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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영이 Apr 01. 2024

MBTI 때문에 운 사람, 저 말고도 있나요?

MBTI가 지금처럼 유행하기 전, 내가 절에 있을 때 이야기다. 한 법사님이 우리 행자들을 데리고 MBTI 검사를 해주셨다. 법사님이 상담대학원을 나오셔서 실제로 검사에서 쓰이는 정식 검사지로 테스트다. 그 검사 결과지를 10년이 지난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그때는 지금과는 다르게 INTP가 나왔었다.


10년 전 MBTI 결과


다시 봐도 INTP다. I와 T의 점수가 꽤나 높은... 성격유형 특성은 다음과 같이 써져 있다.


조용하고 과묵한 편이지만, 관심이 있는 분야에 대해서는 말을 잘한다. 지적 호기심이 강하고 이해력이 빠르다. 높은 직관련을 지니고 있으며 통찰력이 뛰어나다. 개인적인 인간관계나 친목회 혹은 잡담 등에 별로 관심이 없다. 매우 분석적이고 논리적이며, 객관적인 비평을 잘한다.

가끔 어떤 아이디어에 몰입하여 주위에서 돌아가고 있는 일을 모를 때가 있다.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며, 사교성이 부족한 편이다. 때로는 자신의 지적 능력을 은근히 과시하는 경향이 있어 거만하게 보일 수 있다.


당시 결과를 분석받으며, 눈물이 그렇게 나왔다. INTP에 대한 설명이 너무너무 싫었기 때문이다. (INTP분들 계시다면 죄송합니다...ㅠㅠ) 그런데 내가 그렇게까지 부정하고 싶었던 건 이유가 있었다.




당시에 나 포함해서 5명 정도의 행자들이 같이 3년 수행 중이었다. 서로를 '도반'이라고 부르는데, 같이 길을 걷는 수행의 벗이란 뜻이다. MBTI 검사 때, 각자 자신의 별명을 지어서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내가 불리고 싶은 별명은 '햇살'이었다. 우리 도반 중에는 햇살 같은 분이 있었다. 누구나 친해지고 싶어 하고 곁에 있으면 마음을 털어놓게 되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분이 참 닮고 싶었다. 법사님이 내 별명이 뭐냐고 물으셨을 때 나는 별명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햇살이라는 별명이 내게 너무 과분하다고 느꼈기 문이다.


그 때 나는 행자 중에 '대표'를 맡았었다. 우리는 6개월마다 대표를 돌아가면서 했다. 대표는 행자들이 수행을 철저하게 하도록 돕는 소임이다. 나는 뭔가를 맡으면 욕을 먹으면서라도 꼭 책임을 다 해야 속이 시원한 타입이다. 그래서 도반들이 싫어할 걸 알면서도 반복해서 잘 지켜지지 않는 부분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다. 그러면서도 도반들 표정이 안 좋아지면 속으론 움츠러 들었다.


남의 눈치를 많이 보고 늘 사랑받고 싶어 하는 업식을 가진 내가 대표를 하려다 보니 자꾸 모순이 생겼다. 사랑받고 싶은데 맡겨진 소임도 잘 해내고 싶었다. 어느 하나 놓치고 싶지 않다 보니 마음이 뾰족뾰족했다. 누가 조금이라도 계율을 어길 것 같거나, 정진을 빼먹는 것 같으면 가만히 보고 있질 못했다. 꼭 규칙이 뭔지 알려주며 문제제기를 했고 그러다 보니 도반들이 슬슬 나를 피하고 불편해하는 것 같았다.  


원래 대표 소임이 외롭긴 하지만 미움 받는 걸 싫어하는 내게 정말 힘든 역할이었다. 나는 그때 참 외로웠다. 그런 와중에 한 MBTI 검사였다. 나는 내가 I이고 내가 T인 게 너무 싫었다. 또 그러면서 햇살 같길 바라는 나 자신의 바람이 너무 부끄러웠다. 되고 싶은 나와 실제의 나가 너무 차이 났다. '거만'하고 '사교성이 부족'한 편이라니... 이래서 나를 사람들이 싫어하는건가? 싶어 서러운 눈물이 막 솟구쳤다. 법사님은 '우리 행자님이 요즘 잘 안 울었나?' 하면서 날 안아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릴 땐, '되고 싶은 나'에 대한 갈망이 정말 컸던 것 같다. 그건 내가 어느 정도 내가 원하는 성격을 일부 가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다고 생각할 때, 나는 종종 E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았다. 그런 해에는 반장이나 부반장을 맡곤 했다.


