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고를 꿈꾸던 나는 밖을 못나가게 되고

by 명화씨

학창시절 나는 친구들을 웃기고 싶어했고 말이 정말 많았다. 수업 중에도 입을 멈추지 못했다. 수학 선생님은 차라리 엎드려 자라고 하셨고, 기술가정 선생님은 화가 나서 필통을 집어 던지실 정도였다. 그 시절엔 '엽기'가 유행이었는데 뭔가 내 속의 주접본능과 잘 맞았던 거 같다. 이상한 표정을 짓거나 성대모사를 해서 친구들을 웃기곤 했다. 어느 날, 거울을 보고 그 표정을 해봤는데 그 후론 다시는 사람들 앞에서 그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 때 내 장래희망은 명문대 법대를 가서 사법고시를 패스해서 검사가 되는 것, 또는 미국 명문대로 유학 가서 과학자가 되는 거였다. 평촌에 있는 학원을 다녔는데 그 이름이 '영재사관학원'이었다. 민사고 지망생들이 많았다. 주로 아빠 차를 타고 어딘가를 향할 때 미래를 상상하며 마음 속 풍선을 마구마구 키웠다. TV에 나오는 멋있는 정장을 입은 검사가 된 나, 민사고에 가서 미국 유학을 가는 나, 이런 꿈들이었다. 그 때는 그 의기양양함이 내 행복이었다.


조성모, god, 동방신기를 탐닉해오던 중딩 시절엔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일 때가 종종 있었다. 학원 가기 전에 노을이 거실에 비치면 마음이 참 멜랑꼴리했다. 학교에선 누구보다 말 많은 학생이었는데 학원에 가면 기침 소리 내는 것도 눈치를 볼 정도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늘 비밀을 갖고 살았던 거 같다. 내가 얼마나 잔인하게 엄마 마음을 말로 찌르는지, 아빠를 노려보는 내 눈이 얼마나 시뻘건지, 일기장에 부모님에 대한 복수심이 얼마나 깊게 새겨져 있는지.


아무 일이 없어도 등 뒤로 식은땀이 주룩주룩 흐르던 게 고등학교 때 중국어 수업 전 쉬는 시간이었다. 이유 없이 불안했다. 병원을 갔다. 의사에게 상처를 받았다. 약을 안 먹었다. 남자친구에게 집착했다. 차였다. 대학을 붙었다. 불안이 극도에 달해서 밥 사준다고 불러준 선배 앞에서 한 마디도 못했다. 숨고 싶었다. 학교를 안 나갔다. 밤새 영화를 보면서 희망을 찾아 헤맸다.


학교를 다녀오면 한동안은 불안해서 앉지 못하고 방 안을 빙빙 돌며 걸으며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하루는 문득 이 모든 게 내 부정적인 생각 패턴에서 온다는 힌트를 얻었다. 역으로 긍정적인 생각 습관을 들이면 지옥을 탈출할 수 있지 않을까, 길이 보였다. 그렇게 호랑이굴을 내 발로 들어가는 도전이 시작됐다. 제일 무서운 건 사람들. 그들에게 평가 받는 게 무서웠다. 20일짜리 국토대장정을 가고, 학교 총여학생회에 들어갔다.


제일 큰 도전은 인도 선재수련이었다. 1학년 때 포스터를 보고 면접에 가서 합격을 했다. 그런데 면접에서 어렸을 때 얘기를 하다가 오열을 한 것이다. 창피했다. 단체생활도 싫었다. 3학년 때 포스터를 또 봤다. 이번엔 믿고 의지하던 친구가 거기를 다녀왔다고 했다. 친구를 보니 정토회란 곳이 그렇게 사이비 같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2011년 새해가 되던 날 인도로 떠난 것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인도 기차 안, 노란옷이 나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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