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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Jan 04. 2023

내가 행복하면 되었다.

글쓰기는 삶의 나이테

"너는 언제 행복해?"

이 질문에 나는 망설임 없이 항상 동일한 대답을 했다. 나는 글쓰기, 영어, 독서, 공부하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 활동들을 할 때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집중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러했었지만, 차마 그것들을 좋아한다고 나의 입으로 말하기가 어려웠다.

"미친..."

이런 반응이 되돌아왔었다.

"잘하지도 못하면서...."

이런 반응이 돌아올까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학창 시절이 그리웠다. 학생이라는 신분으로는 모두가 다 해야 한다는 감투 아래, 내가 좋아하는 취미를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고 그저 해야 해서 한다고 속일 수 있었으니까.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다.

학생 신분을 졸업한 후,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들을 소리 내어 말하기까지, 커다란 용기가 필요했다. 아니라고 부정하다 깊은 곳에서 갈증이 터져버렸다. 숨어서 좋아하는 활동을 하다 지쳐 나가떨어져나갔다. 내가 행복한 일을 앞뒤 생각 않고 그냥 해보기로 했다. 용기가 필요하고 자시고 이 즈음되면 거의 생존의 문제가 되어버렸다. '나도 숨 좀 쉬고 살자.'며.


매일 정성껏 한 편의 글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 년 반을 썼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응급실 간이 의자에 앉아서나 우리 집 거실에서나, 아파서 죽어가면서도 무선키보드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글은 차곡차곡 쌓였다. 켜켜이 예쁜 나이테를 만들 듯, 알알이 쌓인 글들을 바라본다.

글들에는 나의 시절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내 삶의 나이테. 글을 쓰며 하루하루의 시간을 담는다.  그 시간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쓸 수 있기에 숨을 쉴 수 있는 자에게 아웃풋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 일 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년 동안 글을 쓰며 수시 때때로 내 안에서 '너도 이렇게 모아둔 글로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출판을 하거나 기고를 하거나?' 하는 마음이 불쑥불쑥 솟았다.


"위로 뻗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깊게 파려면 넓게 파라는 말처럼, 기본 작업을 깊고 넓게 해야 한다.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 p.122>


그럴 때마다 뿌리가 튼튼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글을 썼다. 보이는 부분보다 보이지 않는 기본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마음먹었다. 글쓰기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았기에 무작정 많이 써보기로 했다. 대신 막글이 아닌 정성을 갖춘 남에게 읽힐 만한 글이라는 가정하에, 자유롭게 나를 시험해 보았다. 언니공동체의 월간 글 쓰는 언니는 그런 내게 적합한 좋은 플랫폼이었다. 다정하게 글을 읽어주는 언니들이 있었고 소수의 오픈된 공간에서 용기 내어 마음껏 재량을 펼쳐 보일 수 있었다.

시간이 쌓이자 신기한 일들이 일어났다. 어떤 글감이 내게 떨어져도 나는 글감을 소재로 내가 원하는 이야기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마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이미 있는데 소재는 그저 거둘 뿐. 시간이 흐르자, 전에는 힘들었던 글로 만든 퀼트가 가능해졌다. 언젠가 썼던 글의 한 부분을 꺼내와 다른 날 썼던 글의 몸통에 기워 넣고, 다음 날 쓸 글과 합쳐 색색의 글 퀼트를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색의 조합이 맞지 않는다거나 결이 다르다 느껴지면 힘차게 새로 쓰기도 했지만, 대부분 예쁜 보세 퀼트처럼 내 눈에는 아름답게 어우러졌다. 글이 쌓이지 않았을 당시는 모르던 세계들이 하나씩 수면 위로 드러났다. 글을 보는 눈도 깊어졌다. 그만큼 글을 대할 때 겸손하게 된다. 나무의 나이테 하나하나를 바라보듯, 삶의 한 줄 한 줄을 읽는 기분으로 타인의 글을 대한다. 그리고, 그런 내가 점점 더 좋아진다.


결국, 내가 행복하면 되었다. 이 마음이면 충분한 것이었다. 이걸 깨닫기까지가 무려 일 년 반,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글을 쓰고 얻은 귀한 교훈이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나의 글을 귀하게 여기고 타인의 글 또한 귀하게 여기는 마음. 그것이 내가 글을 대하는 가장 기본적인 마음임을, 그리고 그런 마음 안에서 마음껏 글을 쓸 수 있는 나는 충분히 넘치도록 행복함을.

문득문득 작아진 나를 바라볼 때면, 전혀 모르는 사람들로 받은 메일을 열어본다. 나의 글이 닿아 누군가의 마음에서 어떤 씨앗이 되었는지, 조용히 되뇌며 겸손하게 나의 행복을 바라본다. 좋아하는 무언가가 확실히 있다는 것. 그것으로 무엇을 이루지 않아도 충분히 값지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천하무적이다. 실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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