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병원 진료 대기실에서 한 할머니를 보았다. 멀찍이 옆 의자에 앉으신 할머니는 작고 여린 몸으로 진료 순번을 기다리고 계셨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어 내시는 할머니를 보다가 의자 손잡이를 꼭 붙들고 계시는 할머니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마디가 잘 펴지지도 않는 주름진 손가락엔 예쁘고 반짝이는 반지를 끼고 있었고 혈관이 구불구불 튀어 올라 나온 손목엔 예쁜 시계를 차고 있었다. 반지는 손가락 마디가 너무 굵어진 탓에 빠져나올 수 없어서 손가락 첫 번째 마디에 오랫동안 자리를 잡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는 내 손을 보았다. 두 손가락에 레이어드로 끼고 있던 내 손의 반지, 그리고 시계를 찬 손목, 할머니와 똑같이 나도 반지를 끼고 시계를 차고 있었다.
얼마 전 남편이 사준 반지를 끼고는 마디도 굵어지고 주름도 많이 생겨 손이 예쁘지 않다고 투덜거렸던 게 생각이 났다. 할머니 손을 한번 내 손을 한번, 몇 번을 번갈아 보다가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주름진 할머니 손에서 보았다
매일 아침마다 부지런히 일어나셔서 식구들의 아침을 만드느라 늘 분주하게 움직였던 손, 봄이 되면 씨 뿌리고
가을 되면 추수하느라 굳은살이 가시지 않았던 손, 추운 겨울 차가운 물 마다하지 않고 설거지며 빨래하시던 손....
조약돌 같이 매끄럽고 예쁜 손으로 태어나 쉴 새 없이 힘든 세월을 만지고 살다 보니 어느새 그 곱던 손은 온 데 간데없고 주름진 세월의 흔적만 남았다. 왠지 모를 미안함과 감동이 북받쳐 올라왔다. 그 주름진 손은 나를 금지옥엽으로 키워 낸 아름답고 위대한 손이었으며 아픈 내 배를 쓰다듬어 낫게 한 우리네 어머니의 손이었다.
청춘의 나이, 고왔던 시절, 반지 한번 못 껴보고 예쁜 시계 한번 못 차 볼 만큼 바쁘게 움직였던 손이 이제는 주름지고 굵어진 마디에 혈관마저 구불구불하게 나온 손이 되었다. 나를 위해 세월의 시간들을 만지고 다듬어 가느라 그렇게 된 손가락에 어떤 반지인들 예쁘지 않을까.
세상살이 힘들어 눈물을 훔치시던 손, 식구들의 어설픈 뒷정리를 늘 돌보시던 손, 자식들이 더 잘 되기를 바라며 기도 하시던 손, 정작 당신을 위해 멋 한번 못 부려 본 어머니의 손은 그 어떤 손보다도 아름답고 예쁜 손이었다.
잠시나마 주름 져 가는 손이 안 이쁘다며 불평했던 내가 할머니 손 앞에서 부끄러워졌다. 아이들에게 나의 손은 또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할머니의 손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의 손도 먼 훗날 우리 아이들에게 또 다른 위대함과 아름다운 손으로 기억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진출처.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