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속 신비롭게 숨어 있는 다양한 불교 용어들
불교는 예부터 우리의 유구한 역사와 빛나는 전통 속에 숨결을 함께 해 온 종교 중 하나다.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다양한 불교 문화재와 불교의 계승 의식 등은 우리 역사 근간에 불교 정신과 문화가 만연히 녹아 있음을 반증한다. 그리고 불교 용어 또한 우리의 일상생활 속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 일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면서도 무의식 속에 자주 사용될 만큼 삶 속 자주 사용되는 불교 용어를 살펴보기로 하자.
조폭 영화 속 등장하는 ‘건달’은 불교 용어로 어원 ‘건달바(간다르바)’를 가진 고대 신화 속 등장하는 신의 이름이다. 이 신은 병을 치료하거나 신령한 물을 담당하기도 하며, 향기를 먹고 살아가는 ‘음악의 신’이다. ‘건달’이라는 단어가 표상하는 불교적 의식은 이처럼 뜻 깊은 것이지만, 근대사회에서는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 등으로 칭해지거나 ‘불량배’, ‘난봉꾼’ 등의 이미지로까지 변질되었다.
야단법석은 매우 시끄럽거나 어수선할 때 자주 사용되는 단어 중 하나다. ‘야단’이란 야외에 세운 단이란 뜻이며, ‘법석’이란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를 뜻한다. 야단법석은 법당 안팎에 자리를 깔 정도의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을 뜻하며, 그만큼 시끌벅적하고 어수선한 상황을 가리키는 불교 용어였다.
강당은 인도에서 설법을 강의하던 장소를 뜻하는 불교용어다. 현대에 들어서도 학교, 회사, 관공서 등에서 많은 사람들이 한 군데 모여 개최식이나 강연 등을 들을 수 있는 장소를 뜻하는데, 불교 의식이 우리 사회에 얼마만큼 반영돼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단어다.
불교에서 ‘득도’란 오묘한 이치나 도를 깨닫게 되는 의식이며 불교의 상징적인 의미 중 하나다. 불교에서 ‘주인공’이란 바로 이 같은 득도를 한 인물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다.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은 세상의 좌절에도 쉽게 꺾이지 않고 본인의 의지를 관철하는 경우가 그려지는데, 이는 불교에서도 공통된 점으로 외부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참된 형상의 자아를 의미한다.
흔히 경기나 시험에서 좋은 성적이나 기록을 내지 못해 낙오되는 상황을 ‘탈락’으로 칭한다. 불교에서 탈락은 ‘벗어버린다’라는 의미를 함축한 단어다. 본래의 의미는 집착에서 벗어나 마침내 몸과 마음이 해탈하는 경지에 이르는 것을 의미하는 뜻이지만, 현대에 와서는 ‘낙오’의 의미가 점철돼 사용되고 있다.
현대 국어사전에 따르면 ‘살림’은 한집안을 이루어 살아가는 일, 또는 살아가는 형편이나 정도를 뜻하는 단어다. 이러한 ‘살림’의 유래는 바로 불교 용어를 뜻하는 ‘절의 재산을 관리하는 일’의 ‘산림’에서 유래됐다. 불교에서는 절에서 살림을 맡은 스님을 원주로 칭한다. 또한 이러한 원주가 맡은 책임이나 임무를 중대하고 귀하게 여긴다.
점심은 간단하게 먹는 중간 식사를 가리키는 말로 일상 속 보편화되어 있는 단어다. 점심을 가리키는 ‘중식’은 덕산 선감 스님 일화에서도 나오며, 그 일화 중에 점심이 사용된 의미는 “어느 마음에 점을 찍겠느냐”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점심은 인도 불교에서부터 중국을 거쳐가면서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의식을 의미하며 불교 내에서 자리 잡고 있다.
이야기의 첫머리나 관심을 두어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또는 이야기할 만한 것을 일컫는 화두. 이러한 화두는 본래 불교의 근본진리를 묻는 물음에 답하는 선사들의 대답인 불교 용어 중 하나다. 혹은 부처의 뜻으로 제자를 깨달음으로 이끌거나,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불교 교리에 가까운 초월적 수행을 뜻하기도 한다.
죽은 사람에 대한 조의를 뜻하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도 불교 의식에서부터 시작된 용어 중 하나다. 불교에서는 죽은 사람이 가는 곳을 ‘명부’로 칭한다. 널리는 타계, 황천국, 죽음 등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에 ‘명복을 빕니다’는 죽은 사람이 명부에서 염라대왕으로부터 복되거나 참된 심판을 받아 비로소 극락에 가는 것을 염원한다는 말로 사용된다.
찰나는 불교에서 시간의 최소 단위를 나타내는 말로 사용된다. 산스크리트의 ‘크샤나’, 즉 순간의 음역을 뜻하며 ‘아비달마대비바사론’ 권 136에도 표기돼 있다. 120의 찰나를 1달 찰나로 표하며, 60달 찰나를 1납박 등 시간으로 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1찰나는 75분의 1초인 약 0.013초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1찰나에 생겼다 멸한다고 보고 있어 이를 ‘찰나생멸’, ‘찰나무상’으로 표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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