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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Dec 30. 2021

강아지 새롭게 바라보기

강이지를 좋아하세요? 강아지를 극도로 무서워하던 사람의 어느날!

1991년, 국민학교 4학년, 나는 가족들과 부산에 잠시 머물렀다. 외할아버지의 환갑잔치를 한다고 간 그곳은 낯설었다. 내가 살던 대전에는 없던 지하철이 다니고 있었고, 사람들의 사투리가 꼭 외국어 마냥 귓가를 맴돌았다. 나는 모르는 어른들에게 지속적으로 인사를 해야 했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기 위해 억지로 밝게 웃으며, 동생들을 챙겼다. 그러다, 이내 길어지는 환갑잔치에 지루하여 두 살 터울 동생과 함께 식당의 마당으로 나갔다. 밖은 한적하였고, 시끄러운 국악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습한 밤공기가 긴장감을 조금 덜어주었다. 동생과 나는 둘이 잡기 놀이, 숨바꼭질 등을 하며 시답잖게 놀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나의 허리만큼 오는 커다란 개 한 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개는 우리를 향해 뛰어왔고, 커다란 개가 뛰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는 순간 나는 공포로 질식할 것만 같았다. 개가 곁에 있을 때 뛰지 말고 가만히 서있어라! 고 배웠던 안전수칙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개를 피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뛰었고, 두 살 터울 동생은 안전수칙 그대로 가만히 그 자리에 얼음! 하고 섰다. 이내, "아악!" 하는 비명소리와 함께 날뛰던 개는 그대로 동생을 덮쳤다. 동생은 옆으로 쓰러지며 피를 흘리는 다리를 쥐어잡았다. 나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안의 사람들을 불러냈고, 사람들이 개와 동생을 분리시켰다. 동생은 다리 한 면이 피로 물든 채, 그대로 병원으로 실려갔다. 눈 깜짝할 사이 내 눈앞에서 벌어진 처참한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엄마, 아빠, 동생이 모두 병원으로 가고, 홀로 음식점에 친척들과 남겨진 나는 요란하게 뛰는 마음을 다스리려 모든 힘을 짜 내었다. 그러나, "나는 뛰었다. 동생은 가만히 서 있었다."라는 진실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안전수칙을 어긴 나는 괜찮았고, 수칙을 지킨 동생은 크게 개 물림 사고를 당했다. 동물을 사랑했던 동생이, 다시 동물을 사랑하는 동생이 되기까지의 시간을, 나는 '나 때문이야'라는 죄책감에 살았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동물, 특히 강아지를 극도로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었다.


강아지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비애견인이라기보다, 강아지를 극도로 두려워하는 사람, 강아지를 공포의 산물로 바라보는 사람에 가까웠다. 그 감정은 혐오는 아니었지만, 강아지의 이를 볼 때면, 언제든 그 이로 한 순간에 다리 한 면을 피로 물들이던 그 사고가 떠올랐고, 나 때문이라는 죄책감에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좋아하는 친구가 강아지를 기르면, 가고 싶어도 친구 집에 놀러 가지 못했다. 어떠다 함께 산책을 하게 된다면, 강아지 목줄을 잘 잡아달라고 기분 나쁘지 않게 부탁하기 위해, 영혼을 끌어낸 정성을 들여야 했다. 친구들이 오해할까 봐, "나는 강아지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무서워'하는 거야. 미안해." 하며 힘을 주어 설명을 하곤 했다.


이런 나의 모습은 엄마가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혹여나 강아지가 우리 아이들을 물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에 심장이 뛰었다. 그러나 아이에게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나의 마음을 조기 교육시키게 될까 불안하여, 내색하지 않고, 밀착하여 최대한 빨리 강아지권에서 벗어나곤 했다.


그러다 올해, 아이가 정말 좋아하는 강아지가 생겼다. 바로, 등하굣길에 자주 만나는 친구의 강아지 4년 된 하얀 털의 코코와 2달 된 갈색 털의 크림이었다.


