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직장생활에 실패했다' 3부
이상주의(Ideralism)
1. 인생의 의의를 오로지 이상, 특히 도덕적/사회적 이상의 실현에 두는 태도
2. 현실적 가능성을 무시하는 공상적이거나 광신적인 태도. 또는 그런 경향
나는 어릴 때부터 지독한 ‘이상주의자’였다.
문제는 내가 남들보다 ‘이상적’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살았다는 점이다.
첫 직장은 ‘메가스터디’라는 온라인 교육 회사였는데, 나는 첫 출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었다.
“앞으로 ‘메가스터디’에서 일하며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를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기여하겠습니다.” (2012년. 7월 20일)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만 스물 세살 어린 소녀가, 감히 ‘사교육 기업’에 첫 출근을 하고 ‘공교육 제도’ 전체를 뜯어고칠 생각을 했다니, 너무 이상적이다 못해 이상한 글이었다. 게다가 이런 이상한 이야기를 SNS에 당당하게 올렸다니!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그녀의 순수함이 갸륵하면서도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왔다.(현재의 ‘나’가 과거의 ‘나’를 바라보며 느끼는 부끄러움)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글을 삭제했다. 그리고 어렵게 입사했던 첫 직장에서 6개월도 채우지 못하고 퇴사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1mm도 좁히지 못한 채, 나의 첫 직장생활은 실패로 끝이 났다.
첫 직장에서 사회의 쓴 맛을 봐서 인지, 두 번째 직장에 대한 기대치는 0으로 수렴했다.
그 덕분에(?) 대다수 신입 직원들이 입사 1년이 채 되기 전에 퇴사하는 회사를 무려 8년씩이나 다닐 수 있었다.
“그래도 두 번째 직장은 8년씩이나 다녔으니, 1cm 정도는 진보한 거 아니에요?”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두 번째 직장생활도 실패했다. 그것도 첫 직장에서와 같은 이유로, 더 처절하게 실패했다.
영화는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상상의 세계를 꿈꾸게 만든다.
‘영화 같은 교육’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지만 현실은 영화가 아니었고, 나는 이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 죗값을 호되게 치러야 했다.
지나치게 이상적이었던 나머지 내 노력의 결과물이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기여할 것이라 굳게 믿었고, 그 믿음으로 너무 열심히 일했으며, 일 좀 열심히 했다고 ‘대표의 회사’를 ‘나의 회사’로 착각하는 우를 범했다. 월급쟁이 주제에, 너무 주제넘었다.
‘나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거야. 당장의 돈은 중요하지 않아. 이렇게 열심히 일하면 앞으로의 미래는 더 나아질 거야’ 근거 없는 낙관은 내 눈과 귀를 가렸다. 내 앞에 놓인 당장의 현실은 이상한 것 투성이고 매일 가난에 허덕였는데, ‘핑크빛 필터’ 에 가려져 현실의 문제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했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비현실적인 목표와 손에 잡히지 않는 이상에 매몰되어 있다 보니, 당장 코앞에 펼쳐질 내 미래에 대해 한 번도 고민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아무런 계획도, 준비도 없이 회사를 나왔다.
그렇게 두 번째 직장생활도 실패했다.
24살 때보다 32살 실패의 쓴 맛은 더 깊고 강렬했으며, 오랜 시간 나를 괴롭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