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통이 터지고, 억울해도 살아야 했다.
괴롭고, 살기 싫어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삶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견디기로 했다.
그 무렵, <인생 커리어를 만난 인연의 시작>
에피소드에 등장했던
창업기업가 사관학교에서 만난 한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오랜만에 차 한잔 할래요?”
그는 예전에도 몇 번 안부를 물어왔지만,
그땐 창업 초반이라 정신이 없어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이번엔 달랐다.
무엇이든 기회를 만들어야 했다.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틈이 보였다.
마침 그가 공동창업한 회사서 팀장을 구하고 있었다.
“기본급은 많지 않지만, 인센티브 구조가 탄탄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건을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그저 살아야 했다.
오랜 불안정한 시간을 끝내고,
이제는 안정을 택해야 했다.
그렇게 나는 30명 남짓한 직원이 일하는
마케팅 대행사에서 새 출발을 하게 되었다.
내 역할은 마케팅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일이었다.
팀장 직함이었지만, 팀원은 없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무엇이든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예전의 나였다면,
이런 상황에서 자존심이 상하고
불만이 가득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창업 실패를 겪은 뒤, 나는 알았다.
내가 바뀌어야 상황이 바뀐다는 것.
그래서 이번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맞서보기로 했다.
회사에 출근해 보니, 미묘한 텃세가 있었다.
누군가는 나를 ‘낙하산’이라 생각했고,
누군가는 ‘왜 저 사람이 팀장이지?’ 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나는 애써 모른 척했다.
그들의 입장도 이해됐다.
그동안 성과를 쌓은 직원들에게는
창업 경력 하나로 들어온
내가 ‘팀장’ 직함을 달았으니 불편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불편한 시선을 견디며 일했다.
다시, 바닥에서 올라와야 했다.
창업 이후, 나는 나를 냉정히 분석했다.
욱하는 성격, 무조건 들이받는 스타일,
마케팅과 경영에 대한 얕은 지식,
커뮤니케이션의 미숙함.
창업이 실패한 이유는 결국 나 자신에게 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달라지기로 했고,
‘배우는 자리’라면 무엇이든 했다.
업무가 주어지지 않으면 내가 직접 만들었다.
정부지원사업 사이트를 찾아 제안서를 쓰고,
혼자서라도 실적을 만들어갔다.
30대 초중반이 돼서야
나는 비로소 신입처럼 배우기 시작했다.
기획은 익숙했지만, 행정은 서툴렀다.
결재, 보고, 협의—
모든 과정이 낯설고 느렸다.
그래도 버텼다.
새벽 6시에 출근했고, 밤늦게까지 야근했다.
창업 때도 오래 일하는 건 익숙했기에,
이번에도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기회가 왔다.
닥치는 대로 하다 보니
회사에서 아무도 맡고 싶어 하지 않는 프로젝트들이
자연스럽게 내게 몰리기 시작했다.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일—
그건 내 DNA에 맞았다.
힘들지만 재미있었다.
그렇게 프로젝트를 하나둘 맡으며
처음으로 내 팀원이 생겼다.
비로소 ‘팀장’이라는 말의 무게가,
현실이 되었다.
직급은 팀장이었지만,
경험은 신입이었다.
신입 같은 경력직이 살아남는 방법은 하나였다.
부족함을 인정하고, 신입처럼 빠르게 배우며,
성과로 증명해 더 성장하는 것.
그렇게 나의 신입 같은 경력직 회사생활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