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미피(miffy)

선 하나로 마음을 사로잡다: 미피, 단순함의 힘

by 일상여행가


이 연재는 '사랑받는 캐릭터의 비밀'을 찾는 여정이다. 단순한 귀여움이 아닌, 철학과 브랜드 전략을 품은 캐릭터는 어떻게 살아남는가? 이번 글에서는 그 세 번째 사례로 ‘미피(Miffy)’를 다룬다. 단순한 선과 색으로 구성된 이 캐릭터는 어떻게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무민이 철학을 담고, 삐삐가 급진적 세계관을 제시했다면, 미피는 "단순함의 힘"을 증명한 존재다. 복잡한 설명 없이도 마음을 움직이는 캐릭터. 이번 글의 키워드는 "선 하나로 마음을 사로잡다"이다.



1. 캐릭터의 탄생


미피(Miffy)의 원작 이름은 ‘나인체(Nijntje)’로, 1955년 네덜란드의 그림책 작가 딕 브루너(Dick Bruna)에 의해 탄생했다. 그는 휴양지에서 아들 시에르크에게 작은 토끼 이야기를 들려주던 중, 그 캐릭터를 시각적으로 구현하기로 결심했고, 바지를 입히는 대신 드레스를 입혀 여자아이로 설정했다. [1]


브루너는 자신의 아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만든 이야기를 바탕으로, 단 한 줄, 단 한 색만으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그림책을 구상했다. 미피는 귀엽고 순진한 토끼이지만, 그보다 더 주목할 것은 브루너가 추구한 디자인 철학이다. 그는 불필요한 선을 없애고, 최대한 단순한 형태로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했다. 그것은 단지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춘 시도가 아니라, 시각 언어로 감정을 직관적으로 전달하려는 철학적 시도였다.


“나는 독자에게 최대한 많은 공간을 주고 싶다. 내 그림은 이야기의 절반만 말하고, 나머지는 보는 이가 채워 넣는다.” – 딕 브루너[2]


DickBruna_Studio_Brunch.jpg 딕 브루너는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진실에 가깝다”는 철학 아래, 투명한 유리에 미피를 그리고 오렸습니다



2. 콘텐츠로의 확장


디자인 업계에서는 미피를 하나의 '미니멀리즘 브랜드'로 바라본다. 파스텔 색감, 굵고 단순한 선, 넉넉한 여백 감이 미피를 단순한 아동 콘텐츠를 넘어 강력한 시각 언어로 탈바꿈시켰다.


미피는 그림책을 넘어 애니메이션, 전시, 굿즈, 캠페인까지 확장되며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캐릭터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도 스타일을 결코 타협하지 않았으며, 브랜드가 확장될수록 오히려 정체성이 더욱 선명해졌다.


TV 애니메이션도 그 철학을 따랐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방영된 《Miffy and Friends》는 네덜란드 KRO 채널을 시작으로 여러 국가에서 방송되었으며, 스톱모션 기법과 내레이션 중심의 구성으로 미피 특유의 감정 여백을 고스란히 옮겼다. 2015년부터 방영된 《Miffy's Adventures Big and Small》은 CG 애니메이션 형식으로 제작되었고, 영국, 미국, 한국 등 여러 국가에서 방송되었다. [3]


136b01c3a0-1600x900.jpg 《Miffy's Adventures Big and Small》 미피 특유의 단순함과 여백의 미학을 그대로 담은 CG 애니메이션.


스타일을 유지한 채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도 성공적이었다. 2022년 Tommy Hilfiger 협업에서는 레드, 화이트, 블루의 클래식한 컬러에 미피 실루엣을 더해 ‘현대적 프레피(preppy)’ 스타일을 제안했고, 2023년 Mulberry 설날 컬렉션에서는 고급 가죽 소재에 미피를 절제된 방식으로 녹여냈다. Starbucks Singapore 협업에서는 텀블러, 머그컵, 파우치, 바리스타 미피 인형 등 다양한 일상 제품에서 단순한 선과 색, 조용한 표정을 일관되게 유지하며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더욱 강화했다.


Starbucks Singapore × Miffy Spring 컬렉션



3. 일상 속의 미피


미피는 단순함 속에서 위로를 주는 캐릭터다. 어린이뿐 아니라,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어른들에게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상징이 된다.


