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랖과 착하다의 사이에서
오지랖과 착하다의 사이에서
오지랖의 역사 上.
오지랖의 역사는 생각보다 짧지 않다. 완전 애기 때인 4살 전을 제외하고, 이후론 오지랖의 세계에 푹 빠져 살았었다. 오지랖이 처음 시작된 건 노숙자를 만났을 때였다. 길거리에서 구걸 중인 노숙자를 보면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어머니는 내게 천 원을 쥐어주셨고 드리고 오란 의미로 눈빛을 주셨다. 천 원을 받은 난 졸졸 걸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살포시 천 원을 놓고 왔다.
오지랖의 역사 中.
학창시절 오지랖의 의미는 조금 달라졌다. 자신이 하지 않는 특이한 행동을 본 친구들은 내게 꼬리표를 붙였다. "착하다." 시간이 지나니, 어느새 착한 아이가 되어있었고 몰려드는 친구들이 많았다. 친구들이 몰려든 이유는 '담배를 빌리러'였다. [얘는 착하다 -> 착하니 선행을 베푼다 -> 난 담배가 없으니 주겠지? -> 오 진짜 주네] 오지랖으로 얻은 착하다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오지랖의 역사 下.
사회생활 오지랖의 의미는 많이 달라졌다. 사회에서의 오지랖은 꼰대의 상징이었다. 마음은 '너가 잘 되길'이었지만, 막상 내뱉는 말은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되었다. 말하는 이와 듣는 이의 마음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남이니 그럴 수밖에. 그래도 진심은 어느 정도 통하는지 착함의 꼬리표는 남아있었고 그 결과 착한 꼰대가 되었다.
당시 교육업에서 학생을 담당하는 직업이었다. 목표에 대한 계획을 안내해 주는 역할이었고, 잘못된 안내는 학생의 손해로 이어지기에 모든 순간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길었던 오지랖의 역사는 한 사건 덕분에 끝났다. 이 사건은 잘못된 안내 때문이 아닌, 오지랖으로 꺼낸 한 마디 때문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이런저런 논쟁이 있었고 민사로 넘어가도 괜찮을 만큼 모든 증거를 확보해뒀다. 확보한 증거까지 있었지만, 그냥 다 '오지랖 때문이다' 생각하며 나만 손해 보기로 결정했다. 1년간 학생이 지불한 비용을 환불해 줬다. 이 비용은 오지랖에 대해 배운 교육비로 생각하기로 했다. 환불 후 사건은 종결됐고 난 오지랖을 끊었다.
뼈대 우산의 비 맞는 할머니
봤다. 눈에 보였다.
카페에서 글 쓰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오늘은 어디 카페를 가지' 생각하며 걸어가는 중, 갑자기 빗방울이 거세졌다. 난데없이 거세진 비에 손잡이를 꽉 잡고 걸어가는데 등 굽은 할머니 한 분이 보였다. 할머니의 오른손엔 지팡이가 있었고 왼손엔 우산이 있었다. 어디서 주워온 듯한 뼈대만 남은 우산. 할머니는 거센 비를 온몸으로 맞고 계셨다.
의문과 고민의 공존.
할머니는 뼈대만 남은 우산을 꼭 쥐고, 나무로 만들어진 지팡이로 땅을 짚으며 비를 헤쳐가고 있었다. 비 막는 용도를 상실한 쓸모없는 뼈대 우산을 '왜 들고 가시지?' 의문이 들어 잠시 보고 있었다. 마음 한 편으론 '우산을 드리고 다시 집에 돌아갈까..' 고민 중이었다. 잠시 고민하는 중에도 할머니는 비를 맞으며 계속 걸어가셨다. '도대체 왜 뼈대 우산을 들고 계신 거지?'
짧은 시간이 지나고 그 이유는 밝혀졌다.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들고 오셨던 거다. 정작 자신은 비를 맞으며 쓸모없는 뼈대 우산을 들고 다닌 이유는 사람들의 발길, 찻길에 치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할머니가 뼈대 우산을 쓰레기통에 넣으신 후, 잠깐의 고민은 끝났다. 아끼던 큰 검정 우산을 할머니 손에 쥐어드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괜찮다고 손사래 치셨지만 집 가는 길이었고 바로 앞이 집이라고 거짓말했다. 음.. 나 카페 가고 있었는데..
잘한 일 같은데 왜 불안할까.
비와 함께 집으로 뛰어가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부터 뼈대 우산을 끌고 오신 걸까, 시장 안에서 우산을 들고 할머니를 보고 계시던 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할머니는 우산을 쓰셨을까, 내가 한 행동이 또다시 오지랖을 데려오는 것은 아닌가 등. 솔직히 오지랖이 돌아오면 감당할 자신이 없다. 조금 불안하다. 하지만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할머니께 우산을 드렸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