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조리원은 천국이었을까

21일간의 엄마 되기를 마치며

by 일상여행가

산후조리원을 천국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산후조리원이 천국이었다고 말할 정도의 지옥을 퇴소 후에 경험하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집에서는 힘들면 아이를 맡겨놓을 수 있는 신생아실도, 젖몸살과 지친 몸을 풀어줄 마사지실도, 삼시세끼 시간에 맞춰 밥을 차려먹기는 커녕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다는 것. 조리원에서 보낸 시간만큼을 집에서 보내고 나서, 조리원과 집에서의 시간들을 비교해 봤다.



랜덤(random) 하우스


산후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와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은 아무것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삼시 세끼 동일한 시간에 밥과 간식이 나오고, 하루 3시간의 모자동실과, 꽤 규칙적인 수유 텀에 맞춰서 산후조리원에 있다가 집에 돌아오면 불규칙한, 아니 무작위한! 생활패턴을 맞이하게 된다. 낮과 밤이 아직 구분이 되지 않는 100일 이전의 신생아에게 성인과 같은 수면 패턴을 기대할 수 없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때나 자고 깨는 아이와 24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아무것도 계획할 수 없음에 좌절하게 된다.


밥이라도 먹으려고 국을 데워놓으면, 아이가 젖을 달라고 운다. 양쪽 젖을 15분씩 물리고, 부족하다고 칭얼거리면 추가로 분유를 먹이고, 트림을 시키고, 재우고 나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다. 자고 먹고 씻고 화장실을 가는 시간까지. 나의 모든 삶의 시간표가 철저하게 아이 위주로 맞춰진다. 심지어 그 시간표는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도 할 수 없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이 무작위로 진행되는 랜덤하우스다.



의무감 그거 먹는 것 인감?


내 인생에 처음으로 식욕이 사라졌다. 조리원에서도 삼시세끼 주는 밥 이외에는 별로 먹고 싶은 음식이 없긴 했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아예 입맛이 없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와 함께 자다 깨다를 반복하면서, 항상 수면부족에 시달리고, 수유할 때마다 잔뜩 긴장된 자세로 젖을 물리면서 온 몸이 피곤에 절어가고, 집 밖에는 나가지 못해 눈 밑이 점점 어두워지면서, 그냥 편하게 푹 자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한 좀비가 되기 때문이다. 규칙적으로 매 번 다른 반찬이 나와 식욕을 돋워 주는 조리원 밥이 그리웠다.


입덧 한 번 없이 왕성한 식욕으로 20킬로 가까이 늘어났던 임신 기간의 나와 너무 다른 내가 안쓰러웠는지 친정엄마가 식욕이 돌아오고 모유도 잘 나오게 해 준다는 한약을 지어오셨다. 한약을 먹기 위해서라도 하루에 두 끼는 꼭 챙겨 먹게 되면서, 식욕도 모유도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지만 젖이 나오지 않아 울어대는 아이를 보면서 억지로 국에다 밥을 말아 입에 밀어 넣고, 한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는다. 평생을 입맛이 없어지는 게 소원이었던 내가, 의무감으로 밥을 먹고 있다.



빨래 지옥, 청소 지옥


아이가 오고 나서부터 우리 집 세탁기는 매일같이 돌아간다. 하루에도 수 십장씩 사용하는 가제 손수건과 매일 하는 목욕 후에 나오는 타월, 배넷저고리, 속싸개 그리고 종종 게워내는 토사물이 묻는 이불까지 빨랫감이 산더미다. 아이와 어른 옷을 따로 세탁해야 하니 세탁기는 매일 돌아가고, 빨래 건조대는 하루 종일 거실에 나와있다. 매일 빨래해주는 옷을 입고, 아이 옷가지는 항상 준비되어 있던 산후조리원에서는 생각해 보지 못했던 일상이다.


조리원에서는 매일 아침 먹는 시간에 청소를 해주셨다. 아침을 먹고 오면, 침대 시트부터 화장실까지 말끔하게 청소가 되어 있어서, 상쾌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집으로 오기 전부터 남편에게 부탁해, 이불과 커튼과 베란다 창틀까지 완벽하게 청소를 하고 말끔한 집에 들어왔는데, 아이와 씨름하면서 깨끗한 집을 유지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아이가 자는 시간에 잠을 잘 건 지, 밥을 먹을 건지, 씻을건지, 청소를 할 건지를 고민하다 보면 매번 청소는 뒷전으로 밀리기 때문이다.





집에서 내가 보내고 있는 시간과 비교해 보면 산후조리원에서 보냈던 시간이 분명 천국은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당연히 겪어야 하는 과정을, 엄마의 몸 회복을 핑계로 몇 백만 원을 쓰면서 조금 뒤로 미룬 것뿐인 것 같기도 하다. 산후조리원을 거치지 않았으면 조금 덜(?) 지옥같이 느껴졌을지도 모르는 생활이, 잠깐 동안 맛본 천국 같은 생활과 비교되면서 고통이 더 극대화되었을 수도 있고. 아이가 태어나고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아이와 24시간을 같이 보내는 엄마가 훨씬 더 아이의 신호 (배고픔, 졸림 등의)를 빨리 파악하고 아이와의 패턴을 맞춰가기가 쉽다는 한 소아과 의사의 유튜브를 보고 나서는 산후조리원을 괜히 갔나 싶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후조리원은 내게 꼭 필요했다. 엄마가 됐지만, 아직 온전히 엄마가 된 것 같지 않은 그 애매한 시기의 나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몸도 마음도 아직 엄마가 될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로 일상으로 돌아와서 성급하게 엄마가 되기 전에, 변화된 내 몸과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병원과 조리원에서의 21일 동안, 엄마라는 새로운 역할을 앞두고 불안하고 긴장된 나를 천천히 들여다보면서, 엄마가 될 준비를 마쳤다. 이제부터는 엄마라는 새로운 페르소나를 가장 나답게 살아갈 날들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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