤 끔찍한 이야기를 듣게 될지 몰라 각오를 다졌다. 그렇게 나는 이태원 소식을 듣게 되었다.


사고가 일어난 바로 그날, 나는 두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었다. <K귀신 할로?>라는 기획전이 꽤나 근사해 보였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굿판'도 보여주고 싶었고, 서양 문화인 핼러윈을 무분별하게 따르기 이전에 앞서 우리나라의 귀신들에 대한 소개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K귀신전이 저녁 6시부터 시작하는 것을 감안할 때, 주차에 걸리는 시간과 인파가 몰릴 걸 생각하여 미리 박물관에 들어가 관람을 하였다.

다섯 시 좀 넘었을까? 행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푸드트럭의 음식이 동이 났으며, 편의점에 들어가기 위해 백 미터 이상 줄을 서야 했으며, 편의점 안에는 생수가 동이 나 다시 채워지기까지 기다려야 했다. 쉬가 마려운 아이를 데리고 2백 미터 넘는 화장실 줄을 기다리고, 팸플릿을 받기 위해 족히 8백 미터 이상의 줄을 섰다.


미리 공연장에 가 있던 신랑과 둘째를 만나기 위해, 전화를 하며 첫째 아이와 함께 인파를 뚫고 가는데, 목마를 타 확연히 눈에 띄는 둘째 아이가 아니었으면 결코 만나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결국, 오랜 시간 기다린 아쉬움을 접고 박물관을 떠났다. 분장한 우리나라의 멋진 귀신들이 많았지만, '사진 찍을래?'라는 말에 두 아이들은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다.


"왜?"

"사진 찍느라 엄마 손을 놓치면 영영 잃어버릴 것 같아."

아이들은 겁에 질려 있었다. 숱한 인파 사이에 키 작은 아이들의 위치에선 나는 그제야 아이가 느꼈을 공포가 보였다. 멋들어진 분장을 한 K귀신들을 뒤로하고 그저 우리 아이들 손을 꼭 잡은 후, 그곳을 떠났다.


먼 길을 왔는데 그냥 떠나기 허무하기도 했지만, 지금 인파 안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은 이곳을 떠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차장을 빠져나오는 데만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차 속에서 신랑과 나는 말했다.

"박물관측에서 행사 수요 예측 조사에 실패한 것 같아. 사람이 정말 많아도 너무 많다."

겨우 빠져나온 차를 집으로 돌리며 나는 생각했다.

'그래도, 용산까지 왔는데 조금 아쉽다. 이태원이라도 들렀다 갈까...? '


그렇게 그날, 집에 들어와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나는 놀았던가?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지만, 나는 놀고 싶다.

어린 시절은 여한이 없었다. 놀아야 할 때 실컷 놀았으니까. 얼굴이 시커멓게 타고 자연을 벗 삼아 친구를 벗 삼아 가족을 벗 삼아 온갖 놀이의 달인이 되어 놀고 놀고 또 놀아댔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 어둑해질 때까지 가장 마지막까지 놀이터에 남아있던 무리 중 하나였다.


원 없이 놀던 유년시절을 보내준 후, 찾아온 청소년 시기는 그저 조용하고 성실한 시기였다. 튀지 않고 무던하게 흐름에 따랐고 성실함은 극치를 달했다. 그런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이후에도 어딘지 어긋난 그 성실함은 이어졌다. 대학에 가서도 과도하게 말이다. 젊은 시절에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희생시켜가면서 까지 말이다.


나는 늘 소망했다. 펍에도 들어가 보고 음악도 즐겨보고 춤도 추어보고 사람들도 만나보고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클럽은 어떻게 생겼을까? 화장을 멋들어지게 하고 거리를 활보하면 어떤 기분일까? 드라마나 책 속에서만 만나보던 삶을 상상하면서도, 나의 젊음이 주는 반짝거림을 숨기기 바빴다. 누더기로 감싸 빛이 행여나 새어 나올까 두려워 먼지처럼 지내던 시간들이 아까워서, 나는 지나가버린 그 청춘을 늘 아쉬워하며 바라보곤 했다.

 다시 돌아간다면, 즐길 수 있을 때 무조건 즐길 거라며,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리 이야기할 거라며.


채 피어보지도 못한 아름다운 청춘들이 고통스럽게 사고를 당했다. 코로나로 억압되어 있다 이제 겨우 나와 친구들과 분위기를 즐기고 싶었던 것이 전부였을텐데... 애지중지 키웠을 부모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차마 헤아리지 못하는 마음을 어떻게 애도할 수 있을까.

155명의 꽃 같은 목숨이 사라졌다.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155건 발생다. 한 창 아름다울 시절에, 아무 준비도 하지 못한 채,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말이다. 준비하고 있던 죽음을 맞이하는 일도 고통스럽다. 하물며 전혀 준비하지 못한 죽음을 맞아하는 고통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시기는 단풍이 들고 하늘은 더없이 맑고 아름답지만, 고통을 맞이한 가족들에게 이 시기는 그저 흐릿한 안개 속일 터이니, 그들의 안개가 감히 걷힐 수는 있을 것인가? 준비하지 못한 채 자식을 보내는 부모의 심정을 상상할 수도 없는 그 심정을 그저 깊이 애도한다. 고요히 위로를 보내며.


보이지 않는 나의 삶이 닿아, 작은 위로가 되길 바라며 시월의 마지막 날 바람에 염원을 보냈다.

"죽은 사람은 쉽게 오해된다. 다층적이고 다면적인 삶을 살아온 한 인간의 삶이 죽음의 시점으로 단일하고 평면적인 그것으로 납작해진다. (중략) 우리가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유는 그의 삶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박혜진 비평집, 언더 스토리>


사건 당일 잠들기 전, '여기까지 왔는데, 이태원이라도 들를 걸 그랬나?' 라 생각하며 집에 돌아온 나는, 그저 당장의 운이 좋았을 뿐이다. 깊은 애도와 함께 간절히 바란다. 죽음이 소비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미디어와 sns에서 자각하며 의식을 갖고 사실을 전하여 죽음을 대했으면 좋겠다.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유가족들의 슬픔을 으며 생각한다.


*아픈 마음으로 일기를 씁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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