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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하고 사사로운 May 04. 2017

복잡과 미묘의 한 줄


군대 시절, 새벽에 편지 하나를 받았다. 

오랜만에 왠 편지일까 하고, 칼로 정성스레 뜯어 보았다.

편지의 내용은 이틀 전에 있었던 생일을 축하한다는 내용이었다. 


편지는 생일 전에 부친 듯 하지만, 

우리 나라의 복잡한 행정시스템이 빚어낸 결과로 이틀 후에 도착한 듯 했다. 

외부인에게 축하받은 첫 번째, 

아... 그러고 보니 두 번 째 축하이자 편지. 

이렇게 편지까지 써주다니, 나는 대략 감동했다. 

나도 꼭 편지를 해주마하고는 다짐했다.  


그러나 내가 지금 이렇게 복잡 미묘한 기분을 느끼는 건, 

편지의 단 한 줄 때문인 듯 하다. 

편지의 주 내용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없어도 상관없을, 사실 별로 알고 싶지도, 

몰라도 됐을, 아마 그랬을 그 한 줄 때문이다. 


그럴 이유도 충분하지 않고, 

꼭 그래야만 하는 지도 의문인 그 한 줄 때문이다. 


나는 지금 복잡하고도 미묘한 기분에 빠져 있다.  

휴가를 다녀온 뒤로는 편지라든가, 전화라든가, 

내가 먼저 연락하는 일은 자제하고 있다. 


내가 여기서 이렇다고 해서 

누군가가 불편을 느끼고 있다거나 하지는 않을 것을 알고 있다. 


다만, 내가 불편함으로 그렇게 하고 있을 뿐이다. 

이 곳에서 다른 사람들의 소식을 듣는 일은, 

가끔 영화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바라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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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나는 종종, 

그럴 이유도 충분하지 않고,

꼭 그래야만 하는 지도 의문인 그 한 줄 때문에,

그 뜬금없는 한마디 때문에,

없어도 상관없고, 별로 알고 싶지도 않은 그런 소식들 때문에 

혼자 수백 마디가 되는 생각들을 떠올리며,

잠을 잘 수 없고, 하루를 온전히 살지 못하게 된다. 


결국 단어 하나하나,

마침표와 말 줄임표 하나하나까지,

의미를 부여하는, 과도한 의미부여자가 되고야 마는 것이다. 


이건 아마도,

시 하나를 읽을 때도,

빨간색 펜, 파란색 펜으로 동그라미를 뭉게뭉게 쳐대며,

괴기스럽게 단어 하나, 음절 하나를 토막 내는

고등학교 문학 시간의 교육의 산물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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