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나는 직장생활에 실패했다

'나는 직장생활에 실패했다' 4부

by 일재미
'실패'의 정의
- 일을 잘못하여 뜻한 대로 되지 아니하거나 그르침.

'실패하다'의 정의
- 어떤 일에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거나 완성하지 못하다.


나는 직장생활에 실패했다.

8년간의 직장생활을 ‘실패’라고 정의한 이유는 단순히 ‘직장을 잃었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이미 내 몸과 마음은 (미친)업무 강도를 버텨내며 너덜너덜해진 상태였기에, ‘권고사직’ 이 아니었다 해도 지금 쯤 자발적 사표를 내던졌을 것이다.

업무의 성취도 측면에서 ‘실패’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실패'라는 낙인으로 열심히 노력했던 과거를 후회하거나, 공들여 쌓아온 업적을 평가 절하하려는 의도는 없다. 나는 항상 ‘일 중심’의 삶을 살아왔으니, 내가 진행했던 프로젝트는 꾸준히 잘 되었다. 한번 관계를 맺은 고객사들과는 4-5년 이상 신뢰 관계를 이어갔고, 내 개인 매출은 회사 전체 매출의 상당수를 차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직장생활을 ‘실패’라고 정의한 이유는...

스스로 ‘멈춤’ 버튼을 누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텐데, 그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다닌 회사는 이미 3-4년 동안 성장이 멈춰 있었다. 더 이상 가능성을 실험해 볼 시간도 돈도 없었다. 그런데 나는 그 사실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그저 ‘회사가 힘들어서, 혹은 앞으로 힘들 예정이라서 연봉을 올려줄 수 없다’는 말에 ‘네, 알겠습니다’ 수긍했고, ‘회사가 힘드니 더 희생하고 헌신하라’는 채찍질에, 소처럼 더 열심히 일했을 뿐이다.


막상 퇴사를 하고 나니, ‘아… 조금만 '생각'이라는 걸 했더라면, 최소한 열심히 일하고 소진되거나, 열심히 일하고 가난해지는 결과는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머릿속에 'if'를 잔뜩 붙이며, 매일 같이 스스로 멈추지 못한 과거를 후회하고 또 자책했다.


하지만 '현재의 나'가 ‘과거의 나’를 소환하고 발목을 잡는다 한들, 달라지는 건 없었다.


나는 이 후회와 아쉬움을 ‘실패’로 정의했다.

깔끔하게 '실패'를 인정하고, 실패의 원인을 성찰함으로써 더 나은 삶을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실패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아니라, 다음번의 성공을 위해 반드시 겪어야 할 일이다. ”
- 에이미 에드먼슨, 하버드대학교 교수 -

8년이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평균 수명을 100세로 잡았을 때 내 인생은 아직 70년쯤 남아있다. 내 인생 전체로 보았을 때 10% 좀 넘은 시간을 실패했다고, 인생이 통째로 망가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내 직장생활의 ‘실패’를 제대로 직면하고, 그 원인을 분석함으로써 성공의 자양분으로 삼아보려고 한다. (내가 구태여 과거의 상처를 끄집어내서, 이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직장생활에 ‘실패’한 이유


첫째, 방향을 설정하지 않고 열심히 일만 했다.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 ‘이 회사가 미래에도 가치 있는 회사인가? 이 일이 미래에도 가치 있는 일인가?’에 대한 검증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물론 ‘가치’란 지극히 주관적인 영역이라, 아무도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요즘 같이 산업이 붕괴되고 회사의 수명이 급격히 짧아지는 세상에서는, 현재 내가 속한 산업/회사/직무가 ‘나에게 가치 있는 것인지’와 더불어, ‘미래에 가치 있는 것인지’도 따져보는 게 필요했다.


내가 속했던 B2B 기업 교육산업의 비즈니스 모델은 주로 임직원들을 교육장에 모아 놓고, 대면 교육을 진행하면서 수익을 창출했다.

이 사업은 상당히 ‘노동집약적’인 산업(투입되는 시간/노동력에 비례하여 매출 발생)이었다.

주식으로 예를 들자면, 상방(최대 매출, 1년간 최대로 벌 수 있는 돈)은 완전히 막혀 있고, 하방(최소 매출, 이 회사를 찾는 사람이 없어지면 매출은 0원)은 완전히 뚫려 있는 회사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2020년에는 예기치 못했던 ‘코로나’가 터졌다. 이는 내가 속한 산업의 붕괴를 의미했다. 임직원들이 한 곳에 모일 수 없으니, 실컷 준비했던 교육들이 줄줄이 취소되었다.

