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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Sep 07. 2021

그녀가 말했다

  

   나만 쥐뿔도 없는 건가 생각하며 길을 잃은 25 

  (사실 그렇지도 않다는  정도는 압니다.)




저는 말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말하기를 좋아하는 마음보다 말실수를 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과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했을 때의 부끄러움이 더 커서 말 대신 글을 더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글은 버스나 지하철에서, 책상 앞에서, 집 근처 산책로에서, 이불 위에서, 앉아서, 서서, 걸으면서, 누워서, 휴대폰 메모장에, 머리맡에 있는 아무 펜으로 아무 공책이나 일기장에, 인스타그램에, 블로그에... 시간과 장소, 자세를 가리지 않고 씁니다. 아, 지금은 지하철에서 걸으며 휴대폰 메모장에 쓰고 있어요. (그러다 가야 할 곳을 지나쳐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 중입니다….)

쓸 소재는 너무 많습니다. ‘수박 안에 있습니다.’라고 적혀있는 마트에 붙은 종이, 관악구 신림동에서는 배달음식을 포장해 가는 사람들, 성북구 정릉동에서는 분홍색 종량제 봉투에 장을 봐가는 사람들, 지하철 개찰구로 걸어가며 손톱을 깎던 아저씨, 신호대기 중에 손톱을 깎던 기사님, 허리를 숙여야만 거스름돈을 집을 수 있을 만큼 낮은 위치에 있던 버스의 돈 통이 어느 순간 내 하체보다 조금 더 위쪽으로 바뀌어 있는 것, 길음역 근처의 분홍 집들, 저를 아가씨라는 호칭으로 부르는 택시 아저씨, 수학 성적에 대해 이야기하는 고등학생님들, 연예인 걱정은 하는 게 아니라는 지하철 속 누군가의 말, … 다른 사람들보다 유난히 보이고 들리는 게 많은 것 같은 건 그저 저의 기분 탓일까요. 가끔은 제 시선으로 본 사람과 사물에 대해 더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제 얘기를 하려다 여태 제가 보고 들은 것을 더 많이 이야기한 듯싶네요. 다시 제 이야기를 할래요. 저는 스물다섯 살이고요, 키는 160cm 정도예요. 생긴 건 그냥… 동글동글하게 생겼습니다. 어떤 사람은 저처럼 생긴 사람들을 많이 봤다거나 생각보다 키가 크다고, 어떤 사람들은 저같이 생긴 사람을 처음 본다거나 생각보다 키가 작다고 말해요. 보기 나름인가 보죠 뭐. 예대에서 엔터테인먼트 경영 전공을 했었는데요, 작년에 졸업을 한 학기 정도 남겨두고 자퇴했어요. 앞서 말했듯 말하기를 너무 좋아해서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는데, 아나운서는 4년제 대학교를 졸업해야만 한다더라고요. 제가 다녔던 학교는 3년제 전문대학이었고요. 편입을 해서 새로운 학교에서 새로운 전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학교를 그만두며 많아진 시간을 시험공부 자금 마련을 위해 하루의 절반 이상을 알바와 알바를 하러 가는 데에 썼습니다. 그렇게 돈을 어느 정도 모았어요. 그러다 김영하 작가님의 <여행의 이유>를 읽고, 본격적인 시험공부를 하기 전,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제주도 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원래 한 달이었던 여행 계획이 독립출판 수업을 들으며 두 달로, 게스트하우스에서 매니저 제안을 받으며 반년으로, 그러다 사장님과의 성격 차이(?)로 세 달 만에 제주도 여행을 마무리 지었답니다. 학교와 일을 위해 서울에 살다가, 여행을 위해 자취방을 빼고 제주도로 갔다가, 본가인 포항으로, 포항에서 공부를 하겠다며 다시 서울로 왔습니다. 이러쿵저러쿵 살다가 여행 중 들었던 수업의 결과로 독립출판물을 만들었고, 북페어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러다 지금은 갑자기 출판사의 직원이 되었습니다.


물어볼 때마다 지내는 곳과 하는 일들이 휙휙 바뀌는 저의 소식을 따라잡지 못한 친구들에게 가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할까를 생각하는데요. 오늘에서야 작년과 올해의 제 소식들을 말끔히 정리하게 되었네요. 이런 저를 보며 한 친구는 자유로운 영혼이라며 '자영이', 여기저기 잘 날아다니며 산다며 '파랑새'라는 별명들을 지어주기도 했답니다.


글을 보며 짐작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저의 MBTI는 INFP입니다. 내향적이고, 이상적이고, 감성적이고, 충동적입니다. 저는요, 저는요 이런 저를 미워하고요, 이런 저를 좋아해요. 제 안의 저는 같은 마음이 아닐 때도 있어요. 그래서, 그래서 그런 제가 잘 지내지 않길- 바라기도 하고, 스스로에게 행복하게 지내란 말을 하는 것을 싫어하기도 한답니다.




                * 마지막 문단은 토이의 그녀는 말했다 (with. 권진아)라는 노래 가사를 생각하며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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