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나의 교육활동에 대해 소개할 일이 좀 있었다. '저는 이런 교육을 하고 있어요.' 소개하기 위해 다양한 자료를 적고 읽고 말했고, 자주 핸드폰 앨범을 뒤져 아이들과 미자의 사진을 찾았다. 어느덧 오랜 시간이 지난 듯한 3월 첫 만남의 사진과, 카페에서 가족처럼 피자를 쩝쩝 나눠먹던 사진, 친할머니 집에라도 온 것처럼 미자 집 툇마루에 털푸덕 걸터앉아 노가리를 까던 사진까지. 여러 사진을 구경하며 아이들이 귀여워서, 웃는 미자가 예뻐서 피식 웃었다
사진 밑에 '동네손주'라는 단어를 기재하며 고민해 본다.
미자에게 아이들은 어떤 존재일까, 미자와 아이들은 어떤 관계성을 가질까. 그것을 단어로 소개한다면 어떤 단어가 적합할까.
순간 떠올라서 이름 붙인 '동네손주'말고 우리의 관계성에 대해 보다 친밀하고 근접하게 설명할 단어가 있을까 고민하며 여러 단어를 떠올리고 조합해 본다.
태리가 물었다.
"할머니는 언제 뵈러 가요?"
어버이날 기념으로 미자네 집 툇마루에 선물을 가득 올려놓고 온 지 이 주가 채 지나지 않을 때였다. 아이들은 미자네 집에 갔다 오고 꼭 이 주쯤 지나면 묻는다. '할머니네 언제 가요?' 아이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자주 미자 할머니를 떠올린다.
나는 운전하다가, 새벽에 자다 깨면, 밥을 먹다 말고 이따금씩 미자를 떠올린다. 너무 걱정하지도 너무 무심하지도 않은 선을 찾아 미자를 궁금해한다.
아이들이 "할머니."라고 하면 나는 '어떤 할머니?'라고 되묻지 않는다. 우리 반 아이들에게 '할머니'란 단어는 언덕 높은 곳, 맑은 하늘을 액자 삼아 걸어둔 집에서 텃밭을 가꾸며 살아가는 미자를 지칭하는 데 쓰이기 때문이다.
우리 넷(아이들 3명과 나)이 무언가를 할 때, 가령 교실에서 과자를 먹으면서 영화를 볼 때 나는 이런 걸 미자와 함께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미자 할머니랑도 영화 보러 가면 좋겠다." 하면 아이들이 금세 또 신나서 조잘조잘 이야기를 한다.
"서충주에서 할머니랑 영화 봐요."
"할머니가 재밌으실만한 게 뭘까?"
"더빙으로 보시는 게 좋겠지?"
우리는 금세 다섯의 나들이를 상상하며 과자를 쩝쩝 먹는다.
미자 할머니를 만나면 아이들은 영락없는 손주들이 된다. 조잘조잘 쉴새없이 떠들고, 배 아파서 학원 못 간다고 앙탈 부리고, 선생님이 미자 할머니 앞에서는 안 혼낼 거 아니까 맘껏 하고 싶은대로 한다. 미자는 아이들이 뭘 해도 마냥 아이들을 이뻐해주신다. 뭘 해도 "아이구 예뻐 예뻐." 쓰다듬고 등을 도닥이고 사랑 가득한 눈빛을 보낸다. 아이들은 미자의 이유없이 쏟아주는 예쁨을 받으며 한껏 어리광을 부리다 돌아온다.
글을 쓰다가 아이들의 생각이 궁금해져서 카톡을 했다.
'너네는 동네손주 할머니를 만나면 뭐가 좋았어?'
태리가 칼답을 한다.
'효도를 하는 것 같아서 좋았어요.'
이따금씩 서로를 떠올리고, 자주 안부를 주고받고, 만나면 반갑고, 툇마루 정도는 집주인 없이도 턱 하니 걸터앉아 동네 사람들이 누구냐고 물으면 "할머니네 놀러 왔어요."라고 말할 정도의 사이, 맛있는 걸 먹으며 같이 먹을 날을 상상하고, 당신의 튼 입술과 거칠어진 손등을 떠올리며 립밤과 핸드크림을 선물하고, 당신을 기쁘게 하면 효도를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은.
고민해 봤더니 우리의 관계성을 나타낼 가장 근접한 말은 우리 동네에 사는 나의 손주, '동네손주'가 맞았다.
나의 천재적인 작명 센스에 감탄하며 글을 마친다.
*초등학교 학생자치 '동네손주' 프로그램을 통해 미자 할머니를 주기적으로 찾아뵙고 있습니다.
**동네에 사는 손주, 동네에 사는 할머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