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4년이나 행자생활을?

by 명화씨

Q. 간단하게 자기소개 해주세요

A. 네 저는 89년생으로 한달 후엔 38살이(...)되는 여성입니다. ㅎㅎ 지금은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모님 계시고 5살 어린 남동생이 있습니다. 조금 특이한 것은 정토회 수행자라는 것?



Q. 오호, 수행자이시군요. 들어보니 절에서 사셨다고 하던데?

A. 대학생 때 문경 정토수련원에 가서 4년 정도 있었습니다. 제가 08학번인데 3학년이 되던 2011년 1월에 인도로 선재수련을 갔던 게 4년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때 정토회에 들어가서 2014년 9월에 집으로 돌아왔답니다.



Q. 4년을 계셨군요... 사실 절에 간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닌 거 같은데, 처음에 가셨던 이유가 있을까요?

A. 처음에는 정토회에 대해 의심이 많았어요. 사이비는 아닐까, 법륜스님은 뭐하는 사람이지 등등. 대학교 1학년 때 인도 선재수련 포스트를 학교에서 봤는데 거기서 정토회를 처음 알았습니다. 그때 포스트에 있던 문구가 인상 깊었어요.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 고등학교 때 책을 읽고 꼭 봉사를 해보고 싶었거든요. 누군가를 위해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던 차라 선재수련에 마음이 끌렸어요. 근데 의심이 많고 종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1학년 때 면접보고 합격했는데도 선재수련을 안 갔어요. 그러고 있다가 3학년 되어서 그때서야 선재수련을 진짜 가게 됐습니다.



Q. 3학년 때 마음이 갑자기 바뀌신 이유가 있나요?

A. 친구 하나를 잘 만나서...ㅎㅎㅎ 총여학생회에 가입하게 되었는데, 늘 쓸쓸했던 대학시절 처음으로 제 이야기를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를 만났어요. 그 친구가 우연히 제가 선재수련 지원서를 쓸까 말까 고민하는 걸 보고는 '어, 그거 나도 다녀왔어!' 라고 해서 정토회에 대한 의심이 걷어졌습니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 친구를 존경하게 되었는데 그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다녀오면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이런 희망을 품었던 거 같아요.



Q. 선재수련은 어떠셨나요?

A. 정말로 힘들었어요. 제가 그때 대인기피가 좀 있었어서 일단 단체 생활이 너무 힘들었어요. 설거지하면서 냄비를 집어던지고 싶고 하늘 위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면서 한국에 가고 싶어서 눈물이 나고... 물이 부족해서 샤워도 못했고 차가운 콘크리트에서 자서 아침에 코가 다 터져있고 ㅎㅎ 제일 힘든건 왠지 모르지만 계속 마음이 참 괴로웠어요.



Q. 힘드셨겠네요... 그런데도 계속 정토회 활동을 하게 된 이유가 어떻게 되시나요?

A. 선재수련 때 나름의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인 거 같아요. 매일 이유도 모르고 시키는 대로 예불을 하고 108배를 했는데(ㅠㅠ) 어느 날 예불을 하려고 방석에 앉아있는데 갑자기 번개 맞은 듯이 신기한 경험을 했어요. 그동안 내가 힘들었던 이유가 딱 한 문장으로 머리 속에 명료하게 떠올랐습니다.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해줬으면 좋겠다.' 이뤄질 수 없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구나 그래서 내가 힘들었구나,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만난 선배 도반들의 영향도 컸어요. 선재수련에 가서 법륜스님 영상법문을 처음 들었는데 반은 알겠고 반은 모르겠는 거예요. 그래서 업식을 바꾸려면 가식적으로 행동하라는 건가? 이런 의문도 많이 들었고... 머릿속에 궁금증이 많았던 거 같아요. 그때마다 주변 도반들이 잘 안내를 해줬어요. 그리고 제가 '생각이 많다'고 알려줬어요. 그럴 때는 백일출가에 가서 공양간 일을 하면 생각이 많이 줄어든다고도 알려줬고 많이들 권해줬습니다. 처음에는 단체생활을 더 길게 하는 게 싫었는데 자꾸 들으니 한번 해볼까? 나도 달라질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서 마음 먹게 됐어요.



