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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Jan 03. 2023

아이가 스스로 만들어낸 한 끼

새해 소망

아이가 그동안 스스로 아무 도움 없이 지을 수 있는 한 끼는 '달걀찜'이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함께 만들어서 전자레인지를 혼자 돌릴 수 있는 순간부터 혼자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유일한 한 끼.

아이가 원하여 이제는 가스불을 이용한 요리를 시작했다. 불을 이용하니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칼을 쓰지 않게 미리 손질된 재료들로만 이용하여 쉽게 만들어낼 수 있는 한 끼, 바로 떡국이다.

냉동실에 늘 상비되어있는 국거리용 소고기, 잘라 얼려놓은 파를 꺼내고, 냉장고에 늘 상비되어있는 달걀을 꺼내서, 혼자 만들 수 있다. 지단은 생략하고 달걀을 깨 퐁당 넣어 먹는다.


아이가 새해 첫날, 떡국을 만들어 내어 주었다. 친정 가족모임에서 각자 가족의 계획과 근황을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모두들 아이의 특기와 상력 등을 이야기할 때, 우리 가족은 그저 건강하고 행복하게 하루를 보낸다고 이야기하고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공부를 잘하고 좋은 습관을 지니고 엄청난 독서력을 자랑하는 것은 칭찬거리가 되겠지만, 내게는 아이가 스스로 만들 수 있는 한 끼 음식이 한해 한해 늘어나는 것이 더 귀하고 감사하다. 철이 없는지도 우리나라의 실정을 모르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마음은 그렇다.


보이는 무언가로 측정되는 평가를 과감히 끊어. 내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이고 좋아하는 음악은 무엇이고 좋아하는 활동은 무엇이고 무엇을 할 때 행복해지고, 무엇을 할 때 힘이 드는지를 그저 오롯이 알아가는 것만으로 이미 넘치고 충분하다. 그 어디에도 수치화된 성적이나 평가가 들어갈 자리가 없다.

아이가 스스로 뚝딱 만들어 낼 수 있는 한 끼, 아이 스스로 씻고 먹고 시간을 보내고 잘 수 있는 능력, 불행히도 이 중 그 어떤 것도 정량적 정성적 평가를 할 수 없는 항목이다. 하지만, 자기의 힘으로 자기에게 줄 수 있는 한 끼가 가져올 거대한 힘을 나는 안다. 나에게 요리가 그저 귀찮은 일, 하기 싫은 일이었기에 육아를 하며 아이에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 중에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스스로 해 먹을 수 있고 그렇게 자신을 스스로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그것이다. 요리가 즐겁다면, 아니 설령 즐겁지는 않더라도, 자기 스스로 자신에게 한 끼 정성껏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헤쳐나갈 수 있다. 만약, 내가 진즉에 이런 마음으로 요리를 대했다면 훨씬 삶이 풍요로워졌을 테지.


새해가 밝았다. 23년 새해 첫 끼는 첫째 아이가 직접 만들어 준 떡국으로 아침을 먹는 날이었다. 새로운 한 해에는 건강하고 자신을 믿으며 굳건히 살아가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며 아이의 떡국을 먹는다.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며 오롯한 하루를 보내는 날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눈에 보이는 아웃풋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힘이 차곡차곡 쌓이기를, 그리고 나의 눈이 그 보이지 않는 아이의 성장을 굽어 살펴볼 수 있기를 바라며 따뜻한 떡국 국물을 호로록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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