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장
안녕, 어떤 말로 인사를 건네면 좋을지 모르겠다. 잘 지내니? 음.. 그래. 내가 아는 너라면 이 질문에 적절한 답을 찾지 못하고 그저 떨떠름하게 잘 지낸다고 대답하겠지. 아무렴, 어때? 나는 네가 어디엔가 살아 내 편지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안심이 돼.
편지를 쓰는 이유..에 대해서 말을 해볼까? 있지, 지난주에 있었던 독서모임의 책 주제가 ‘글쓰기’였어.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모임에 참여한 분들이 자연스레 각자 겪어왔던 글쓰기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하셨거든. 초등학교 때 친구의 글에 대해 조언해서 친구가 좋은 결과를 얻은 일, 열심히 쓴 일기에 칭찬받은 일, 여차 저차 해서 짠! 하고 상을 받았습니다~하는 이야기.... 사람들은 이야기로 빛이 나는구나, 하고 새삼 느꼈어.
그래서 다음 주까지 써야 하는 글의 주제를 어떤 거로 하면 좋을까~ 하는 토론에, “나의 글쓰기 순간은 어떨까요?” 하고 의견을 냈어. 나도 찾고 싶었거든. 빛나는 순간을. 다행히 대부분 좋은 생각이라고 받아들여 주셨어. 이게 내가 지금 너에게 글을 쓰는 명분이야.
사실 이 주제에 대해 생각하며 처음부터 너를 떠올리지는 않았어. 알다시피 너는 빛보다는 어둠에 가깝잖아? 그런데, 글을 쓰는 수많은 아이들 중 네가 글을 쓰는 모습이 유독 내 눈에 밟히네. 그래서, 그래서 이런 편지를 쓰고 있어.
딘의 21이라는 노래를 좋아해 21살의 네 모습을 기대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한 너 자신을 보며 실망하고 있는 너, 줄곧 바쁘게 보냈던 연말연시인데 이번에는 집에서 곰팡이 썩어가듯 보내고 있다고 느끼는 너,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줄 알았던 사람들이 새해에 대한 기대를 남기는 것에 배신감을 느끼는 너, 그런 쓰레기 같은 마음을 가득 안고 누군가 버리라고 할까 봐 지레 겁먹고 사람들을 피하는 너. 그래. 이천십팔년 새해를 맞이해 ‘바보 같은 의미 부여’라는 글을 쓰고 있는 너, 그래. 2년 10개월 전의 나야.
너는 그런 마음을 쏟아내고서, “아무것도 안 하면 좀 어때? 아무것도 안 했다고 해서 곰팡이가 되는 건 아니잖아. 진솔아. 너는 너 자체로 소중해”라는 친구의 댓글이 보기 싫어 댓글 창을 막아버리고, 나는 위로해달라고 글을 올린 게 아닌데 글재주가 없어서 제대로 표현을 못 한다며 새로운 글을 쓰려다 말았지. 글쎄, 내 생각에 너 위로가 필요했던 게 맞는 것 같아. 다만 너는 스스로 너를 위로하고 응원하길 바랐던 마음이었겠지. 그런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글을 써 내려갔겠지.
새벽에 글을 마무리하며 엄마가 타 준 메밀차를 마시고, 마감 앞둔 작가가 된 것 같다며 피식 웃기도 했었네. 썩 기분 좋은 글을 쓰고 있는 건 아니지만, 이상하게 웃음이 새어 나왔던 그때처럼 너는 몰랐겠지만 너는 늘 그렇게 글쓰기를 너 자신을 위로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어. 물론 지금도.
너는 그 이후 몇 차례 더 너의 모습에 대해 비관적인 글을 쓸 거야. 대표적으로… 멋진 사람이 되고 싶지만 상처 받을까 두려워 아무것도 못 하는 나에 대해 쓴 ‘나는 너무 소중하다’라는 세 편의 글이 있어. 독자 입장에서 친절한 글은 아니지만 나는 독자로서 그 글을 좋아해. 나는 너니까. 그때의 너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니까. 그 글을 쓰고, 수십 번 읽으며 너는 너에 대해, 그러니까 너는 나에 대해 계속 질문을 하거든. 그래서, 그래서 그 글을 좋아해.
너는 계속해서 글을 쓰며, 글을 읽어나가며 살게 될 거야. 너와 나 사이의 또 어떤 아이는 “괜찮아, 그늘이 없는 사람은 빛을 이해할 수 없어”(백세희,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구절을 좋아해 자신의 그늘을 인정하려고 노력하고, 또 어떤 아이는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들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김영하, 「여행의 이유」)라는 구절을 읽고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해. 너와 나 사이의 수많은 아이들. 모든 내가 또 어떤 일을 겪어나갈지, 아무도 모르지만 너는 쓰며, 읽으며, 사랑하는 방법을 배울지도 몰라. 그 과정에서 넘어지더라도 네 글은 말하고 있어. “너는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사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