Q. 그렇게 백일출가를 하게 되셨군요! 어떤 일정인지 궁금합니다.

A. 일단 잠을 6시간 재워요ㅋㅋ 10시에 자고 4시에 일어납니다. 4시에 일어나면 새벽예불을 드리면서 108배를 하고요, 그 다음엔 도량 청소를 하고 발우공양을 시작합니다. 그리고선 다시 또 대웅전에 모여서 500배 정진을 하고 마음 나누기를 합니다. 그게 끝나고 나면 일수행이라고 농사, 도량 정비, 공양간 등 팀별로 나눠져서 몸을 쓰는 일을 해요. 저녁 먹기 전에 개인정비 시간을 갖고 저녁을 먹고 나서는 불교대학 영상강의를 듣습니다. 그러고선 뻗어서 잠을 잡니다ㅎㅎ



Q. 백일출가를 권유하시나요?

A. 저는 저처럼 간절하게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 이미 살아오던 삶을 바꾸고 싶은 사람, 자기 자신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있는 사람에겐 백일출가가 정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처음에 3일동안 만배를 해야 하는데 스스로에게서 우러나는 간절함이 없으면 관문을 넘기 힘들어요. 그래서 누가 시켜서 왔다거나 하면 해내기도 힘들고 한다고 해도 크게 얻어가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백일출가 하면서 참 간절하게 임했는데, 그래서인지 제 인생을 바꿀 수 있는 희망을 찾았던 거 같고 그래서 더 수행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Q. 백일출가를 하면서 어떤 게 좀 바뀌셨나요?

A. 행복에 대한 관점이 바꼈어요. 어릴 때부터 꿈이 뭐야 누가 물으면 '행복한 사람'이라고 대답했거든요. 그만큼 어릴 때는 괴롭고 불행한 순간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행복이라는 것을 많이 찾았던 거 같아요. 근데 참 재밌게도 백일출가를 하면서 제가 '행복'이 뭔지도 모르고 그걸 추구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Q. 백일출가를 하고 또 계속 남아있었던 이유가 있으실까요?

A. 처음에는 백일도 힘들어서 끝나고 금의환향하고 싶었는데, 50일쯤 되니 수행이 참 좋고 밖에 나가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거 같은 마음이 들어 혼란스러웠어요. 그래서 반은 남아서 좀 더 수행해보고 싶고 반은 욕구대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제 은사스님이신 유수스님께 이런 마음을 담아 '나가서 반은 제가 하고 싶은대로 하고, 반은 수행하면서 살 수 있나요?' 여쭤봤는데 ㅋㅋ 스님이 단호하게 '그런 길은 없습니다.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라고 대답해주셨어요. 시간이 갈수록 신심이 깊어져서 나중에는 제가 '저는 아무 계획이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 뜻대로 하겠습니다.' 이런 말을 하고 있더라고요? 신기하게도... 그래서 유수스님이 200일 더 하라고 하셔서 그냥 '네' 하고 더 있기로 했습니다.



Q. 그렇게 200일 상근자 생활을 시작하게 되셨군요. 그럼 어쩌다가 3년짜리 행자대학원을 가게 되셨나요?

A. 대학교에 오기 전까지 저는 또래들보다 살짝 우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근데 대학에 와보니 뭐 동기들에게 비비기도 힘들만큼 제가 처참한거에요. 속으로 질투도 하고 열등감도 많고 하니 성격적으로도 봐줄게 없고 인물도 성적도 뭐 하나 더 잘난 게 없었어요. 그래서 대인기피와 우울증이 심하게 와서 수업도 못 나갈만큼 심했거든요. 그래서 저는 '정상적인 사회인'이 되고 싶은 간절함이 컸어요. 그래서 수행에 많이 매달렸습니다. 저를 변화시키고 싶었거든요. 예전에 친구들과 잘 지내고 인정받던 때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200일 마음을 더 냈는데 그때 대규모 명상수련 준비 스탭으로 일하게 되었어요. 그 과정에서 함께 일하는 실무자분들에게 엄청나게 화가 많이 났었습니다. 얼굴이 시뻘개져서 그 분을 법명이 아닌 이름으로 부르는 제 모습을 봤어요. 정말로 수행 없이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면 사회 생활을 하기 힘들겠구나 느꼈습니다. 그래서 백일출가 때가 그리워졌어요. 그때는 늘 유수스님께 질문도 하고 수행지도도 받으며 나날이 좋아지는 걸 느꼈었거든요. 그렇게 3년은 스님 곁에서 수행해보고 싶어서 마음 내게 되었습니다.



