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자기 객관화 : 나는 모르고 상대만 아는 비밀

'나는 직장생활에 실패했다' 7화

by 일재미
‘우선 바쁘신 와중에도 지난 면접 때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타깝게도 지원하신 Lunit <조직문화/교육 담당자>의 인터뷰 결과 합격 소식을 전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면접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저희가 불편을 드리지는 않았는지 여러모로 마음이 쓰입니다. 귀하께서 보유하신 뛰어난 역량을 앞으로도 더 넓게 펼치실 것으로 믿으며, 더 발전하신 모습으로 저희 루닛과 추후에도 좋은 인연으로 다시 만나 뵐 날이 오길 바랍니다.’

나는 면접을 본지 일주일 만에 면접 결과를 통보받았다.

이 회사는 ‘탈락’을 알리는 마지막 인사조차도 따뜻하고 친절했다.

우선 결과를 궁금해하는 친구들에게 꽤 담담하게 ‘탈락’ 소식을 알렸다.

친구들은 내가 괜찮은 척했지만 괜찮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온 마음을 다해 위로해주었다.


‘괜찮아, 더 좋은 곳으로 갈 거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친구들에게 너무 고마웠지만, 위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니라, 객관적인 피드백을 통한 ‘현실 직시’였다.


나는 ‘탈락’ 메일을 받고,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만약 면접이 끝난 직후에 ‘이번 면접 망쳤어. 떨어질 것 같아’ 예상했다면, 별 문제 되지 않을 일이었다.

그냥 나의 준비가 부족했고,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했다고 인정하면 될 노릇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면접을 준비했고, 면접 질문에도 막힘없이 답변했다. 마스크에 가려져서 대표님(면접관)의 표정을 볼 순 없었지만, 특별히 ‘아, 망했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결과는 ‘탈락’이었다.

나의 기대와 예측, 현실의 결과가 완전히 불일치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분명 회사 대표님(면접관)의 눈은 지원자인 ‘나’보다 훨씬 정확할 것이고, 내가 탈락한 건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다만 내가 그 이유를 모른다는 것이다.

나는 핀트가 어긋난 지점이 어디였는지, 어떤 점이 문제였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나의 어떤 점이 이 회사와 맞지 않았던 것일까?’

‘나는 이 회사가 보기에 어떤 역량이 부족한 사람이었을까?’

‘나의 어떤 답변이 탈락을 결정짓는 근거가 되었을까?’

내가 모르는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 이 ‘숨겨진 비밀’을 밝혀내지 못하면,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 되풀이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나는 이 비밀을 풀기 위해, 가장 빠른 비행기를 잡아서 무작정 제주도로 떠났다.



사람은 누구나 ‘나’는 모르고 ‘상대’만 아는 ‘맹점 영역(Blind Spot)’을 갖고 있다.

맹점 영역이 넓은 사람들은 ‘나’의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춰지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자신의 문제나 결점을 ‘인지’ 조차 못하기에, 나은 모습으로 ‘개선’ 할 수 없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자기인식력이 낮다’고 말한다.


‘숨겨진 비밀’이란 나의 맹점 영역(Blind Spot)을 의미했다.

‘탈락’이라는 결과가 나에게 어떤 시그널을 보내는 것 같았다.

기대와 결과가 불일치하는 상황이 재발되지 않기 위해선, 다른 사람들에게 비춰지는 ‘나’의 모습을 객관화하고, 정면으로 마주해야만 했다.


나는 익숙한 공간을 떠나, 제주도에 낯선 펜션에서 ‘나’를 분해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나’는 누구인지, 내가 가진 강점이나 취약점은 무엇인지,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사람으로 비춰질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하기를 반복했다.


내 힘으로 온전히 ‘나’를 정의할 수 없을 때에는, 성격진단 검사를 활용했다.

MBTI 진단, 버크만 진단, 갤럽 강점진단 등 공신력 있는 기관의 성격 검사 결과보고서는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매우 상세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렇게 여러 진단 결과보고서의 내용을 종합하여 고유의 언어로 ‘나’를 정의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며칠간 읽고, 걷고, 생각하고, 쓰는 행위를 반복했다. 하루 7시간의 수면 시간과 1시간의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10시간씩 오로지 나를 이해하고 알아가는데 온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했다.

나는 나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나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모든 것이 새로웠다.


내가 어떤 강점과 역량을 가진 사람인지, 어떤 취약점을 가진 사람인지, 어떤 상황에서 동기부여되는지, 표준편차를 기준으로 다른 이들과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차이점은 무엇인지, 어떤 일이나 행위를 할 때 성취감을 느끼는지, 어떤 직무를 수행할 때 가장 적성에 잘 맞는지, 과거에 내가 해왔던 ‘일’이 현재의 ‘나’를 형성하는데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평소 내가 생각했던 ‘나’의 모습과, 함께 일했던 주변인의 ‘피드백’, 성격 진단 결과보고서에 담긴 ‘나’의 모습을 하나씩 손으로 적었다.


다 적은 후에는, 노트에 적힌 내용을 쭉 다시 읽어보고 중복되는 내용이나 단어들을 한 곳에 모았다.

비슷한 내용끼리 분류가 끝나면, 손으로 적은 내용을 엑셀에 타이핑했다.

나.JPG '나'의 특성을 손으로 적고, 엑셀에 타이핑하여 유사한 것들끼리 연결하고 통합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렇게 흩어져 있던 퍼즐 조각들을 한 데 모아,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하고 나니,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모호했던 것들을 명료하게 밝히고 언어로 정의하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나’라는 사람의 특성과 이 회사가 요구하는 역량 간에 미스매치가 발생되는 지점이 보였다.

‘루닛’이라는 회사는 모두에게 좋은 회사이긴 했지만, 나는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루닛’의 조직문화/HRD 업무는 여러 가지 면을 고려해봤을 때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고,

나보다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 그 자리를 채우는 게 옳았다.


도망치듯 떠나왔던 제주도에서 지난날의 선택, 그 선택들이 모여서 완성된 현재의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서른세 살 여름, 너무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나이였다.


나는 내 힘으로 ‘나’를 마주하고, ‘나’를 성찰하고, ‘나’를 발견하는 시간을 갖고 난 후,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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