설상가상으로 IT 기술과 막대한 양의 교육 콘텐츠를 확보한 온라인 교육 플랫폼 회사(패스트 캠퍼스, 클래스 101, 탈잉 등)들이 기업교육 시장에 진출했고,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사실 코로나가 아니었어도, 회사의 미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고전적인 사업 모델로는 아무리 열심히 발버둥 쳐봐도 다람쥐 챗바퀴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코로나’로 산업 전반의 패러다임이 급격하게 변화되었고, 조직의 침몰 시기를 단축시켰을 뿐이다.


만약 1-2년 전에 아래의 네 가지 질문을 했더라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현재의 결과는 달라졌을까?

[산업의 성장성] 이 회사가 속한 산업군이 성장하는 산업에 해당되는가?
[회사의 성장성] 이 회사는 성장하는 회사인가? 혹은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성장은 없지만) 성장을 견인할 ‘기술’을 갖고 있는 회사인가?
[리더십/전략] 이 회사는 뛰어난 ‘경영진(리더)’과 ‘전략’이 있는 회사인가?
[대체 불가능 여부, 커리어 시장의 수요] 나의 업무는 미래에도 가치 있는 일(직무)인가?


빅데이터 전문가 송길영 부사장의 신작 <그냥 하지 말라>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 잘못된 방향으로 열심히 하면 결국 소진된다. 방향을 먼저 생각하고, 그 다음에 열심히 일해야 한다.
앞으로는 just Do It이 아니라, Think First를 해야 한다.”
- 송길영 -

열심히 하기 전에 ‘방향’에 대해 먼저 고민했더라면, 최소한 '열심히 일하고 하찮은 취급을 받거나, 소진되는 결과'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둘째,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삶을 살았다.


퇴사하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인데, 나는 ‘나의 것’을 지키는 것에 대한 집념이 매우 강한 사람이었다.

‘나의 일, 나의 회사, 나의 고객사, 나의 동료’

이 회사에는 '나의' 많은 소중한 것들이 존재했다.


나는 회사를 통해 관계를 맺어온 ‘나의’ 것들이 항상 온전한 상태를 유지하기를 원했다.

‘우리’의 관계에 작은 스크래치도 입히지 않으려고 항상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문제는 지나치게 최선을 다해서, ‘거절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언제부턴가 사람들의 부탁이나 요구에 거절을 하지 못했다.

거절을 하는 것이 공들여 쌓아온 '우리' 관계에 데미지를 입힐까봐, 부당한 상황에서도 최대한 친절하게 웃으며 ‘예스’를 외쳤다.

그 ‘예스’의 대가로 업무의 과부하가 오면, 내 시간과 에너지를 과도하게 투입하여 문제를 해결했다.

항상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고,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를 욕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욕’이란 자고로 사람과 사안을 비판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할 수 있는 행위인데, 나는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비판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내 직장생활의 유일한 성과지표는 ‘타인의 인정과 칭찬’이었고, 그렇게 나는 주변인의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살아가는데 익숙해졌다.


하지만, 정작 내가 꾸려온 그 견고한 세계 안에 ‘나’ 자신은 없었다.

타인의 '인정과 칭찬'에 갇혀서 서서히 ‘나’ 자신을 잃어갔다.

나의 생각, 나의 기대나 욕구, 나의 감정, 건강, 시간...이런 건 안중에도 없었다.

'나'에게 '나'는 항상 우선순위 맨 뒷 편에 있었다.


이 사실을 인지하고 깨닫는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회사를 다닐 때, 상사나 고객사/주변의 칭찬에 아이처럼 ‘으쓱’ 기분 좋아하기 전에, 그 성취가 정녕 내가 원하는 것이었는지에 대해 질문해봤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었더라면, 실패를 해도 지금처럼 ‘허무함’만 남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셋째, 나의 미래를 대비하지 않았다. 커리어 관리도 하지 않았다.


나는 회사에 다니는 동안 나의 미래에 대해 한 번도 고민한 적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이렇게 대책이 없었지?' 답답할 노릇이다. 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나는 항상, 매일, '시간의 빈곤'에 허덕였다.

여러 고객사의 업무를 동시다발적으로 처리하고, 약속된 데드라인을 지키기 위해서는 당장의 오늘 하루치 업무를 처내는 것도 버거웠다.

한 치 앞도 모르고, 하루살이처럼 살아가다 보니, 1년 뒤/3년 뒤/5년 뒤 미래에 대해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어쩌면 이건 명백한 핑계일지도 모른다.

매일 남들보다 오랜 시간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으면서, ‘나는 열심히 살고 있다’는 자아도취에 빠져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불확실한 미래를 회피하고, ‘나는 열심히 사니까, 뭘 하든 내가 마음만 먹으면 잘 될 거야’ 자기 위안 삼았던 것일 수도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정도의 야근과 밤샘은 비정상적인 업무 강도였고, 비정상적인 회사였다. 열심히 버텼다고 스스로를 칭찬해줄 게 아니라, ‘비정상’을 인지하고 ‘정상화’하는데 에너지를 쏟았어야 했다.)


