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배려석', 배려는 의무가 아니잖아요
직장인 A 씨는 며칠 전 퇴근길에 황당한 일을 겪었다. 퇴근시간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었지만 금요일이라 지하철은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손잡이에 의지한 채 몇 개 역이나 서서 갔을까, 드디어 A 씨 앞에 빈자리가 생겼다. 반가운 마음에 냉큼 빈자리에 앉았는데 자세히 보니 의자가 분홍색이었다. 다름 아닌 '임산부 배려석'이었던 것이다.
A 씨는 분홍색으로 도배된 임산부 배려석을 보며 생각했다. 어차피 저출산 시대라 임산부보다 비임산부가 더 많이 탈 텐데 굳이 왜 세금을 들여 분홍색으로 칠해놓았을까, 그리고 출퇴근하는 직장인들도 지치고 힘든데 임산부 배려석을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한참동안 생각에 빠져있던 A 씨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다다음 역에 도착했을 때였다. 지하철이 멈추고 문이 열리자 한 부부가 지하철에 탑승했고 그들은 A 씨 앞에 나란히 섰다. 2~3분 정도 지났을까? A 씨 앞에 서있던 남자, 그러니까 부부 중 남편이 A 씨의 눈앞에 대고 분홍색 배지를 흔들었다.
남자의 행동에 A 씨는 기분이 나빠졌다. 아내가 임산부이니 자리를 양보해달라고 말을 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A 씨에게 양보를 요구하면 될 텐데, 왜 하필 자신의 눈앞에서 임산부 배지를 흔드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화가 난 A 씨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여성의 배를 보았다. 자세히 보니 배도 별로 나오지 않은 것 같았다. 결국 A 씨는 부부를 모른척하고 끝까지 일어서지 않았다. 앞에 서 있던 남성도 임산부 배지만 흔들더니, 다섯 정거장 후에 하차했다.
부부가 내리고 A 씨는 생각에 잠겼다. 배려는 하는 사람의 마음에 달린 것이고 의무도 아닌데, 왜 남자가 자신의 눈앞에서 임산부 배지를 흔든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직장인들도 말할 수 없을 만큼 힘들고 피곤한데, 그 시간에 양보까지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내가 임산부여서 힘들 거라고 생각되면 차를 사서 태우고 다니면 될 것이지 굳이 왜 지하철을 타는지, 차도 못 몰고 다닐 정도의 사람이 왜 임신을 한 것인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참다못한 A 씨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자신이 겪은 어이없는 일을 공감 받고, 위로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임산부 배려석은 항상 비워두는 게 맞다"라며 "임산부가 지하철에 탔을 때, 임산부 배려석이 비워져 있어야 임산부가 그 자리에 앉을 수 있는데 누군가가 앉아 있으면 어쩔 수 없이 다른 좌석에 앉아야 한다"라고 A 씨를 나무랐다. 화가 난 A 씨는 "어이가 없다"라며 "그동안 아줌마, 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 학생들 모두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있는 거 봤는데 착한 척하지 말라"고 비난했다.
정말 '임산부 배려석'은 항상 비워두어야 하는 자리일까? 아니면 A 씨의 말처럼 배려는 의무가 아니므로 앉고 싶으면 앉아도 되는 자리일까? 다음에 또 이런 일을 겪으면 A 씨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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