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거야?

'나는 직장생활에 실패했다' 2부

by 일재미

‘갈아 넣었다’ 직장인들의 회식자리에서 빠지지 않는 단어이다.

어느 회사를 가든 4인 이상이 모이면, 각자의 성공담을 이야기하기보단 저마다의 크고 작은 ‘갈아 넣은 썰’들을 풀어놓는다. 그렇게 이슬 한잔에 슬픔도, 눈물도 목 뒤로 털어 넘기며, 회사생활의 수명을 연장한다.

‘갈아 넣는다’는 내가 회사를 다닐 때에도 자주 듣고, 자주 쓰던 말이었는데, 어느 날 문득 그 표현의 정확한 의미가 궁금해졌다. 네이버 검색창에 ‘갈아 넣는다’는 단어를 검색해본다. 여러 직장인들의 갈아 넣은 썰들이 펼쳐지는데, 나는 몇 개의 글들을 읽으며 ‘갈아 넣는다’는 표현의 뿌리를 유추해볼 수 있었다.


분골쇄신(粉骨碎身, 가루 분, 뼈 골, 부술 쇄, 몸 신) : 뼈가 가루가 되고 몸이 부서진다는 뜻으로, 있는 힘을 다해 노력(努力)함, 또는 남을 위(爲)하여 수고를 아끼지 않음’


추측컨대 ‘갈아 넣는다’는 표현의 뿌리는 ‘가루가 되다’이고, ‘가루가 되다’의 시초는 ‘분골쇄신’이라는 사자성어에서 유례 된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다닌 회사는 회사의 임직원을 위한 교육 과정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기업교육 컨설팅사’였다. 회사는 주로 대기업의 교육팀(인재개발팀, 인사팀의 교육파트) 업무를 대신해주면서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였기에, 내가 하는 일은 '남을 위하여 수고를 아끼지 않는' 분골쇄신의 성격을 띄었다. 다른 이의 업무를 대행하며 밥벌이를 하는 회사이다 보니, 이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부터 퇴사할 때까지 나의 신분은 ‘을’이었다. 고객사와의 계약서에는 항상 친절하고 명확하게 ‘갑’과 ‘을’의 역할과 책임을 구분해주었고, 나는 ‘을’의 역할을 누구보다 성실히 수행했다.

대행 업무의 특성상 나에게는 프로젝트의 예산을 늘리거나 일정을 조정할 권한이 없었고, 주어진 자원과 시간 안에서 최상의 결과물을 제공해야 하는 책임만이 존재했다. 나는 ‘펑크를 내지 않기 위해, 약속된 날짜를 지키기 위해, 교육을 성공시키기 위해, 클라이언트를 만족시키기 위해, 교육생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기타 등등의 여러 이유로 매일 가용할 수 있는 에너지를 최대로 갈아 넣으며 ‘분골쇄신’ 했다.

'남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이 이 회사의 생존 방식이자 우리들의 흔한 일상이었다. 여기까지는 그저 어느 회사나 한 두 개쯤 갖고 있는 사업의 특수성이나 고충 정도로 이해할 수 있었다.


문제는 (미친) 업무 강도였다. 이건 물론 사바사(사람 By 사람)였는데, 컨설턴트의 역량이 쌓이고 성공하는 프로젝트가 많아질수록, 시장의 수요공급 법칙에 따라 그 컨설턴트를 찾는 고객사의 수도 늘어났다. 이는 컨설턴트 1명이 감당하고 책임져야 할 업무량도 무한대로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 경우 3년 차 이상이 되자, 내게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적인데 반해,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많은 일들이 사방에서 치고 들어왔다. 결국 나는 고객사와 약속한 일정에 최상의 결과물을 납품하기 위해, 매일 밤늦게까지 야근과 밤샘 근무를 했다. 그렇게 부족한 업무 시간을 내 개인 시간으로 메꾸며, ‘꾸역꾸역’ 프로젝트를 성공시켰다.

