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이 아닌 웰 다잉(Well-dying)에 대한 이야기들
항상 미디어에서 주목하는 것은 ‘청춘’이다. 노년은 상대적으로 그 중심에서 밀려나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한창때의 반짝임보다 스러져가는 은은함에 주목하는 작품들도 생각보다 많다. 노년들의 우정에서부터 사랑, 자아 찾기, 또 노인들의 성생활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도 상당히 넓은 편이다. ‘웰빙’에 이어 ‘웰 다잉’에 더욱 많은 관심이 쏠리는 요즘, 노년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들을 한 번 감상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노년의 이야기를 뭉클하게 그려낸 작품 열 편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지난 2016년, tvN에서 방영된 드라마였던 <디어 마이 프렌즈>의 캐치프레이즈는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살아있다”이다.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한, 나이에 상관없이 ‘청춘’이라고 외치는 노년의 이야기를 담아낸 드라마인 셈이다. 해당 작품에는 김혜자, 윤여정, 나문희, 고두심, 박원숙, 주현, 신구 등 걸출한 장년층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노희경 작가 특유의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으로 노인들의 우정과 사랑, 삶에 대한 애환을 섬세하게 담아낸 <디어 마이 프렌즈>는 그 작품성을 인정받아 제53회 백상예술대상에서 TV작품상과 TV극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유명 만화가 강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주연으로는 거의 귀가 먼 욕쟁이 할아버지 김만석과, 치매 할머니 조순이, 그리고 그녀를 보살피는 주차장 관리인 장군봉과 폐품 팔이로 생계를 유지하는 송씨 할머니가 등장한다. 배우 이순재, 김수미, 송재호, 윤소정이 주연 4인을 맡아 노년의 뭉클한 인연에 대해 보여준다. 영화의 흥행 이후 동명의 드라마가 방영되기도 했으며, 현재는 연극으로도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는 자신이 시간 이동 능력을 갖게 되었다고 믿는 치매 노인 ‘혜자’의 이야기를 그린 이야기로, 먹먹한 감동과 더불어 놀라운 반전을 선사하면서 시청자들의 찬사를 받았다. 특히 <눈이 부시게>의 연출을 맡은 김석윤 감독은 “<눈이 부시게>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에 관한 이야기”라며 “노년과 청춘 사이엔 나이 듦과 아직 나이 들지 않음 이외엔 다를 것이 없음을 얘기하고 싶었다”라고 종영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영화 <장수상회>는 <태극기 휘날리며>로 유명한 강제규 감독이 연출을 맡은 황혼 로맨스이다. 해당 작품은 급한 성질을 가진 괴짜 노인 성칠이 앞집에 이사 온 꽃집을 운영하는 할머니 금님을 만나면서 다시 한 번 설렘을 느끼고, 둘의 연애를 위해 온 동네 사람들이 함께 나선다는 줄거리를 담고 있다. 성칠 역은 배우 박근형이, 금님 역은 배우 윤여정이 맡아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으며, 지나친 자극이나 무리수 없이 진행되는 잔잔한 스토리와 더불어 뜻밖의 반전까지 어우러지면서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영화 <계춘할망>은 10여 년 만에 잃어버린 손녀를 찾은 해녀 계춘의 눈물겨운 손녀 사랑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해녀 계춘 역할은 윤여정이, 속을 알 수 없는 불량손녀 역할은 김고은이 맡아 관객들에게 뭉클함을 안겨 주었다. 영화의 제작진들은 계춘과 더불어 제주도가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고 밝혔다. 할머니와 손녀의 일상이 펼쳐지는 아름답고도 맑은 공간인 제주도가 또 다른 이야기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다.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KBS 2TV <인간극장>에서 방영되었던 조병만 할아버지와 강계열 할머니 부부의 이야기를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2014년도에 개봉한 해당 작품은 총 3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여, 독립영화로서는 드물게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80세가 넘어서도 마치 어린 연인들처럼 변치 않는 사랑을 간직한 노부부의 모습은 보는 이들을 많이도 울고 웃게 만들었다.
지난 2018년도에 개봉한 영화 <비밥바룰라>는 남자들의 노년에 포커스를 맞춘 작품이다. 평균 나이 일흔, 지병 하나는 기본인 네 명의 할아버지가 등장하여 그간 가장 노릇을 하느라 미뤄왔던 자신들의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이루어 나간다는 설정이다. 박인환, 신구, 임현식, 윤덕용까지 네 명의 배우가 등장하여 ‘시니어벤져스’의 조합을 이루었다. 이들 네 배우의 연기는 ‘노년에게도 여전히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라는 내용을 유쾌하면서도 감동적으로 전달해준다.
2002년도에 개봉한 영화 <죽어도 좋아>는 노인들의 성생활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다큐 영화로, 그 수위가 상당히 높아 논란이 되었던 작품이다. 주인공은 박치규 할아버지와 이순예 할머니로, 두 사람은 진짜 연인 사이이며 영화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은 픽션이 아닌 실제 상황이다. 두 사람은 각자의 배우자와 사별한 뒤 새롭게 찾은 사랑으로, 노년의 사랑도 청춘의 사랑만큼이나 뜨겁고 정열적일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영화 <워낭소리> 역시 논픽션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특이한 것은 팔순이 넘은 시골 할아버지와 더불어 소 한 마리가 영화의 주연을 맡았다는 것이다. <워낭소리>에 등장하는 소는 그냥 소가 아니다. 무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최원균 할아버지의 삶의 족적을 함께하며 동고동락해온 소이다. 특히 늙은 소와 헤어지는 장면에서 눈물을 쏟는 팔순 노인의 모습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말할 수 없이 찡하게 만든다.
다큐멘터리 영화 <칠곡 가시나>들은 경북 칠곡군에 사는 평균 나이 86세의 할머니들이 그토록 염원했던 ‘글공부’를 깨우쳐 나가는 과정을 재미나게 담아냈다. <칠곡 가시나>들은 노인을 주인공으로 한 다른 영화들처럼 뭉클하거나 찡한 감동을 주는 데에 집중하지 않는다. 스크린 속의 할머니들은 시종일관 들뜨고, 즐겁고, 설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노인도 매일매일 새로운 꿈을 꾸는 존재임을 보는 이들에게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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