Q. 3년을 더 한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A. 사실 하고 싶어서 한 건 아니었어요. 정말 너무나 필요성을 느끼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고 싶은 마음 때문에 억지로 하기로 한 거라 행자대학원에 입학하기 전에는 아침마다 '내가 왜 아직 여기있지?'하는 마음이었어요. 또 백일출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올 줄 알았던 딸이 기약 없이 절에 더 있는다고 하자 부모님의 반대가 극심했습니다. 아버지는 와서 불을 지르겠다고도 하셨어요. 부모님에게 의지하는 마음이 강했던 때라 정말 많이 고민됐어요. 그때 행자반장님이 입장정리를 하라고 알려주셨어요. 이럴까 저럴까 하는 마음을 딱 하나로 결정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200일만 하고 돌아갈까, 아니면 3년을 해볼까 저울질을 하다가 '아버지가 불을 내도 어쩔 수 없다'라고 입장을 정리한 게 시작이었어요.



Q. 3년 행자대학원은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요?

A. 1년은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생태와 수행 중심으로 공부를 하고 그 다음 6개월은 서울 정토회관에서 ngo 활동을 하며 사회운동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1년을 인도에서 국제구호 활동을 하고 마지막 6개월은 다시 문경으로 돌아와 수행자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는 과정입니다.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잘 쓰이는 삶이 참 행복하다'는 거였어요. 백일출가 때는 오로지 제 괴로움을 닦는 수행을 했다면 행자대학원은 정토회 실무자와 법사를 키우는 훈련이거든요. 그래서 여러 활동을 하게 됩니다. 사실 대학생이 되도록 어디가서 제가 누군가를 돕거나 어떤 일을 주도적으로 책임지고 하는 경험을 거의 없었거든요. 그런데 인도에 가서는 수자타 아카데미 교장으로 1년간 활동하고, 백일출가 스탭으로 일하면서 행자님들을 안내하고 여러 수련 준비를 책임지고 맡으면서 서서히 '나도 잘 할 수 있구나'하는 자신이 생겼던 거 같아요.



Q. 그럼에도 3년 후에 정토회의 실무자가 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A. 법륜스님께서 법문하실 때 늘 나를 잘 지키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말씀하시거든요. 그런데 저는 일은 열심히 하고 칭찬 받고 인정 받았을지언정 제 자신의 마음을 행자대학원 기간동안은 잘 지키지 못했어요. 처음 1년 6개월간은 그래도 정진도 놓치지 않고 성실하게 임했는데 인도에 가서 정진을 놓았습니다. 제가 인정욕이 강한 편인데 거기는 학교 파트에 한국인이 저밖에 없어서 일을 하면 되게 티가 나는 자리였거든요. 또 저밖에 없기도 했고... 해서 새벽에 힌디어 공부하고 업무 준비하느라 잠을 거의 안 잤어요. 새벽예불 때는 방석에 엎어져서 자고 정진도 챙겨서 안 했습니다. 일에 매몰되어 나를 지키지 못했어요.


그런 상태로 문경으로 다시 돌아왔는데 벌떼같은 후배분들을 만났습니다. 저도 모르게 3년이나 수행한 행자다라는 상이 있었는데, 자꾸 후배들과 부딪히고 미움 받고 하다보니 많이 괴로웠어요. 또 그 땐 연애도 학교도 포기하고 들어온 정토회에 대한 배신감도 많이 들었어요. 대인기피와 우울이 어느 때보다 심하게 왔거든요. 완전히 절망했고 절을 한 배도 하기 싫을 만큼 수행에 대한 믿음이 옅어졌어요. 그래도 참 대견한 건 엄청난 괴로움 속에서도 제게 맡겨진 일들은 해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뛰쳐 나가고 싶었지만 그래도 그간 해온 수행의 공덕 때문인지 여전히 한켠에 믿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인 거 같아요. 제 속에서 생각이 너무 양극단을 달려서 많이 괴로웠고, 그래서 일단은 나를 무겁게 짓누르는 '수행자'라는 옷을 벗어던지고 싶었어요.



Q. 그렇게 다시 세상에 나와서는 전과 어떤 점이 달라졌나요?

A. 우선 제 자신을 인정하고 치료를 받기 시작했어요. 또 절에 있었던 공덕으로 차츰 저 스스로를 괴롭히던 자책이나 부정적인 생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불가능하게 보였던 대학 생활에 적응했고 어느덧 사회에 나와서 하루하루 감사하고 밝은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