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2월 31일부로 권고사직될 예정입니다.

'나는 직장생활에 실패했다' 1화

by 일재미

"2020년 12월 31일부로 직원들을 권고사직 처리할 것입니다. 관련하여 정산하도록 하겠습니다. "

정확히 20년 12월 17일 오후 1시경, 회사의 대표에게 받았던 메일이다. 글자 그대로 읽으면, ‘회사가 직원들을 권고사직 처리할 예정이고, 관련해서 퇴직금을 정산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권고사직? 처리? 그리고 뭐, ‘정산?’...

‘처리’란 자고로 애물단지를 처리하거나, 물건을 환불 처리하거나, 폐수를 처리하거나, 골치 아픈 문제를 처리할 때 쓰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처리’라는 단어의 목적어가 사람이 될 줄은, 그것도 내가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래. 권고사직? 까짓것 할 수 있다 쳐. 하지만 적어도 직원들의 미래가 걸린 중대한 사안을 아무런 논의 없이 대표 혼자 결정하고, 이메일로 통보한다는 건 너무 한 거 아냐?’

회사는 구성원을 철저히 부품 취급하는 것 같았다. ‘권고사직’이라는 단어가 주는 압박감, 구성원들이 느낄 감정이나 의견은 깡그리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권고사직을 강요했고, 오로지 이메일로 후속 절차를 진행했다.




코로나가 터진 후, 회사는 구성원들의 월급부터 삭감했다. 이미 한없이 작고 귀여웠던 월급에 스크래치가 생기자 함께 일했던 동료들은 하나, 둘, 회사를 떠나갔다. 나는 이에 동요되지 않고 소처럼 일을 했다. (실제로 권고사직 직전인 11월에도 일주일에 2-3일은 새벽 2-3시까지 야근을 하며, 회사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돈을 벌어왔다.) 내 노력을 알아 달라고 어필한 적도, 힘들다고 징징댄 적도 없었다. 나 역시 불안했지만, 내 회사를 지키기 위해선, 나와 동료들의 월급을 책임지기 위해선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회사는 반드시 '지켜야 할 대상'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회사는 나에게 '권고사직'을 통보했다.

간혹 “요즘 같은 시대에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어요?”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겪어보니 가능하더라. 언론의 견제를 받는 대기업이나, 외부의 투자 자금으로 운영되는 스타트업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대표 1인이 설립한 중소기업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탈출은 지능 순이라는데 그저 내가 미련하고 둔해서 재빠르게 도망치지 못했을 뿐이다.


중소기업이 망하는 이유는 가지 각색이지만, 내가 다녔던 회사처럼 재무제표가 건전하고(부채가 하나도 없고, 신용등급이 높았음) 매출을 꾸준히 내는 회사에서 직원들을 내보내는 이유는 하나다.

“대표가 더 이상 사업을 하고 싶지 않아서”


실제로 대표는 11월 초 회의에서 전 직원 권고사직안을 발표하고, 그 이후로 한 번도 회사에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게 불편했던 것인지, 소통하는 것이 귀찮고 성가셨던 것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대표를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코로나 때문에 회사를 운영하는 게 힘드셨던 거야, 사정이 있으시겠지, 한 번은 구성원들과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실 거야. 이렇게 이메일로 ‘띡’ 통보하고 마무리 짓는다니 이건 말도 안 돼. ’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하지만 나의 믿음은 완전히 빗나갔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졌다.

나는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하고, 따뜻한 밥 한 끼 얻어먹지 못하고, 위로금 한 푼도 받지 못한 채 ‘대표의 회사’에서 쓸쓸히 퇴장했다.

퇴사 후 남은 건 한없이 가벼운 텅장, 영혼까지 털려서 너덜너덜해진 몸뚱이, 직원 수 15명 남짓에 불과했던 ‘중소기업 경력’ 한 줄 뿐이었다.


[2013년 1월 2일 입사 - 2020년 12월 31일 퇴사, 총 경력 8년]


‘나는 왜 그렇게 열심히 일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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