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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당한스펀지 Apr 09. 2020

'왜'라는 질문

리처드 파인만의 '왜 자석은 서로 밀어내는가'를 보고

*공부한 영상 : https://youtu.be/3smc7jbUPiE
[리처드 파인만] 왜 자석은 서로 밀어내는가에 대한 답변

-영상 시작-

기자 : 두 개의 자석을 들고 서로 밀었을 때, 서로 밀치려는 느낌을 느낄 수 있잖아요. 이를 반대로 하면 서로 붙으려고 하고요. 이때 두 자석 사이에 느껴지는 그 느낌은 무엇인가요?

파인만 : 그게 무슨 말이죠? "두 개의 자석 사이에서 느껴지는 느낌"이라니?

기 : 제가 말씀드린 느낌이란 뭔가가 있잖아요. 두 개의 자석을 가져다 댔을 때 말입니다.

파 : 제 질문 잘 들으세요. 뭔가 느껴지는 게 있다고 하셨는데 그게 무슨 말입니까? 당연히 뭔가 느껴지겠죠. 그래서 뭘 알고 싶으신 거죠?

기 : 제가 알고 싶은 건 이 두 개의 금속 덩어리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냐는 거죠.

파 : 자석이 서로 밀어내고 있는 거죠.

기 : 그러니까 그게 무슨 말입니까? 왜 밀어내는 겁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기 : 전 이 질문이 굉장히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파 : 물론 합리적이죠. 굉장히 훌륭한 질문이에요.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당신이 질문을 할 때.. 그러니까 “어떤 현상이 왜 일어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대답하는 사람이 어떻게 답변을 해야 할까요?



파 :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미니 이모가 병원에 있습니다. 왜요?

이후 리처드 파인만은 다양한 예시를 든다.
미니 이모가 고관절을 다쳐서 병원에 갔는데, 이를 설명할 대상이 외계인이라면?

우선 고관절을 다치면 왜 병원에 가는지를 설명해야 하고 고관절을 다쳤는데 어떻게 병원에 갔는지 등을 설명해야 한다. 왜?라는 질문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하지만 상대방이 지구인이라면 다쳤을 때 병원 가는 것이 매우 당연한 것이고 일련의 과정을 다 이해하고 있다. 왜 병원을 가는지, 다쳤는데 어떻게 병원에 갈 수 있었는지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파인만의 명언이 이어진다.

파 : 따라서 ‘왜’라는 질문에 설명할 땐, 서로가 참이라고 납득하는 일련의 범주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영상 도입부 끝-

한 문장이 떠오른다.
"질문은 그 사람의 수준을 나타낸다"

위 문장을 처음 접한 때가 떠오른다.
느낌은 사실 두려움이 가장 컸다. 생각 없이 내뱉은 질문 하나에 '내 수준은 밑바닥이 되지 않을까' 하면서.

지금에야 다시 보니 저만큼 명확한 문장이 없다.
느낌은 두려움에서 하나의 문장으로 바뀌었다.

'일단 해보자'

학창 시절엔 '왜?'라는 질문을 가볍게 던졌었다. 왜냐면 궁금하니까. 하지만 질문에 답하는 사람들은 5마디를 못가 화를 내곤 했다. 계속 '왜?'라는 질문이 돌아오니까.

회사에 가던 때에도 '왜?'라는 질문을 달고 살았다. 이땐 순수한 호기심이라기보단 사실은 두려움이었다. ‘왜’라는 질문에 납득 가능한 답을 받으면 그렇게 하면 되니까.

막상 해보기 전에 ‘왜’라는 질문을 던져 그렇구나 하고 치우는 것이다. 찍어먹어야 똥인 줄 알았던 경험도 있지만, 거리에 놓인 것을 똥이라고 가르쳐주면 그저 '아.. 똥이구나' 하고 지나갔던 때를 반성한다. 그것들을 직접 판별할 용기가 없던 것이다.

지금은 저 문장을 보면 '일단 해보자'는 생각밖에 안 든다. 만약 경험이 있는 누군가가 왜 그런지 설명을 해준다고 해도 거절할 것이다. 그 설명을 이해할만한 수준이 아니란 것을 스스로 알고 있으니까.

‘왜’라는 질문을 던지기 전엔 무조건 경험해보고 어떤 것이 참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수많은 공부를 동반하며 스스로 나가야 한다.

그리고 사실 경험들이 쌓인다면 더 이상 ‘왜’라는 질문은 하지 않을 것 같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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