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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쁠 희 Sep 15. 2020

#365 할아버지가 날 안아 주는 꿈

4년 만에 만난 할아버지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모습의 할아버지는 많이 야위여 계셨다. 다리와 팔에서 뼈가 앙상하게 비쳤고, 볼이 깊이 파여있었다. 밥을 드시면 소화를 시켜야 할 때마다 몹시 고통스러워하셨고, 정말 강력한 진통제를 먹지 않으면 생활이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배를 꼭 한 대씩 피우러 나가셨다. 더 적극적으로 말릴 수 도 없는 상황이었고, 가족들도 잔소리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매우 과묵한 분이셨다.

할머니는 그런 할아버지를 '답답한 양반'이라고 자주 표현했었다. 따뜻하게 사랑 표현을 아내에게는 물론, 예쁜 딸들에게 조차 할 줄 몰랐고, 그저 열심히 일하고, 친구들과 가끔 낚시를 가고 바둑을 두는 것이 당신의 삶의 전부였던 것 같았다. 그나마 할아버지가 가장 크게 표현을 할 때는 손녀 손주들을 볼 때. 오면 항상 반갑게 안아주셨고, 내가 하는 말에 웃으셨다. 항상 단 한 번도 먼저 무언가를 이야기하신 적은 없지만 내 이야기를 누구보다 열심히 듣고 웃어주셨다.


그런 할아버지가 한번 진통제에 취해, 갑자기 내 손을 덜컥 잡으시고는, '우리__, 좋은 남자 만나야 할 텐데... 좋은 남자 만나야 해'라고 이야기하셨다. 진짜 순간 눈물을 참지 못할 뻔했다. 내 손을 잡고, 계속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겨우 눈을 목 뒤로 넘겨내고, 최대한 웃으면서 '좋은 남자 만나나 할아버지가 보실 거죠?'라고 대답했다.

나는 15살에 유학을 선택한 이후로 단 한 번도 공항 가기 전날에 운 적이 없는데, 그땐 엄마를 붙잡고 이게 마지막이면 어떡하냐며 꺼이꺼이 울던 기억이 있다. 그게 진짜 마지막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꿈에서 나는 할머니랑 무슨 이유 때문에서였는지 싸웠다. 할머니는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고, 난 혼자 앉아서 훌쩍이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나타나서 아빠한테 나를 좀 앉아주라고 부추겼다. 그걸 보고 나는 괜히 투정 섞인 화를 냈다. 왜 아빠를 시키냐고, 할아버지가 나 앉아주면 되지 않냐고. 그 말을 듣고는 할아버지는 조용히 나를 앉아주셨다. 그 품에서 목이 터져라 울다가 그대로 잠에서 깼다.


다들 할아버지 꿈에서 한 번씩 봤다고 해서 부러웠는데,

나도 봤다! 우리 할아버지. 너무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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