하지만 문화권에 따라 미피의 수용 방식은 달랐다. 일본에서는 1970년대부터 미피가 소개되어, 조용한 감정 표현을 선호하는 문화와 미피의 절제된 표정이 잘 맞아떨어졌다. 반면 한국에서는 뽀로로, 타요, 카카오프렌즈처럼 활발하고 표현이 풍부한 캐릭터들이 대중적으로 더 큰 인기를 끌었다.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미피가 다시 새로운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다. 특히 인기 있었던 ‘석굴암 미피’에 이어, 2025년 초 경주 황리단길의 미피스토어 경주점에서는 국보 반가사유상에서 영감을 받은 ‘반가사유상 미피’ 한정판 굿즈가 출시되어 SNS를 중심으로 화제가 되었다. [4]


그 배경에는 ‘로컬 감성’과 결합한 브랜딩 흐름이 있다. 단순히 귀여운 해외 캐릭터가 아니라, 지역의 정체성과 결합해 재해석된 미피는 MZ세대를 중심으로 ‘취향 있는 소비’, ‘맥락 있는 굿즈’로 받아들여졌다.
또한, 복잡한 시대일수록 단순하고 조용한 이미지에 위로받고 싶어 하는 감정의 흐름 역시 미피의 재부상을 이끌었다. ‘많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캐릭터’, ‘그냥 두어도 예쁜 존재’라는 미피의 특성은, 과잉소비와 정보피로에 지친 현대인의 감정과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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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석굴암 미피 에디션 (우) 반가사유상 미피 에디션



4. 그래서 미피는 왜 지금도 사랑받는가?


미피는 단순하기 때문에 오래 살아남았다. 복잡한 브랜드 전략도, 강한 메시지도 없다. 하지만 그 단순함은 오히려 더 깊은 여운을 남긴다.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선 하나. 그리고 그 선이 만들어내는 감정의 공간.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진실에 가깝다.” – 딕 브루너[5]
“Because there is so little, that which is there needs to be perfect.” – 브루너를 회고한 평론[6]


미피는 말이 없다. 표정도 거의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안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따뜻함이 있다. 이는 단지 어린이 캐릭터를 넘어, 모든 세대를 위한 ‘감정의 여백’을 제공하는 디자인 철학의 상징이다.


현대 사회는 점점 더 많은 것들을 말하고, 보여주고, 주장한다. 그런 세상에서 미피는 조용히 그 자리에 있다. 아주 적은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가만히 있어도 괜찮다는 것을 말없이 전하고 있다.

그래서 미피는 지금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단순하기에 더 오래, 조용하지만 깊게.






콘텐츠를 브랜드로 만들고 싶은 사람을 위한 적용 질문

복잡한 설명 없이도 전달되는 나만의 상징이나 아이콘이 있는가?

미피처럼 선 하나, 색 하나로도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다면, 나는 어떤 요소를 선택할 것인가?

내 콘텐츠에서 더 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 '덜어냄'이 메시지를 더 명확하게 만들까?

단순함 속에 담긴 감정, 철학,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것이 사람들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1] “Miffy.”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Miffy

[2] Joke Linders, Dick Bruna: A Quiet Artist, Mercis Publishing, 2006, p.29.

[3] “Miffy's Adventures Big and Small.”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Miffy%27s_Adventures_Big_and_Small

[4] 아이러브캐릭터, “미피스토어 경주점, 반가사유상 에디션 출시”, 2025. https://ilovecharacter.com

[5] “Dick Bruna, minimalist designer of Miffy,” Graphéine,

https://www.grapheine.com/en/history-of-graphic-design/dick-bruna-minimalist-graphic-designer-and-father-of-the-most-f amous-rabbit

[6] “Dick Bruna remembered by Bruce Ingman,” It's Nice That,

https://www.itsnicethat.com/features/dick-bruna-bruce-ingman-miffy-illustration-151020



당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는 어떤 감정을 전달하고 있나요?

매주 목요일, 좋아하는 것을 브랜드로 만드는 캐릭터 이야기

《사랑받는 캐릭터의 비밀 – vol.1 유럽 편》을 연재합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brandlike-me



커버 사진: Unsplash의 Lukas Kyz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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