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불에 피어나는 풍경

by 연아

"아야 해 넘어간다

어서 군불 지펴라"

할머니의 불호령에


첫째는 둘째를 보고

둘째는 셋째를 보고

셋째는 앙탈 한번 부리고


정지로 향한다


바닷일 마치고 오시는 부모님

따시게 씻을 물

가마솥에 가득 붓고


부지깽이 들고

가을 내내 모아 놓은

마른 소나무 잎 듬뿍 깔고

마른 나뭇가지와 장작을 올려놓은 뒤

성냥불을 켠다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 앞에

불멍은 시작되고

작은 정지안은 금세

따뜻한 온기로 가득하다


방 자리 눌어도

한 겨울 추위에 맞서

뜨뜻하기만 하여라


일 마치고 오실

부모님 언 손 녹이도록

뜨뜻하기만 하여라

활활 타오르던

아궁이 장작불은

어느새 빨갛게 달아 오른

숯불이 되고


불씨가 꺼질세라

석쇠 위에 고등어 얹어 굽고

불씨가 꺼질세라

참기름 바르고 소금 뿌려 둔

파래김 굽고


끝까지 남은 불씨 아까워

가을에 수확한

고구마를 묻어 둔다


군불 지펴 따뜻해진

아랫목에 둘러앉아

저녁 한 상 차려 먹고


소명을 다한

아궁이 속 잿빛 숯불에서

잘 익은 고구마를 꺼내


이야기를 먹고

고구마를 먹고


차가운 겨울밤

구멍 난 창호지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마저

군불이 데워 놓은

온기에 따뜻해진다


그리운 우리 집

그리운 가마솥


군불 속에 피어나는

풍경이 그리워지는 밤



*정지: 부엌[경상. 전라. 강원 방언]

*사진출처. 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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