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여행 Nov 09. 2022

독서에 관한 지극히 사적인 수다

현실 회피와 직시 사이에 선 독서에 관한 단상

 나는 책이 도피처가 되는 사람 중 하나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 독서를 강요하지 않는다. 책은 아이에게 사유의 지평선을 넓혀줄 수 있으나 책으로 인해, 다양한 방식의 자기 위로와 도피처를 발굴할 기회를 박탈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웠다.

  예고에 없이 아이가 아픈 이후, 책은 다시 나의 도피처가 되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한 달에 못해도 스무 권 이상의 책들을 읽으며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아.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

  정신을 차려보면 나는 책의 행간에 살고 있었다. 현실세계가 아닌 책이라는 거대한 세계에서.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시발점이 되었지만, 결국 내가 맞닥들이치며 살아가야 할 곳은 현실인데 나는 도망쳤다. 책장 속으로, 글자 안으로, 문장과 문장 사이에 완전히 갇혀 나오고 싶지 않은 나 자신을 발견했다.


 미친 듯이 폭식하듯 책을 게걸스럽게 먹어재끼는 시기가 온다. 그리고, 내게는 그것이 건강한 방식이 아님을 알고 있기에 독서의 명암에 대해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독서는 무조건 좋은 것인가? 라는 질문 앞에서 나는 다시 묻는다. ‘현실의 도피처가 되어버린 독서’는 좋은 것인가? 즉시 대답을 할 수 없다. 언젠가는 명이 되겠지만 당장은 암의 영역에 있는 독서가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할 뿐이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은 모든 책은 각각의 의미가 있지만,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기는 다르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잃은 후에도 읽을 수 있는 글이 있는가 하면, 결코 그러지 못할 글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책장을 정리했다. 많은 책을 아파트 단지에 드림하고 친구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원론이 담겨있지 않은 방법 위주의 교육서, 경험 위주의 육아서, 에세이 중 일부는 단칼에 잘려 나갔고, 철학, 글쓰기, 고전, 과학서, 에세이와 소설의 일부는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어 남겨두었다.


  여러 마음이 드는 요즘, 일곱 살 둘째가 말했다.

  "엄마, 나 이 영화 영어로만 보고싶어. "

  그 말을 들은 아이 친구 엄마들은 기특하다, 영어에 거부감이 없다는 말을 하였지만, 나는 마음 한켠이 불안했다. 아이는 영어를 좋아하지만 늘 부끄러워했고 아무래도 영어보다는 한국어가 편한 아이이기 때문에 아이가 가진 초감정의 실체를 알고 싶었다. 조심스레 이끌어 낸 대화 끝에 아이는 자신의 감정 너머의 감정을 말했다.

  "여기 슬픈 장면이 있는데, 한국어로 보면 너무 마음이 슬플 거 같아서. 그래서, 영어로 보고싶어."

  아이는 이어서 말한다.

  "영어로 보면 말이야...엄마.

  슬픔이 덜해. 신기하지? "


  일곱 살 아이에게, 영어가 감정의 슬픔을 낮춰줄 수 있는 묘약이 되기도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똑바로 직시하며 알아가는 기회를 앗아가는 도피처가 되기도 했다.

  어쩌면 내게 책이 그런 도구이지 않을까? 현실이 힘드니 책 속으로 숨고 싶은 마음 한 켠이 점점 자라나는 요즘, 독서의 이면에 숨은 나의 마음을 살펴보며 나의 독서가 밝은 빛으로 나올 그날을 기다려본다. 둘째 아이에게 너무 슬픈 마음이 들지 않게 가려주는 언어로서의 도구를 충실히 이행한 영어처럼, 내게는 책이 그러했다. 책은 내가 너무 슬픈 마음이 들지 않게 도와주는 도구가 되어주었다. 책은 내가 극한의 슬픔을 느껴 지금의 슬픔이 묻혀가도록 이끌어주는 묘약이 되어주었다. 현실을 회피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결국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해 잠시 웅크린 동안 함께하는 책들은 새로운 의미의 시절 친구가 되어, 나를 살게 해 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가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