막상 퇴사를 하고 나서 '이력서'나 ‘경력기술서’라는 것을 작성하다 보니, 내가 내세울 건 ‘열심히’ 밖에 없었다. 그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나만의 훈장’ 같은 것이었다.


구직 시장에는 수요 공급 법칙이 존재한다.

컨설팅사를 제외하고 내가 쌓아온 경력으로 지원할 수 있는 직무는 HRD 담당자였다. 이는 대기업의 인재개발팀(교육팀) 혹은 인사팀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막상 회사를 나오고 보니 채용 시장에서 HRD 담당자의 수요는 매우 적었다. (원래도 적었는데, 코로나 이후로 더 줄어드는 추세였다.) HRD 업무만 전문으로 하는 담당자를 뽑는 회사도 거의 없었고(대부분 인사/노무/채용 겸직), 뽑더라도 TO는 항상 1명이었다.


그런데 그 비좁은 바늘구멍을 뚫고자 하는 공급자(지원자)들은 매우 많았다. 코로나로 인해 조직 안의 HRD 부서가 통폐합되면서, 혹은 교육이 취소되고 시간적 여유가 많아지면서, 쟁쟁한 기업의 HRD 담당자들이 이직을 시도했다. 흡사 수요공급의 불균형이 심각하고,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 시장 같았다.


게다가 대부분의 기업은 그 조직에서 당장 필요한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을 뽑기를 원했다.

나는 다양한 조직에서 수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최상의 성과를 만들어냈다고 자부했지만, 정작 내가 가진 경력은 ‘기업이 당장 필요로 하는 조건’에 해당되지 않았다.

노무사 자격증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인사/채용 업무 경험이 있었던 것도 아니며, 영상 편집 스킬을 갖추고 있거나, 영어를 유창하게 잘하는 편도 아니었다.


나는 회사를 다니는 동안 나의 미래를 대비하지 않았고, 커리어 패스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았다. 고객사에서 요청하는 일이 곧 나의 일이라는 생각으로, 주어진 일에만 끌려 다녔을 뿐이다.

이 문제를 조금 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좋았으려만, 퇴사 전에는 이력서/경력기술서 한번을 써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보니,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의 커리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전혀 알지 못한 채, 그냥 무작정 열심히 일만 했다.

결국 뒤늦게 구직 시장에 나왔을때, 시장의 필요(Needs)와 내가 가진 경력(Career) 간의 핀트가 어긋났다.


만일 시계추를 돌려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의 커리어 비전을 세우고, 커리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과제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것이다. 정기적으로 채용 사이트에 들어가서 구직 시장의 동향을 살펴보고, 나의 가치가 시장 내에서 어느정도인지 체크하고 객관화하는 활동들을 이어갈 것이다. 채용 공고 JD(Job description, 직무 기술서)에 기재된 역량을 확인하고, 회사의 니즈(Needs)와 나의 경력(Career) 간의 미스 매치를 최소화하는 노력들을 꾸준히 지속해갈 것이다.




위에서 기술한 '직장생활에 실패한 원인' 세 가지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무작정 열심히 일하기 전에, 방향을 생각해보자. 그 방향은 ‘나에게 가치 있는 일’과 ‘미래에 가치 있는 일’의 접점에 있는 일이 좋다.
둘째,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삶을 살지 말자. 남들의 인정과 칭찬보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추구하는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주체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셋째, 미래를 대비하자. 내 미래의 커리어 패스를 그려보고, 나의 커리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과제/활동에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한다.


글을 쓰기 전까지는 퇴사 과정에서 느꼈던 여러 감정, 생각들이 깨진 유리조각처럼 내 안에 흩어져서 시도때도 없이 나를 찔러댔고, 나는 무방비 상태로 그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그런데 흩어져 있던 유리조각들을 모아서 맞추고, 나의 언어로 정돈해가는 과정에서 생각이 명료하게 정리되었다. 그렇게 얽히고설켜있던 감정과 생각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내고 나니, 다시 일어설 ‘희망’이 생겼다.

공교롭게도 나는 나의 실패를 인정함으로써,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슬슬, 구석진 골방에서 나갈 채비를 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래, 나에게 다시 시작할 기회가 생긴 거야!’


왠지 다음번 직장생활은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동안 미처 용기가 없어서 제대로 살피지 못했던 ‘원티드’(구직사이트) 어플을 열었다.

여러 회사들의 채용 공고를 뒤적이며, 한참을 머물렀다.


‘다시, 시작해볼까?’


퇴사한 지 5개월 만에 일어난 마음의 '변화'였다.

keyword
이전 03화[3] 어느 이상주의자의 비극적 결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