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그동안 마음이 답답했던 것들이 오늘 그대와 이야기하며 많이 씻겨 내려갔어.
주차장에 갔는데 어떤 차가 삐딱하게 차를 대 놓은 거야. 앞이 살짝 좀 튀어나오게... 그 차 양옆에는 모두 자리가 비어있었는데, 도대체 얼마나 주차를 못하기에 저렇게 한 걸까? 의아할 정도로 이상한 주차였어. 사람들은 마구 흉을 보았지.
'운전자 제정신이야? 자리가 이렇게 많은데 왜 꼭 저렇게 주차를 해야 해?'
사실은 알고 보니 그 차가 들어올 당시에 이미 양 옆의 차가 주차를 해놓은 상태였고, 옆 차들이 굉장히 삐뚤게 주차를 해서 차를 그렇게 밖에 댈 수 없는 상황이었던 거야. 그런데, 애초에 삐뚤게 주차한 차들이 모두 다 출차하고 나간 다음에는 오히려 이상하게 차를 댄 가운데 차만 욕을 먹게 되는 거지.
프레임, 즉 상황을 알지 못하면 이렇듯 결과만 보고 오해받기란 너무나 쉬워. 애초에 주차를 이상하게 대어 가운데자리를 넣을 수 없게 만든 차는 아무런 이야기를 듣지 못한 채 출차해 버리고 남은 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처한 남은 차일뿐이야.
살면서 일어나는 많은 일 중에서, 혹여나 내가 모르는 맥락이 있을까 조심스러워서 늘 단정하거나 판단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았어.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는 나와 너무 다른 기질의 아이로 인해, 갖은 마음고생을 하며 조심하는 마음이 더 깊어졌어. 아이는 나와 다르다지만 그래도 나이가 받는 평판이 꼭 나의 평판 같이 느껴지는 날들이 이어졌어. 그리고, 아주 가끔씩은.... 내가 하는 노력이타인의 눈에도 보일까? 이런 나의 노력은 오롯이 나만의 몫인 걸까? 타인도 우리 아이를 볼 때 조금이라도 상황별 맥락을 생각해 주면 좋을 텐데.... 하는 마음에 혼자서 운 날도 많았어.
아이가 받을 오해와 비난 앞에서 자유로울 부모는 없겠지만, 적어도 어른이라면 상황이 보이지 않을까? 프레임 안에서 우리 아이의 행동을 보아주지 않을까? 우리 모두 그렇게 자랐으니까. 미성숙한 사람에서 조금씩 성숙해 가는 인생의 한 과정을 지나는 여전히 배울 것 많은 중년일 뿐인데....
나의 눈에는 보이는 타인의 아이들의 행동들이 있어. 다른 아이들의 잘못된 작은 행동 하나하나마다 눈에 불을 켜고 지적하고 고쳐주기보다, 언젠가 아이가 스스로 깨달을 날이 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여지'를 남겨주고 싶었어. 어른의 눈에 보이는 것이 아이의 눈에 보이지 않듯, 수위가 높지 않은 이상, 아이들끼리 체득하며 해결할 수 있는 일들에 있어서는 기회를 주고 싶은 마음이 앞섰어.
그래서, 나는 타인의 아이에게서 어떤 잘못된 행동이 보여도 그 수위가 높지 않다면 눈감아주곤 했어. 혹여나, 어딘가 나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우리 아이들이 잘못을 하더라도, 조금 더 기다려주고 믿어주는 다른 어른들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을 믿으면서. 나 혼자뿐이라도 나는 그러리라고 마음먹었어.
그러나 이런 나의 마음이 단지 나 혼자만의 마음인가 보다 싶어 외로운 날들이 지나갔어. 내가 타인을 특히 타인의 아이들을 함부로 말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믿으며 외로운 끈을 이어 잡고 하루하루 지냈던 것 같아. 이런 보이지 않는 노력이 혹시나 누군가에게 닿는다면, 그 사람만큼은 나의 아이를 상황 안에서 넓은 마음으로 보아주겠구나. 하면서... 언젠가는 돌고 돌아, 내가 다른 아이들을 바라보는 그 시선이 전혀 다른 타인을 통해 내 아이에게도 돌아올 거라고. 비록 조용히 말없이 내가 해왔듯 그런 방식으로 돌아올 테니, 어쩌면 나는 모를 수 있을 거라고 믿었어.
그리고 오늘 진, 그대만큼은 그런 마음으로 보아주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어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어. 항상 열린 마음으로 편견 없이 아이를 보아주어서 고마웠어.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희일비마다 잣대를 대지 않고 기다려준 그대에 대한 감사함을 적고 싶어. 오래도록 외로웠던 한 조각의 마음이 오늘 툭. 내게서 떨어져 나갔단다.
고마워.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