코코는 정말 순하여, 항상 친구 엄마의 손에 안겨있었는데, 어느 하굣길, 가만히 안겨 인형처럼 까만 눈을 하여 나를 쳐다보는 코코와 나는 눈이 마주쳤다. 코코의 눈을 보는 순간, 살아있는 생명체가 주는 따뜻한 시선을 받았다. 그동안 강아지를 피해 살아서, 강아지를 이토록이나 가까이에서 마주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그때 불현듯 깨달았다.


"안아볼래?" 코코의 엄마, 아이 친구 엄마가 제안을 한다.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내가 강아지를 안고 있는 모습을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나에게, 그렇게 코코가 품 안으로 왔다. 딸아이의 하교를 기다리는 동안, 조심조심 안은 내 품 안의 코코는 작고, 따뜻했다. 코코가 내는 작은 움직임, 호흡에 맞추어 하얗고 부드러운 털들이 움직였다. 아기를 안고 있을 때와는 또 다른 감동이 밀려왔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또 다른 생명을 안는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매일 등교가 허락된 아이를 둔 올해의 하굣길은 나의 마음을 코코에게 줄 수밖에 없게 짜여 있었다. 그토록이나 벽을 높게 쳐왔던 벽돌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져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게만 했다. 마음은 그렇게 흘러갔다. 너무나 조심스러워서 얼음이 되어 작은 강아지를 안던 나는, 조금씩 열린 마음으로 안은 채 강아지를 쓰다듬어도 주고, 보드라운 털에 나의 얼굴도 비비며 온전히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비가 오는 날, 코코가 보이지 않으면,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아이도, 나도, 그렇게 코코 앓이가 시작되었다.


크림이는 태어난 지 두 달 된 아기 강아지다. 털 색이 크림색이었다가 점차 짙은 갈색으로 변하는 과정을 모두 보게 되었는데, 애교가 많아, 우리 아이가 가까이 다가오면 바닥에 엎드려 배를 보이며 좋아하였다. 저 멀리서 우리 식구를 보면, 꼬리를 흔들며 쏜 살 같이 달려오는 크림이! 아기 강아지가 보이는 사랑의 표현이 귀여워 조심스레 쓰다듬어 주면 이내 홀라당 드러누워 손길을 마음껏 받아준다.


아이들은 크림이가 보고 싶어서 일부러 크림이를 만날 수 있는 길로 등교를 하곤 한다. 문득, 겨울이 되어 추워 보이는데, 크림이에게 따뜻한 강아지 옷이라도 한벌 사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누군가가 내가 온다고 이렇게 드러누워서 온 몸으로 사랑을 표현해 준 적이 있었던가? 그냥 이웃집 아줌마일 뿐인 나를 온 정성으로 맞아주던 크림이 가 고마웠다. 마음속에 고마움이 그렇게 쌓여갔고 작게나마 그런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졌다.


마흔이 넘어서야, 나는 강아지가 주는 기쁨이 이런 것이겠구나, 짐작 정도 하게 되는 단계가 되었다. 여기까지 온 것도 장족의 발전이지만, 나는 아직 강아지의 눈에서 읽히는 슬픔과 아픔을 공감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당장의 인간 아이들도 버거워서 매일 같이 하루를 연명하며 지내왔는데, 책임을 온전히 감당할 반려동물을 들인다는 것은 나의 오만한 욕심임을...


아이들은 산타할아버지에게 받고 싶은 선물에 올해도 "강아지 가족"이라고 썼다. 그리고, 나는 또,  올해도 '가족이 되는 것', '책임', '사랑' 등을 이야기하며 시간을 좀 더 쌓아가자고 이야기한다. 이럴 때, 신랑이 알레르기가 있는 게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강아지를 향한 나의 알 수 없는 요동치는 이 마음을 잠재워본다.


귀여운 크림이, 그리고 첫째 아이의 크림이 필통
코코야♡ 너를 안고 있으니 마음이 따뜻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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