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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Dec 14. 2022

오로지 '지금' 뿐

단 하루를 살더라도 너의 생 그 어떤 것도 헛되지 않다


"입김은 찬 것을 녹이기도 하지만 뜨거운 것을 식게도 한다. 눈물은 당신을 감동시키기도 하지만 당신을 얼어붙게도 한다. 이처럼 사랑이 변하는 것은, 동일한 것이, 어느 날 문득 정반대의 의미를 갖게 되는 일이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p.298>


  너는 올 한 해 많은 단어를 새로이 정의 내렸다. 전혀 예상에 없던 일들을 겪으며 네가 가던 그 길 위에 덩그러니 선 채, 인간과 세계가 어떤 방식으로 낯설어지는지 알게 되었다. 동일한 것이 정반대의 의미로 다가올 때, 너는 비로소 믿기지 않던 일들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고통과 희망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절망과 사랑이 상호작용을 하며 빚어내는 결과물이 무엇인지, 주저앉아 더 이상 일어날 수 없을 때 너는 비로소 단단히 삶의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된다. 올 한 해 잃어버린 것들, 그 상실에 미치도록 감사한다. 비로소 네가 찾은 것은 사랑 그리고 빛.

  인생은 예측할 수 없다. 타협할 수 없다. 죽음이 들이닥치듯 삶도 들이닥친다.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다. 인생은 모순 투성이지만 결국 진심과 사랑으로 수렴한다.


  너는 올 한 해 매일 죽었다. 매일 밤 자리에 누우면 죽었고, 매일 아침 다시 태어났다. 네게는 단 하루만이 존재하였고, 너는 하루를 살았다. 현재의 순간이 죽는 순간과 만날 때까지 너에게는 단지 현재의 순간만 주어질 뿐이다. 그리고 가장 잔혹하고 연약한 것들 사이에 끝까지 머물며 그 순간을 밝혀준 것은 사랑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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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엉엉엉"


지난밤, 너의 둘째 아이가 펑펑 울며 새벽녘 네게 갔다. 꿈을 꾸었다 한다. 자신이 죽는 꿈. 아이는 죽고 나니 다시는 엄마를 볼 수가 없어서 마음이 슬퍼 자꾸 눈물이 나온다고 했다.

"그건 꿈이야. 꿈은 반대래. 아가, 넌 죽지 않아. 죽는 꿈은 그래서 좋은 꿈이라고도 한단다."

"죽고 나면 엄마를 볼 수 없다는 걸 알아버렸어. 그 마음이 너무 슬퍼. 그 꿈이 너무 싫어."

네 아이는 서럽게 울었다.


  때로는 꿈으로 전혀 느끼지 못한 감각을 느낀다, 그렇기에 너는 어린 시절부터 꿈이 싫었다. 예민한 기질의 어린이였던 네게 꿈은 또 하나의 끔찍한 세계였고, 이상하게도 너는 늘 악몽을 꾸곤 했으니까. 너의 꿈에는 사실상 색이 입혀져 나온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유독 피가 꿈속에 등장하는 날에는 무채색에서 빨간색이 입혀져 나오곤 했다. 너는 늘 밤이 두려웠다. 어떤 악몽을 꿀 지 몰랐다.


네게는 아직도 자려고 누워 자동적으로 나오는 말이 있다.

"부디, 좋은 꿈 꾸게 해 주세요. 제발 안 깨고 아침이 오게 해 주세요."

아주 오랜 시간 이 기도를 하며 잠을 청했는데, 두 아이를 육아하면서는 그런 너 조차도 잠자는 시간만을 고대하게 된다. 네게도 드디어 꿈을 꾸지 않는 시간이 많아진다. 너는 꿈속에서 찢겨나가고 부서져나가도 '개꿈을 꿨나 보다'하며 털고 일어날 수 있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나이를 먹으니 두려울 것이 없다. 다만, 너를 닮은 아이를 키우며, 올라오는 기억너머 잠재의식들 앞에서 백기를 들뿐.


  너는 새벽녘 아이를 안심시켜 다시 재운 후, 생각한다. 잠을 자고 깨지 않는 것은 죽음이요 , 잠을 자고 깨어 버리면 꿈일 테니, 오늘 이 꿈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고 온갖 세상에서 살게 하는 하나의 경험을 선물해준 것일 거라고. 잠에서 다시 일어날 걸 알고 잠을 잘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며 아침을 시작한다. 꿈과 죽음은 어쩌면 한 끗차이일거라고. 내일이란 현재만 사는 네게 주어진 선물과 같은 것. 결코 허투루 쓸 수 없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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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아이는 그 다음날 말했다.

"오늘은 참 행복하다. 슬픈 꿈을 꾸지 않았어."

네 아이는 계속 작은 입을 움직이며 말을 이었다.

"우리 가족 모두가 같은 날 같이 죽으면 우리 다시 볼 수 있는 거지? 하늘나라에서 만나는 거지?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

너는 심장 한켠이 아파온다. 그동안 네 심장은 울기 위해 존재했다. 흰 눈 밭에서도 빨간 동백꽃이 피듯, 너는 네가 흘린 눈물 아래 팔딱이는 진심에게 다가간다.

'우리가 어떤 확률로 이렇게 부모와 자식이 되어 만났을까?. 이승에서의 연이 저승에서도 과연 이어지는 것일까? 과연 장담을 할 수 있을까?'


너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이에게 말한다.

"아가, 바람이 불잖아. 바람이 숨결이 되곤 해. 보지 못한다는 것은 고통스럽도록 그리운 일이지만, 죽은 후에는 바람이 되어 햇살이 되어 산 사람들을 만나러 온단다. 그 귀한 순간들을 우리 아가는 잘 잡을 수 있을 거야. 아름다운 것을 오래오래 보는 너이니까."

너는 말을 끝맺기까지 울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다. 네 아이는 어느새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너는 더욱 힘껏 아이를 껴안았다. 오래도록.


이 세상에서 만난 귀한 인연! 너는 살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산다. 삶에 사랑을 담아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글을 쓰면서. 여전히 매일 죽으며, '지금'만을 산다. 그렇다. 단 하루를 살더라도 너의 생 그 어떤 것도 헛되지 않다. 사랑은 영원하다. 너는 비로소 이 말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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