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여행 Dec 15. 2021

다행이다. 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친구가 있어서.

아홉 살 우정

아홉 살 딸아이의 첫 학교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코로나로 인하여 유치원 졸업식도, 1학년 입학식도 없었고, 그나마 1학년은 등교 수업이 1년을 통틀어 총 스무 번은 되었을까? 그 여덟 살 녀석들이 1년 동안 학교에 가서 한 받아쓰기가 열 번은 되었을까? 온라인 개학이라는 ebs티브이를 보기 위해서 여태껏 없던 티브이도 사고, 줌 수업을 하기 위하여 여태껏 없던 탭도 샀던, 코로나 1년 차에 1학년을 맞은 아이였다.


2학년이 되어 매일 등교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함도 잠시, 1학년을 통째로 잃어버린 아이들의  2학년 사회생활은 기존의 유치원, 어린이집 생활권으로 좁혀 들어갔다. 같은 어린이집 친구들끼리, 같은 유치원 소속들끼리. 알게 모르게 형성되는 카르텔 안에서 아이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가기가 어려웠다.


등교를 함께 하고 싶어 만나서 간다고 딸아이가 나가면, 이미 기존 형성된 그룹의 아이들이 냅다 뛰며 딸아이를 따돌리는 현장도, 놀이터에서 같이 놀려고 들어가면, 혼자의 신발만 가져가는 상황도, 아이들이기에 악의가 없지만 의도가 어른들의 눈에는 너무 잘 보인다는 것이 함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아이이기에, 이 상황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무기가 되어, 의아할 뿐, 상처는 없이 지나가는 것에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며 지나가던 시간들!


이미 저만치 전속력으로 뛰는 아이들을 향해, 함께 가고 싶은 마음에 전속력으로 계속 뛰어가는 뒤쳐진 딸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아이에게 친구들이 장난을 하나 보구나, 그냥 우리는 따로 가는 게 어때? 하고 설득을 하는 것도, 아이가 아이이기에 믿어주는 것에 다행이다 생각하며, 언젠가는 아이가 자기에게 잘 맞는 친구를 사귀고, 진심을  나눌 친구가 생길 거라고 그저 믿으며, 어미는 어미대로 아픈 마음을 달랬다.


아이가 카르텔 쳐진 그룹 안에 들어가고 싶어, 보이는 모든 노력들이 어미의 눈에는 눈물겨웠고, 이 또한 아이가 극복하고 이겨내야 할 아이만의 세계이기에, 그 모습을 보면서도 보지 못한 척, 이겨낼 수 있도록 마음속으로 믿어주며 응원해주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함께 놀았을 때 마음이 즐거운 친구가 좋은 친구일지도 몰라. 그러니, 함께 놀았을 때, 계속해서 마음이 불편하다면 그 친구들과 굳이 같이 놀지 않아도 괜찮아. "


"그룹 안에 들어갈 필요는 없어. 네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는 친구 한 명만 있어도 충분해. "


"너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주는 친구가 언젠가는 나타날 거야. 기다리고, 존중하면, 언젠가는 너의 진실된 친구가 생길 거야."


이런 말들을 해주며, 아이를 응원하고 믿어주던 어느 날, 11월. 12월이면 학년이 끝나는데, 아이는 11월이 다 되어서야 진심으로 이제 마음을 터놓고, 자신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좋은 친구관계를 단단하게 형성하였다.


학교 가는 하루하루가 그저 너무나도 귀하고 즐겁고, 매일같이 함박웃음을 띄며 학교를 향하는 아이를 바라보며, 이번 학년이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는 것이 아쉬워진다.


 아이가 스스로의 힘으로 정말 오래도록 시간을 투자하여, 기다리고, 만들어낸 인연! 아이가 스스로의 힘으로 캐미가 맞는 친구를 찾고, 관계를 깊게 만들고자 애썼던 인연! 있는 그래로의 우리 아이를 인정해주고 존중해주고 귀하게 여기는 인연! 서로가 애쓰며 만들어가고, 마음을 함께 열어나가 여기까지 온 그 시간들!


다행이다. 이제라도 너의 마음을 모두 터놓고, 너의 모든 것을 보여주어도 되는 친구가 생겨서! 조금 더 빨랐다면 지금처럼 매일같이 즐거운 학교생활이 더 빨리 찾아왔을 텐데, 아쉬운 마음도 들지만, 이만 치의 시간이 흘렀기에 너와 친구 둘이서 이만큼의 성숙한 관계를 만들어냈겠구나.


이것을 바라보는 나의 감정이 "다행이다"인지 "장하다"인지 "잘됐다"인지 모르겠지만, 안도와 감사임은 확실하다.

아이에게 마음 터놓을 단 한 명의 친구가 있어 다행이다. 아이가 커다란 그룹 안에 있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아서 다행이다. 아이가 굳이 자신을 버려가면서까지 그룹 안에 끼고 싶지 않아 해서 다행이다.


다행히 감사로 이어지며, 그저 아이가 매일같이 웃으며 등하교하고 행복할 수 있는 관계가 있음에 오늘도 나는 한 겹 더 겸손하여지고, 한 겹 더 감사하며 하루를 살아가게 된다. 아이의 친구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하며 말이다.

아홉살 우정 (아이가 자신의 단짝에게 쓴 편지1)
아홉살 우정 (아이가 자신의 단짝에게 쓴 편지2)


ps: 아이가 온 마음으로 쓴 편지를  엿보며, 눈물이 났다.

그 온전한 마음을 글로 녹여 쓰기까지, 우리 딸이 흘렸을 마음과 그 마음이 흘렀을 친구의 마음에 그저 감사하다.그 온전한 마음을 온 힘 다해 눌러쓴 편지를 받는 딸의 친구에게도 축복이 가득하기를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아이의 빛이 빛나도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