런데 어떤 해에는 말 한마디 뱉는 게 어려울 정도로 내성적인 사람이 되기도 했다. 친구도 얼마 없었고 때때로 친구들과 다투면 그룹 내에서 따돌림을 받기도 했다. 내 의도와 상관없이 말이 나오지 않는 선택적 함구증 같은 증상도 있었다. 그래서 난 조용한 내 자신이 답답했고 견디기 힘들었다.


자유롭게 말을 잘하고 발표도 적극적으로 하는 내가 좋았다. 주눅 들어있고 불안에 떨며 눈치 보는 내가 싫었다. 그리고 그 간극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무엇이 나인지 너무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내 정체성을 I라고, T라고 정해주는 MBTI 결과를 받아들이기 무척 어려웠다.




MBTI 오열 사태가 있고서, 또 다른 수련에 참가했다. '나눔의 장'이라는 수련이다. 같은 도반들과 참여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마음이 일었는지 서로 돌아가며 말로 나누는 수련이다. 평소에 자주 나를 째려본다고 느꼈던 도반 쪽은 무서워서 쳐다도 못 보고 수련에 참가 중이었다. 여전히 내 마음은 괴롭고 외로웠다.


수련 도중에 법사님께서 마당에 나가서 잡초를 뽑자고 하셨다. 집중해서 잡초를 뽑다가 내 마음을 직면하게 됐다. 내가 내 감정에 대해서 '아, 이렇구나...' 마음으로 받아들이자 갑자기 다른 도반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얼마나 내가 뱉는 잔소리가 마음에서 탁탁 걸렸을까? 그들의 입장이 신기하게도 마음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니 내 마음속에 얼음들이 녹는 것도 느껴졌다. 도반들이 날 미워해서 힘든 줄 알았는데 뾰족하고 차가운 얼음은 오히려 내 안에 있었다.


그러고선 도반들을 향한 마음이 따뜻해졌다. 머리로 '햇살'이 되고 싶었을 때는 절대 닿을 수 없을 것 같았는데, 그냥 마음 살피다가 내 마음을 이해하니 남의 마음도 이해가 됐다. 머리로 이해하는 거랑은 달랐다. 마음이 마음을 안아주는 느낌이랄까. 신기하게도 따뜻한 햇살이 마음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햇살~


절에서 울기도 많이 울고 우울증이 더 심해진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절에서 '통합'의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불안에 떠느라 말이 안 나오는 나, 누가 소리치면 패닉에 빠지는 나, 소심하고 예민하고 불안정한 나. 내가 꼴 보기 싫어하고 없애려던 나의 면면들을 나로 받아들이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내 소망이 나를 의식적으로 지배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나는 T가 거의 없는 F가 나온다. 그리고 어느 자리에 가서 불안하고 낯설어서 주눅이 들어도 이젠 이전 만큼은 나 자신을 싫어하진 않는다. 그냥 이 자리는 나랑 맞지 않는군, 심플하게 생각하고 내게 더 시간을 주는 편이다. 혹시나 그 속에서도 나랑 잘 맞는 인연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세월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나라는 존재는 늘 명랑하고 씩씩하고 리더십 있기만 한 게 아니라는 걸 배웠다. 어쩔 때는 예민해서 상처받아 말이 없어지기도 하고, 낯을 심하게 가리기도 하는 등 복합적이고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되고 싶은 나'가 거의 옅어진 것 같다. 그냥 그 상황에서 반응하는 나를 잘 지켜보고 잘 보듬으며 편안해지려고 노력할 뿐이다. 이젠 MBTI에서 INTP이 다시 나와도 '오, 나 좀 카리스마 있는데?'하고 넘길 수 있을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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