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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하고 사사로운 Dec 26. 2016

아빠의 승진

  아빠가 승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한지는 3년 아니 5년은 더 넘은 것 같다. 아빠의 승진에 대한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해서, 평소에도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해 새벽에 깨서 헛구역질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주변인들이 모두 알 정도로 아빠는 승진에 대한 갈망을 이야기했지만, 번번이 문턱에서 석연치 않은 이유로 진급하지 못했다. 

  나와 우리 가족은 늘 너무 승진에 목매지 말라고 했다. 승진을 해도 좋은 아빠이고, 승진을 하지 못해도 좋은 아빠인 것은 우리에게 똑같았기 때문이다. 또, 인사팀에서 일하게 되면서 일을 꼭 잘한다고 해서 승진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기에 너무 마음 쓸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건강을 갉아 먹으면서까지 스트레스를 받는 아빠가 더욱 더 걱정이었다. 하지만 아빠는 늘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그 마음을 놓기 어려운 듯 했다.

  아빠가 그렇게 승진에 목매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게 된 것은 점점 더 내가 회사원의 삶을 알아 가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아빠는 처음 계약직으로부터 시작해서 스물 다섯에 결혼하여 내가 태어났다. 결혼 후에 시험 공부를 병행 하면서 2년이 지난 후에야 아빠는 공무원에 합격했다고 한다. 그렇게 아빠는 공직의 가장 낮은 곳부터 차근차근 30년이 넘게 공무원 생활을 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신분, 학벌 등의 이유로 낮은 곳에서 서러움을 겪는 사람들을 마주하게 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아빠가 겪었던 혹은 지금도 겪고 있을 고초를 생각해보게 되는 때가 있었다. 일반 회사도 그럴 텐데 더 보수적인 공직 사회에서 아빠는 어떤 세월을 견뎌 왔을 까. 아빠가 그토록 승진을 갈망해 온 데는 그렇게 견뎌 내온 세월들이 쌓여왔기 때문일 것이다. 아빠는 지금 낮아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잘 대해주라 하셨다. 아빠 본인이 누구보다 그 마음을 가장 잘 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빠에게 승진으로 조금 더 오를 월급이나 지위나 그런 게 뭐가 중요 했을까. 아빠는 고단했던 아빠의 삶에 스스로 훈장을 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나는 하고 싶은 것을 존중 받으며 살고 싶었고, 그 삶을 지지 받기를 원하면서도 막상 아빠에게는 그렇게 이야기 하지 못했다. 지금 만으로도 훌륭한 아빠의 삶을 살고 있으니 더 이상 바라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빠도 아빠이기 전에 남자로서의 꿈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그 전에는 왜 몰랐을까. 그게 아빠에게는 승진이 었을텐데.

  그랬던 아빠가 오늘 승진을 했다. 가장 기쁜 것은 승진 때문에 더 이상 스트레스를 받고 건강을 헤칠 염려가 적어졌다는 것이다. 승진 하기 전이나 승진 후나 나에게는 자랑스러운 아빠인 것임에는 변함이 없다. 아빠는 어렸을 때부터 내게 늘 예의 있게 행동할 것을 말씀하셨다. 마땅한 자본 없이 홀로 울산으로 상경한 20대부터 현재까지 아빠를 지켜준 것은 예의 바름 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라면서는 답답함도 있었지만, 다 크고 부터는 아빠의 예의 바름과 정직함이 나에게는 가장 큰 유산처럼 느껴졌다. 회사에 오고 나서는 더욱 그랬다. 돈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아빠는 삶으로서 증명해 왔다. 나는 무엇보다도 그런 아빠가 자랑스러웠다.

  명절 때마다 할아버지, 할머니 무덤에서 아빠는 승진을 하게 되면 떳떳한 모습으로 꼭 제일 먼저 인사를 드리러 오마 이야기했었다. 돌아오는 2017년 새해에 아빠와 함께 인사 드리러 가고 싶다. 그 동안 고생 많았어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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