이 삶을 무려 5년 반을 지속했다. 8년의 경력 중, 3년 차부터는, 회사에서 자주 밤을 새우거나 주말 포함 주 6일을 근무하는 게 나의 일상이 되었다. 내가 이렇게 한결같이 빡세게 일하는 걸 본 주변 사람들은 열이면 열, 이렇게 물었다.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거야?”



사람들에 질문에는 멋쩍게 웃으며 대답을 피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고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 편의 영화 같은 교육을 만들고 싶어.”

나에게 영화란 인생의 탈출구였다. 영화 ‘라라랜드’를 보며 미처 이루지 못했던 어릴 적의 ‘꿈’을 떠올렸고, 영화 ‘패치아담스’를 보면서 ‘세상을 바꾸는 바보가 되겠다’는 열망을 품었다. 영화를 보고 나면 항상 눈물을 흘렸고, 그 눈물은 '인생을 더 열심히 잘 살고 싶어!'라는 다짐으로 이어졌다.


나는 내가 만나는 직장인들에게 한 편의 영화 같은 교육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영화 같은 교육’을 통해 내가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 감동을 느낄 수 있기를 꿈꿨다.

치열한 현실에서 한 발짝 떨어져 ‘나’ 스스로를 돌아보고, 더 나은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그게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다.


나는 이러한 신념을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해 실제 ‘영화감독’처럼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다.

시나리오 작가처럼 교육에서 쓰이는 강의안(PPT)과 강사 스크립트(강의 멘트)를 직접 작성했고,

시나리오의 의도대로 내용이 전개될 수 있도록 강사를 선발하고 육성했으며,

교육장 벽면에 아름다운 전시물(영화 포스터, 그림, 글귀 등)을 설치하여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충무로 인쇄거리를 돌아다니며 교재로 사용될 다이어리 표지의 가죽 질감, 종이 두께까지 직접 만져보며, 교육 물품 하나하나에 혼을 담았다.

교육장 안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BGM, 향기까지 의미를 담아 디자인했다.


어떠한 보상을 바라고 했던 일은 아니다. (사실 나는 해당 기업의 직원이 아니었기에, 성과평가/승진 등 나에게 돌아오는 보상은 전혀 없었다.)

그저 내가 만든 교육을 통해 사람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거나, ‘최고의 교육이었어요’ 한마디 피드백을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명함에 찍힌 나의 직업은 “HRD 사업부 책임 컨설턴트”였지만, 내 마음속 깊은 곳에는 “나는 직장인들을 위해 한 편의 영화 같은 교육을 만드는 감독이다”는 믿음이 굳게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내가 만든 교육으로, 세상을 더 나은 모습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인간은 자기가 공들여 일구고 가꾼 것들 과만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고, 특히 그런 관계를 통해 자기 존재를 확장할 수 있다” – 황현산, 사소한 부탁 -

내가 다닌 회사, 내가 하는 일은 남들이 선망하거나, 높은 연봉을 받는 직업은 아니었다.

이 회사에 입사한 직원들은 평균 9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퇴사했다. 직원 입장에서 업무 강도는 높고(야근은 많고), 연봉은 낮으니 다녀야 할 이유보다 그만둬야 할 이유를 찾는 게 더 빨랐다.

그래도 나는 스스로 이 일에서 의미를 찾았고,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했다. 그렇게 내 ‘일’을 공들여 일구고 가꾸며, 관계를 맺었던 것이다.


그런 ‘나’에게 회사의 일방적인 권고사직 통보는, ‘일’을 인생의 최우선 가치로 삼았던 세계관 전체를 무너뜨리는 행위와도 같았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상황을 납득할 수가 없었다.


‘회사’가 뭔 데? 왜 내 미래를 회사 마음대로 결정해?’

‘고용주라는 이유로 구성원들의 감정이나 자유의지를 이렇게 묵살하고 훼손해도 되는 거야?’


나는 마음속으로 수천번 소리 없는 아우성을 외쳤지만, 결국 하고 싶은 말은 하나였다.


‘이건 내 인생이고, 내 일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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