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는 곳, 나의 글이 되었으면.
"네 죽음은 내 안의 모든 걸 산산이 부서뜨렸다. 마음만 남기고. 네가 만들었던 나의 마음. 사라진 네 두 손으로 여전히 빚고 있고, 사라진 네 목소리로 잠잠해지고, 사라진 네 웃음으로 환히 켜지는 마음을." <그리움의 정원에서, p. 13>
모든 것이 무너졌을 때마저도 읽을 수 있는 책이 있음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세 차례의 아이의 입원, 그때마다 나와 함께 한 책은 단연코 크리스티앙 보뱅의 책이었다. 그의 모든 책을 사랑하지만 특히 <그리움의 정원에서>를 대할 때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사랑과 그리움이 밀려와 자꾸만 눈앞이 흐려진다. 멈추고 읽고 아껴 읽고 가만히 책을 덮은 후 내게 담긴 마음을 부족한 언어로나마 표현해 보려 눈을 감고 읽는 책이기도 하다.
누군가 지금의 내게 가장 애정하는 물건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보뱅의 책들을 떠올릴 것이다. 내게 엄청난 기억력이 있어 그의 책이 머릿속에서 줄줄줄 흘러나왔으면 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마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가 법전을 외고 있듯 말이다. 하지만, 지극히 평범한 내게는 그런 비상한 뇌가 없으므로 내게는 결국 물질로서의 책이 필요하다. 손이 닿는 대로 어느 페이지를 읽어도 마음에 담기는 책. 힘들 때나 기쁠 때나 잠시라도 영혼이 쉬고 플 때 내게 선물같이 전해지는 그의 글을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랑한 사람을 가두지 않는다. 책 제목처럼 <그리움의 정원>에서 현재 없는 사랑하는 사람이 마음껏 활보하게 두는 그의 글. 너무나 아름다워 숨을 멎고 보게 되는 글 안에서 누군가의 사랑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감히 마음을 품어본다. 내가 사랑한 사람들, 내가 사랑한 시절을 이런 글로 남길 수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시절이 사라진 어느 순간에도 나는 글을 보며 그들과 함께 한 시절을 여전히 살아가고 있음에 숨이 쉬 어질 테니 말이다.
그런 글을 쓰고 싶다. 모두가 떠난 후에도 읽을 수 있는 글. 모두가 떠난 후에도 여전히 '지금'여기에 그들을 불러낼 수 있는 글. 그리고 그들과 함께 자유롭게 글 안을 활보할 수 있는 글을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는 마음. 마음 켜켜이 쌓인 층과 층을 넘나들며 내가 발견한 것들을 투명하게 담아 오래도록 보고야 말겠다며, 더 잘 보고 싶어서 더 잘 살고 싶고, 더 잘 살고 싶어서 더 잘 쓰고 싶다. 이것이 내가 글을 쓰고 싶은 단 하나의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