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쁠 희 Feb 04. 2021

"나도 시켜서 하는 거란 말이야..."

캐나다 직장인의 업무 일지 #1 억울한 월요일

"I have nothing to say, do you?"(나 할 말 없는데, 넌 있어?)


월요일 아침부터 하는 소규모 미팅에서 사수가 매우 화가 나있었다. 몇 가지를 질문했지만 재택근무라 화상 회의를 하는데 카메라 조차 쳐다보지 않고 단답을 하는 그녀와의 통화는 2분을 채 가질 못했고, 내가 마무리 멘트를 하자마자 "okay bye"하더니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 사람의 기분이 시시각각 변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 더 황당했다. 


'대체 왜?'


혼란스러워하던 찰나, 그 사수와 13년 동안이나 일을 했던 사장님한테 연락이 왔다. 본인은 이유를 왠지 알 것 같다고 했다. 


우리 회사는 아침 9시마다 다 같이 모여서 저번 주에 무슨 일을 했는지, 오늘은 어떤 업무를 주로 할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체크하기 위함이다. 그때 한 총괄 개발자가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면서 나와 함께 오늘 그것에 대해 대화를 해볼 예정이라는 언급을 했는데, 그것이 내 사수의 신경을 건드린 것이다. 왜 자신이 아니라, 나와 그 프로젝트에 대해서 상의한다는 건지 기분이 나빴던 것이다. 그럴 수 있고도 생각한다. 저번 주에도 내게 먼저 미팅 제안을 해서 이런저런 자신의 생각에 대해서 공유했던 그녀이기에 얼마나 열정적이었는지 내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저번 주부터 조금 더 이 프로젝트에 자세히 개입해달라는 사장님의 요청을 받았다. 이때까지 많은 프로젝트들을 진행시켜왔기에 필요한 부분을 정리하고 총괄 프로젝트 매니저에게 보고하며 같이 일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 프로젝트에 필요한 스크린 디자인도 이미 내가 맡고 있었기에 개발자들과 일하기에도 조금 더 적합한 상태라고 사장님은 판단했다. 이미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나는 내 사수를 언급하며 함께 미팅을 진행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고, 사장님은 "프로젝트에서 그녀가 필요한 순간이 올 것이고 그럼 그때부터 함께할 거다. 지금은 네가 필요한 소스라고 생각이 되어서 투입되는 것일 뿐, 누군가를 배제할 생각이 없다"라고 말씀해주셨다.


하지만 그녀가 내포된 그 뜻까지 알아줄리 없었다. 결국 모든 직장인들이 혐오하는 월요일 아침부터 내가 그녀의 첫 희생양이 됐다. 내가 그녀의 역할을 뺏은 것도 아니고, 원래 내가 하고 있던 일에 조금 더 의무가 가중되었을 뿐이었다. 오히려 나는 일이 늘어서 저번 주 내내 야근을 해야 했다. 나도 그냥 시켜서 하는 거고, 이거 한다고 내 연봉이나 인센티브가 올라가지도 않는 것이 팩트이기에 괜히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사장님은 팬에 기름칠하듯이 흘려보내라는데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조금 불편한 마음이 들더라도, 나는 나중에 내 후배가 조금 더 책임이 많아지더라도 진심으로 축하하며 박수 쳐줄 수 있는 사수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2020년 총결산 "올해의 0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