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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Jan 02. 2023

우리의 단어

축구 같은 삶

"엄마, 오늘이 무비 나잇이야?"

  아이들이 성화다. 목이 빠져라 기다리던 year end party.

  미리 준비하였던 아이스크림 케이크와 디저트를 챙겨 입김을 호호 불어가며 서하네로 향한다. 방학을 함과 동시에 즐거운 일들의 연속이다. 어제와 크게 다를 것 없는 하루이지만 자고 일어나면 해가 바뀌어 있을 것이란 특별함에 한껏 마음이 부푼다. 그 한 해의 끝을 애정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낸다고 생각하니 늘그막 한 마음에도 설렘이 가득 찬다. 오늘은 서하네, 찬이네, 우리 가족 이렇게 세 가족이 모두 모여 한 해의 끝을 함께 하기로 한 바로 그날이다.

  찬이네 아버지는 아침부터 코스트코에서 립과 랍스터를 공수해와 멋진 파인 다이닝을 만들어내었다.  센스 있는 서하 엄마의 식기들로 채워진 식탁과 토치를 이용한 찬이 아버지의 요리가 합쳐지니 여느 고급 레스토랑 못지않다. 아이들은 이미 큰 방에 옹기종기 모여 오늘 무슨 영화를 볼지 고르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이들은 각기 서로 다른 나이, 다른 성별, 참 골고루도 섞였다. 동네에서 이런 우정이 가능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처음은 동네 엄마들의 고급영어회화 모임이었다. 영어가 고픈데 의외로 함께 영어로만 말할 수 있는 환경이 없었다. 회화 메이트를 찾아 헤맨다 한들 의외로 수준이 천차만별, 실컷 말하고픈 것들을 말하기에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 그렇게 영어가 고파 만난 인연은 독서가 고파 독서모임으로 이어졌고, 간간히 글쓰기까지 겸비한 모임이 되었으나, 아이들로 인해 온전히 엄마들만의 모임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우리가 하고 싶은 것들을 조금씩 하는 방향으로 모임의 방향을 틀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자연스레 플레이타임을 갖고 엄마들은 (비록 아이들과 함께하는 수준의 영어이긴 하지만 ) 그렇게라도 일상에서 잠깐의 영어를 쓸 수 있게 되었다. 그 누구도 아이들의 아웃풋에 신경 쓰지 않았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그 시간을 온전히 보내는 것에만 집중하였다. 아이들이 차곡차곡 쌓아온 시간만큼 우리 모두가 대안어른으로 모두의 엄마와 이모가 되어 우정을 나누었다.

  

  "헤어지기 전에 우리 2023년 새해를 맞아 자신이 꿈꾸는 것을 한 단어로 말해보기 할까요?"

  서하엄마가 제안한다.

  "아빠부터!"

  신랑이 고심하다 입을 뗀다.

  "축구요."

  "축구요?"

  모두가 의외의 대답에 되물었다.

  "이번에 매시가 월드컵 우승컵을 받는 것을 지켜보니 가슴이 뜨거워졌어요. 아주 오래전부터 팬이었는데, 매시의 업 앤 다운을 알알이 살펴보며 지금 이 순간을 맞으니 울컥하더라고요.

  오늘 처갓집 신정모임이 있어 갔는데, 가족 근황 및 계획을 이야기하는 코너가 있었어요. 모두가 아이의 상력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저희 가족은 그저 건강함에 감사하다고 이야기했답니다.

  호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것이 축구예요. 너무나 축구가 하고 싶어 매일 축구학원 가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곤 해요. 집에서도 공을 발에서 떼지 않고 다니고요. 그런 모습을 지켜보니 어릴 때 생각이 났어요. 저도 축구를 참 좋아했었는데... 그때는 좋아해도 축구는 당연히 나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공부해야지 무슨 축구냐고 스스로가 꼰대 같은 생각을 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요즘은 호가 이렇게 온 마음을 다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 되었든 있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하고 좋네요. 그래서, 저는 올해의 단어를 '축구'라고 하고 싶어요. 축구하듯이 살고 싶어요. 가장 좋아하는 무언가를 대하는 행복한 마음으로 살고 싶어서요."

  신랑의 이야기를 이렇게 처음 들었다. 축구를 보는 것을 좋아했지 하는 것 또한 좋아했는지는 몰랐던 였다. 신랑과 함께 한 시간이 신랑을 몰랐던 시절보다 길어진 지금에서야 새롭게 그에 대해 하나를 알았다. 축구하듯이 살아갈 그의 한 해가 기대된다.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 되었든 하나라도 있다면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


  나는 '만족'이라는 단어를 택했다. 아주 작은 것에도 감사하며 만족하는 삶을 꾸려나가고 싶다. 내가 바라보는 삶의 측면이 진짜 나의 삶이 되어간다는 것을 깨닫는 중년. 올 한 해만큼은 소소한 일상 속에 가득한 숨겨진 의미를 찾고 만족하며 살아가고 싶다. 찬이 아버님은 '나'를 선택했다. 나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 힘든 일이라고, 온전한 나를 알아본 적이 있는지 궁금해하며, 이제야 진정한 나를 알아가고 찾고 싶다고 말한다. 찬이 엄마는 '공존'을 이야기한다. 결국은 사람과 사람이 사는 삶. 연결하고 연대하는 삶 안에서 우리는 공존하는 것임을. 조금 더 그런 공존에 집중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힘주어 말한다. 서하 엄마는 '탈출'을. 안온한 삶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걸어보고 싶다는 용기를 내비치었다. 워낙에 보수적이고 도전을 두려워하는 성향의 나는 조용히 그녀의 단어를 마음에 새긴다. 그런 서하 엄마와 비슷한 맥락으로 서하 아버지는 반등을 말한다. 대충 계획은 하반기 정도로. 그들의 하반기가 어떠한 모습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아주아주 나이가 먹은 후 만난 인연들은 상당히 결이 다르다 느끼며 삶의 다양성을 경험하지만, 전혀 몰랐던 이들과는 비슷한 결임이 되려 신기하다. 겉보기에 평범하지만 자신의 삶을 소중히 매만질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보낸 모든 시간은 결코 평범이라는 단어로 포장될 수 없었다. 우리가 보낸 고유한 시간들은 몇 년을 함께 만나 성장한 아이들의 우정처럼 찬란히 빛난다. 그 빛을 닮기라도 한 것처럼, 아이스크림 케이크 속 촛불이 너울너울 춤을 춘다. 아이들의 '새해 축하합니다.' 떼창이 이어진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기꺼이 보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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